[신주백의 사연 史淵]‘분단시대’, 강만길이 바꾸어 놓기 시작한 시선

기자 2024. 6. 10.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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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을 유기적 연결체로 보려는 강만길의 시선은 민주화운동 진척 과정에서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으로 확장되었다

최근에는 한반도 분단문제를 동아시아의 역사와 현재의 국제질서 측면에서 주목하며 연구한 이삼성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으로 이어졌다

그사이 남북이 ‘경쟁과 배제의 (비)대칭적 관계’를 지속한 시선도 정착했다. 모두 분단현실의 고유성과 (비)연속성에 주목하며 학문 만들기에 노력한 결과다

살다 보면 누군가의 짧은 한마디가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 나도 그랬다. 박사학위논문 최종 심사 때, 학위논문을 책으로 낸 이후에도 한눈팔지 말고 두 번째 연구서를 꼭 내라고 당부한 분이 계셨다(<한국 역사학의 기원>(2016)). 작년에 작고하신 강만길 선생님이다.

안타깝게도 해외 출장 중이어서 조문하지 못했다. 그러다 1주기가 다가오는 최근 북한의 ‘두 국가론’을 분석한 글들을 읽다가 문득 선생님의 <분단시대의 역사인식>(1978)이란 책이 생각났다. 대학생 때 무척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당시 ‘불황을 이기는 책’ 중 하나였으니 나만의 추억이진 않을 것이다. ‘분단된 시대’도 ‘해방 후 시대’도 아닌 ‘분단시대’라는 새로운 시선 때문일 것이다.

유기적 연결 체계로서 분단 새로 발견

강만길은 1974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천관우의 책 서평을 내면서 ‘분단시대’란 말을 처음 썼다. 해방 후부터 민족통일이 이루어질 어느 시기까지, 곧 과거의 한국 현대사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한국사까지를 내포하는 개념으로 이 신조어를 사용했다.

1975년은 광복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역사학계는 전국역사학대회에서 ‘국사학의 반성과 방향’이란 주제를 내걸고 3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강만길은 ‘민족사학론의 반성’이란 글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던 ‘민족사학’처럼 통일운동의 일환이자 지도원리를 제공하는 ‘민족분단시대 역사학’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역사학의 현재성과 실천성을 강하게 내세우자 회의장에서부터 학문의 순수성과 객관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민중사학’이란 비판도 있었다. 그가 통일운동을 담당할 민족의 진정한 주체를 민중에게서 찾았기 때문이다.

민중을 민족문제 해결의 주체로 상정하는 시선은 그만의 관점이 아니었다. 1960년대 전반기 한·일 국교수립을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민주화운동 세력은 민족문제의 해결과 민주화운동을 연결했다. 이들은 1970년 전태일 분신사건을 계기로 민주와 민중을 연결해 생각하며, 역사의 주체로 민중을 상정해갔다. 이즈음 ‘조선혁명선언’(1923)의 작성자 신채호도 비로소 제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가 민중혁명을 제창할 때 민중은 계급연합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민주와 민족, 민중을 연계하여 사고하는 관점과 태도는 국민경제론과 구별되는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국수주의 문학론과 구별되는 백낙청의 민족문학론의 등장으로도 이어졌다. 유신체제라는 엄혹한 현실과의 긴장 속에서 ‘우리 것 학문하기’가 꿈틀거린 것이다.

강만길의 분단시대 민족사학론도 이러한 시대 흐름과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 여기에 학문하는 태도에 대한 역사학 내부의 비판까지 곁들여 봐야 한다. 이를 두고 그는 ‘학문적 객관성과 학문의 현실 기피성이 혼동된’ 비판이며, ‘분단현실에 매몰돼버린 학문’은 현재성을 상실한 학문이라고 간주하며 사론집(史論集) <분단시대의 역사인식>을 내놓았다. 책에서 그는 ‘분단체제’를 기정사실화하고 거기에 무관심하거나 편승하여 안주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한편, 분단체제를 청산해야 한다고 철저히 인식하는 일이 분단시대 역사의식의 목적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때도 새로운 단어인 분단체제라는 말을 빈번하게 호출했다. 4쪽에 불과한 ‘책 머리에’서만 무려 9회나 사용할 정도였다.

이처럼 강만길이 적극 사용한 분단시대, 분단체제라는 말은 1974년과 1978년 시점에 한국 사회에서 매우 생소한 단어였다. 반면 각종 검색사이트에서 확인해봐도 분단을 지칭할 때는 분단된 시대, 분단된 국가, 분단국가, 국토분단, 냉전시대와 같은 단어가 자주 나왔다. 이때의 분단이란 말에는 단절, 다름, 대결의 남북관계라는 함의가 내장되어 있었다. 남북대화가 없을 때나 있을 때를 가리지 않고 ‘남북대결의 시대’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만길의 분단시대, 분단체제는 남북한의 동시성, 내적 연결성을 함축한 용어다. 그가 말한 대로 ‘우리가 사는 시대를 분단시대로 인식’한다면, 남북의 국가 및 거주민이 1민족, 2국가, 2사회체제에 살면서 하나의 유기적 연결 체계로 묶여 있음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역사 연구에서 분단 극복의 길 찾기

분단에 대한 시선의 전환을 요구한 강만길의 주장은 여러 파장을 낳았다. 몇몇 연구자에게는 남과 북이 각각 자족적일 수 없는 지점이 있음을 자각할 기회였다. “아니, 북괴에서도 우리 한국말 쓰네요”라는 말을 듣고 씁쓸했다는 어느 지식인의 이야기처럼, 우리 일상에서 분단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에 관심을 갖게 했다. 이효재의 <분단시대 사회학>처럼 ‘비판적 한국학’이 제창되는 각성제였다.

강만길은 1980년 ‘해직교수’가 되어 갑자기 닥친 어려움 속에서도 분단시대 역사학의 과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을 들여다봤다. 민족국가건설론 측면에서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거나 해방 후의 좌우합작운동을 깊이 있게 분석했다. 여기에 국민주권주의, 곧 참정권 수준에 한정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광범위한 방면에서 제기된 인민의 권리에 주목했다. 식민지 시기에 민족운동 세력 사이에 자리 잡은 공화주의에 관심을 집중한 것이다. 그는 이로써 우리 학계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매개로 항일운동과 민족통일운동을 같은 궤에 두는 연속성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강만길은 민중에 관한 별도의 글을 발표한 적이 없다. 1980년대 들어 창작과비평사가 ‘민중적 민족주의’를 주제로 책을 기획했을 때도, 언론에서 누가 민중인지에 대해 기사를 기획했을 때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는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며 민족주의에 관해 말하고, 민족을 전면에 내세운 통일전선의 경험을 연구했을 때 민중이란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한국민족운동사론>(1985)).

그래서 강만길의 민중인식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민중이 민족문제 해결의 주체라는 인식을 그가 포기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랬다면 정부의 공식 견해나 학계의 주류적 독립운동사 인식에 도전장을 던지며 비틀기를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민중사학 관련 출판물로 법정에 선 사람들을 위해 증언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만길은 1978년 발표한 ‘독립운동의 역사적 성격’이란 글에서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독립동맹의 강령을 ‘통일민족국가 수립 과정’의 일부로 규정했다. 긴급조치가 남발돼 두 단체 언급 자체가 부담스럽던 시절이었다. 학자로서 확신이 없다면 감행하기 쉽지 않은 모험이었다. 이후 발표한 독립운동과 근대민족주의에 관한 글에서도 임시정부가 1920년대 전반기를 지나며 독립운동전선의 중심기관에서 이탈했다고 지적했다. 임시정부 중심의 독립운동사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한 분석이었다. 또 1930~1940년대에 임시정부와 경쟁단체가 모두 독립 이후 ‘민주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신민족국가를 세우고 싶어 했다고 봤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관점과 분석을 시도한 강만길의 연구는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1991)에 체계적으로 모였다. 그는 ‘우익운동에 한정되어’ 있어 ‘대단히 협소하고 빈약한’ 남한 학계의 독립운동사 인식을 ‘분단시대적 역사인식의 소산물’로 간주했다. 대안은 ‘분단극복 역사학’의 한 줄기인 좌우협력운동에서 찾았다. 민족주의운동과 사회주의운동 계열을 망라한 조선민족혁명당을 특별히 연구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강만길에게 이 책은 ‘분단극복사론’의 첫 연구서였다.

남북 분단을 유기적 연결체로 보려는 강만길의 시선은 민주화운동 진척 과정에서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으로 확장되었다. 최근에는 한반도 분단문제를 동아시아의 역사와 현재의 국제질서 측면에서 바라보며 20년 넘게 연구해온 이삼성의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론’으로 이어졌다. 그사이 남북한이 ‘경쟁과 배제의 (비)대칭적 관계’를 지속해왔다는 시선도 한국 사회에 정착했다. 모두 분단현실 자체의 고유성과 (비)연속성에 주목하며 우리 학문 만들기에 노력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신주백



역사학자. 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한국근현대사를 동아시아사에 접목하여 연구하며 현재를 고민하고 있다. 독립운동사 연구에서 출발하여 최근에는 <한국역사학의 전환> <일본군의 한반도 침략과 일본의 제국운영> 등을 간행했다. 저서 <역사화해와 동아시아형 미래만들기>, 이외에 공저로 <용산기지의 역사> <분단의 두 얼굴>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등이 있다.

신주백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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