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났어? 일단 드러눕고 버텨”…과잉진료에 매년 6400억 줄줄 샌다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2024. 6. 10.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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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車보험 합의금 손본다
교통사고 치료 종결기준 없어
원하는 돈 받을 때까지 버텨
건강보험 부정수급 우려도
일부 한방병원선 ‘세트치료’
과잉진료 편승해 수익 챙겨
선량한 車보험가입자에 불똥
1인당 3만5천원 더 내는 셈
보험사가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합의금 성격의 ‘향후치료비’가 이른바 ‘나이롱 환자’를 양산한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지급 근거와 기준을 명확히 하는 방향의 제도 손질을 검토한다. 10일 서울 시내 한 병원에 교통사고 입원 관련 홍보물이 붙어 있다. [한주형 기자]
지난해 자동차사고를 낸 A씨는 최근 보험사의 사고 처리 안내를 받고 황당했다. 신호대기 중이었던 B씨의 차량을 가볍게 후미 추돌한 사고였는데, 피해자가 향후치료비(일종의 합의금)로 700여 만원을 받아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상대차량은 뒷범퍼의 도색이 약간 벗겨지는 졍도의 피해를 입었고 수리비는 렌트비를 포함해 65만원에 불과했다. 피해자 B씨는 원하는 합의금이 제시될 때까지 병원에서 5개월을 버텼고 여기에 들어간 병원비(보험사가 지급)만 368만원이었다 .A씨는 “이렇게 나간 돈이 결국 나와 선량한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겠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B는 지인 등 34명과 공모해 사전에 가해자와 피해자로 역할을 분담해 자동차사고를 고의로 일으켰다. 이들은 향후치료비로만 1억7500만원을 챙겼다가 적발됐다.

정부가 감사원의 문제제기를 바탕으로 향후치료비에 대한 제도 개선에 나섰다. 고무줄 잣대로 지급되는 향후진료비가 경미한 교통사고에도 원하는 수준의 합의금이 나올때까지 일단 드러눕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와 과잉진료, 보험사기 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과도한 향후진료비는 과잉진료 등을 통해 국민건강보험의 누수요인이 될 수 있고 차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미쳐 선량한 가입자의 보험료를 높이는 배경이 될 수도 있다. 감사원은 지난 4월부터 한달여간 금융당국에 대한 감사를 통해 향후진료비의 근거와 지급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10일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가 지급한 향후치료비는 1조7488억원으로 2013년(8263억원)의 2.1배로 늘었다. 같은기간 피해자수는 158만명에서 174만명으로 10% 증가했다. 보험사가 올해 1분기 지급된 향후치료비는 4216억원에 이었다.

특히 향후진료비에 대해서는 ‘경상’에서의 누수가 지적돼 왔다. 염좌와 타박상 등 경상 환자는 사고발생으로 인한 외상이 없어 주관적 통증을 호소하면 치료기간을 늘릴 수 있고 필요한 치료기간에 대한 객관적 검토 절차도 없다.

경상환자들에게 지급되는 돈은 전체 향후치료비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상해등급 12~14급인 경상환자에게 지급된 향후치료비는 2013년 3103억원에서 지난해 1조 4308억원으로 4.6배 증가했다. 2014년부터 ‘염좌’가 중상에서 경상으로 상해등급이 바뀐 영향을 받아 경상환자수는 2013년 88만명에서 지난해 162만명으로 1.8배 늘은 것에 비하면 향후치료비 지급액 상승폭이 크다.

향후치료비는 보험사들의 부담에만 머물지 않는다. 경상환자는 보험사로부터 받는 합의금인 향후치료비를 늘리기 위해 치료기간과 비용을 최대한 증가시키고, 보험사는 장기·고액 치료를 막기위해 합의시 향후치료비를 더 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연구원은 보험사들이 지급하는 향후치료비가 100만원 늘어나면 실제 치료비가 142만원 늘어나는 것으로 계량 분석했다. 치료비가 실제 필요대비 42% 부풀려지는 셈이다.

향후치료비를 받아간 사람들이 추가 치료에 대해 국민건강보험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이중수급’의 문제도 지적된다. 국민건강보험 규정에는 별도의 배상을 받을 경우 급여(건강보험 적용) 처리를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추가 치료때 향후치료비를 받은 환자인지 여부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감사원도 이 부분에 대해 금융당국에 제도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향후치료비의 문제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피해 배상에서 치료종결 여부 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나이롱환자를 통제할 법률상 기반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틈타 병·의원들의 도덕적해이도 벌어지고 있다. 사고 정도를 구별하지 않고 내원환자 다수에게 첫날부터 일률적인 ‘세트치료’를 시행하는 식이다. 특히 일부 한방병원에서는 침술과 부황, 구술, 약침, 추나, 온냉경락요법 등 하루 내원시 6가지 치료를 동시에 시행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한방 세트청구 건수는 2017년 4만3051건에서 2022년 52만 2617건으로 12배 이상 폭증했다.

김대한 동아대 교수는 “경미한 사고의 피해자도 단순타박상이 아닌 염좌 등으로 진단하는 경우가 많다”며 “의료기관은 환자의 치료기간이 늘수록 수익이 증가하고, 나이롱환자는 치료기간과 비용이 늘어날 수록 보험사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에 과잉진료를 주고 받을 유인이 크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행태는 가입자에게 ‘보험료’ 인상으로 전가될 수 있다. 작년 연말기준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97.1%까지 하락했으나 2020년까지는 계속 100%를 웃돌았다. 손해율이 100%가 넘는다는 것은 계약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보다 나간 보험금이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험연구원이 차보험 계약자가 대인배상을 위해 부담하는 보험료를 산출한 결과 한국은 계약자 1인당 22만3000원으로 일본(7만5000원)의 3배, 영국(13만 3000원)의 1.7배에 달했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차보험에서 발생하는 과잉진료 규모는 5200억원~6400억원으로 추산된다”며 “이는 차보험계약 1건당 3만5000원 안팎의 보험료 인상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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