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북한 군인을 놀라게 하는 것들
북·중 국경의 조선족 식당 등에 우리 정부가 한국 TV를 볼 수 있는 장비를 무료로 설치해줬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조선족뿐 아니라 중국 내 북한 주민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북 주민들이 가장 놀라는 프로그램이 ‘6시 내고향’이라고 한다. 북한 농촌에선 매년 아사자가 속출한다. 그런데 한국 농촌에선 먹을거리가 넘치고 일반 농민도 자가용을 모는 장면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는 허구일 수 있지만 농촌의 모습을 매번 가짜로 찍을 수는 없다. 한 탈북민은 “남북 농촌의 차이가 천당과 지옥 같았다”고 했다.
▶동물원과 전국노래자랑 방송을 보고도 놀란다. 북 주민 대부분은 평생 바나나를 먹을 일이 없다. 그러나 한국 동물원에선 원숭이와 코끼리가 바나나 등 열대 과일을 푸짐하게 먹기 때문이다.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특권층이 아닌데도 북한 중앙당 간부보다 잘 입고 나와서 무대를 누빈다. 개그 프로에서 한국 대통령이 희화화되는 장면은 기절할 수준이다. 외부와 단절된 감옥에 사는 북 주민들은 한국의 평범한 일상에 더 충격을 받는다.
▶휴전선에 배치된 북한군이 50만~60만명이다. 17세에 입대해 10년씩 복무한다. 한창 놀 나이인데 라디오 하나 구경하기 어렵다. 대북 확성기에서 신나는 댄스곡이 나오면 어깨가 저절로 움직인다. 애창곡이 생기고 1년쯤 지나면 방송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김정은의 폭정과 은밀한 가족 관계 등을 방송하면 처음엔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대북 확성기에서 나오는 일기예보가 정확히 맞는 것을 경험하고, 북한 축구팀의 경기 결과 등을 실시간으로 알게 되면 확성기 내용을 신뢰하게 된다. 2011~2016년 철책을 넘은 북한군이 9명인데 그중 4명이 2015년 확성기 재개 이후 나왔다.
▶우리 군이 6년 만에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서 방탄소년단(BTS) 등 노래와 일기예보, 북한 내부에서 거래되는 쌀·옥수수·달러 가격 등을 소개했다. 최전방 북한군들은 6년 전처럼 우리 일기예보를 듣고 빨래를 걷고 한류 스타들의 노래도 흥얼거릴 것이다. 이젠 고향 장마당의 물가까지 확성기에서 확인할 것이다.
▶지금 북한군 상당수는 2000년대생이다. 만성적 경제난 속에 노동당이 아닌 장마당이 먹여 살려준다는 걸 깨달은 세대다. 입대 전부터 한류를 즐겼다. 김정은이 ‘한국 드라마 보면 척추를 꺾어 죽인다’고 광기를 부리는 것은 이 신세대의 눈·귀를 가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람의 눈·귀를 어떻게 영원히 가릴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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