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선거 극우 약진…'참패' 佛 마크롱은 조기 총선 도박

김효진 기자 2024. 6. 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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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우파 1당 지켰지만 중도·녹색당 극우에 자리 내 줘…프랑스선 마크롱 정당 지지율 극우 절반

6~9일(현지시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중도우파가 1위 자리를 지켰지만 극우는 유럽연합(EU) 중추인 프랑스와 독일에서 집권당에 승리를 거두며 약진했다. 프랑스에서 집권 중도당의 지지율이 극우의 절반에도 못 미치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3주 뒤 조기 총선 실시라는 '도박'까지 감행했다.

유럽의회가 10일 오전 11시38분께 내놓은 잠정 예측 결과를 보면 중도우파 정치그룹 유럽국민당(EPP)이 전체 720석 중 185석(25.69%)을 차지해 1위를 지켰다.

미 CNN 방송을 보면 유럽국민당이 기존 의석 점유율(705석 중 176석, 24.96%)보다 소폭 지지를 늘리며 1위를 수성한 데 대해 이 당 소속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9일 오후 당이 "안정의 닻"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좌우 극단이 지지를 얻은 것도 사실이며 이는 중도 정당들에게 큰 책임이 따르는 이유"라고 말했다. 중도좌파 정치그룹 사회민주진보동맹(S&D)도 137석(19.03%)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돼 기존과 동일한 2위를 지켰다.

유럽의회는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국민들의 직접 투표로 5년마다 구성되는 다국적 의회로 각국 국민들은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한 자국 정당에 투표하지만 이 정당들은 대부분 유럽의회 내 7개의 초국적 정치그룹에 속해 있다. 1당을 지킨 유럽국민당의 경우 중도우파 독일 기독민주당(CDU), 프랑스 공화당 등이 속해 있어 이들이 자국에서 얻은 의석이 정치그룹 의석에 반영된다.

의석수는 인구수 기반으로 각국에 배분되지만 나라별로 최대 96석을 넘을 수 없고 최저 6석은 보장된다. 이번 선거에선 720석 중 독일이 96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받았고 프랑스에 81석, 이탈리아에 76석, 스페인에 61석이 배정돼 뒤를 이었다. 유럽의회는 EU 예산 및 법률안 심의권을 가지며 EU 행정부 격인 EU 집행위원회 위원장 선출권도 갖고 있다.

이번 선거에선 마크롱 대통령 정당이 속한 자유주의 중도그룹과 녹색당 그룹의 점유율이 눈에 띄게 하락했고 그 자리를 극우가 메웠다. 마크롱 대통령의 르네상스당이 속한 리뉴(Renew Europe)는 이번 선거에서 79석(10.97%)을 획득할 것으로 예측돼 3위는 지켰지만 기존(102석)보다 의석은 20석 이상, 점유율(14.46%)은 3.5%포인트(p) 가량 하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기존 의회에서 네 번째로 큰 정치그룹이었던 녹색당은 극우에 자리를 내주고 6번째 그룹으로 약화됐다.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은 기존 점유율(71석, 10%)의 4분의 1 이상을 잃은 52석(7.22%)만 획득할 것으로 예측됐다.

극우 정치그룹들은 약진했다.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이끄는 극우 성향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소속된 강경우파 정치그룹 유럽보수와개혁(ECR)이 73석(10.14%)으로 기존(69석, 9.78%)보다 점유율을 늘리며 유럽의회에서 네 번째로 큰 정치그룹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됐다.

마린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속한 극우 정치그룹 정체성과민주주의(ID) 또한 기존 49석 (6.95%)에서 58석(8.06%)으로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예측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등이 기존 정당들에 대한 반발심을 높이며 극우에 이익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장 많은 의석을 배정 받은 프랑스와 독일에선 집권당이 극우에 밀리는 참패를 맛봤다. 10일 오전 11시38분 기준 개표가 완료된 프랑스에선 국민연합(31.37%)이 르네상스당 지지율(14.6%)의 두 배 이상을 획득하며 1위를 차지했다.

위기에 몰린 마크롱 대통령은 하원을 해산하고 불과 3주 뒤인 이달 30일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초강수를 내놨다.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마크롱 대통령은 9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수주의자와 선동가들의 부상은 우리나라와 유럽에 위협"이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여러분의 메시지와 우려를 들었고 그에 대한 답을 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프랑스의 "평온과 조화"를 위한 "분명한 다수"를 호소했다. 프랑스는 총선과 별도로 대통령 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총선 결과와 관계 없이 마크롱 대통령의 대통령직은 유지된다.

국민연합을 이끄는 르펜은 "프랑스 국민들이 우리를 신뢰한다면 우린 권력을 행사할 준비가 돼 있다"며 조기 총선을 환영했다.

프랑스 집권당은 2년 전 치러진 총선에서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마크롱 대통령의 인기도 떨어져 이번 조기 총선에서 과반을 점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더해 국민연합이 기세를 탄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총선을 소집한 것을 두고 외신과 전문가들은 일제히 "도박"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만일 국민연합이 총선에서 과반을 점하게 된다면 마크롱 정부는 총리직을 국민연합에 내주며 내치에서 거의 힘을 쓰지 못할 수 있다. 프랑스 방송 프랑스24에 따르면 2022년 프랑스 대선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발레리 페크레스는 "누구에게도 선거운동 및 조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의회를) 해산하는 것은 국가의 운명을 두고 러시안 룰렛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국내 정치와는 큰 관련이 없는 유럽의회 선거를 유권자들이 부담 없는 정부 반대 투표로 활용해 통상 국내 선거에서보다 극우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연합이 총선에서 유럽의회 선거 수준의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도 적어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24는 "유권자들이 반(反)르펜 전선 아래 결집하는 데 점점 지쳐가고 있다"며 조기 총선이 극우에 반대하는 결집을 지난 대선에 이어 다시금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결국 어느 쪽도 다수를 차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총선 뒤 꾸려질 "다음 의회는 현재 의회보다 더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디언>은 설사 마크롱 대통령이 국민연합에 총리직을 내주는 '동거정부'를 꾸리게 되더라도 막상 극우가 정부를 운영할 때의 혼란을 국민이 목도하면 실망이 쌓여 다음 대선에선 극우를 몰아낼 수 있을 거라는 최후의 셈법까지 깔려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뉴욕타임스>는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선임 연구원인 뤽 루반이 조기 총선 결과가 결국 "동거정부"로 끝날 수 있지만 "그저 기다리는 것은 극우가 번영하고 국민연합이 엘리제(프랑스 대통령궁)를 차지할 수 있는 다음 대선까지 상황이 악화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덧붙였다.

독일의 경우 올라프 숄츠 총리의 사회민주당(SPD)이 극우 독일을위한대안(AfD)에 밀렸다. 10일 오전 9시1분 기준 개표가 완료된 독일에선 제1 야당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이 30%를 득표해 1위를 차지한 반면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13.9% 득표에 그쳐 15.9%를 획득한 독일을위한대안에 2위까지 내줬다.

반면 이탈리아에선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극우 성향 이탈리아형제당(FdI)이 10일 오전 11시38분 기준 잠정 예측 결과 28.77%를 득표할 것으로 보이며 1위를 달렸다.

중도우파가 1당 자리를 지키며 유럽의회의 즉각적 성향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극우가 의석을 늘림에 따라 기후, 이민, EU 확장 등 개별 정책 및 내부 선거에서 극우의 협력이 필요해질 가능성이 커졌고 이를 통해 유럽의회가 서서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로이터>는 친EU 성향 싱크탱크 유럽개혁센터(CER) 선임 연구원인 루이지 스카지에리가 극우 약진 관련 "즉각적 효과보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고 전했다.

다만 극우가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분열된 양상이어서 영향력이 생각보단 작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례로 독일을위한대안은 소속 유럽의회 의원이 나치 친위대(SS)의 모든 구성원이 범죄자는 아니라고 발언하며 정체성과민주주의 그룹에서 지난달 제명됐다. 독일을위한대안은 정치그룹을 결성하지 못한 상태(non-aligned, NI)로 이번 선거를 치렀다.

<로이터>는 벨기에에 기반을 둔 싱크탱크 유럽정책센터(EPC)의 코리나 스트라툴라트 부국장이 유럽의회에서 극우의 영향력은 결국 이들 사이 결속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짚었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이 센터 연구에 따르면 분열된 극우가 유럽의회를 완전히 통제하려면 의석의 70%는 차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9일(현지시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국민연합(RN)이 집권 르네상스당보다 2배 이상 높은 지지를 얻을 것으로 예측되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달 30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연설 영상 일부를 갈무리한 것. ⓒAFP=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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