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안합니다" 그 사과 없었으면 퇴출됐다…어떻게 'OPS 1.077' 특급 외국인 탈바꿈했나

김민경 기자 2024. 6. 10. 19:4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두산 베어스 외국인 타자 헨리 라모스 ⓒ 두산 베어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내가 미안합니다."

두산 베어스가 지난달 2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2-4로 석패하고 홈팬들에게 인사하기 위해 선수단이 관중석을 바라보고 일렬로 섰을 때였다. 두산 외국인 타자 헨리 라모스(31)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선수들 사이에 섰다. 선수들이 단체로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일 때 라모스는 인사를 거부하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당연히 팬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됐고, 선수단도 라모스의 태도를 당연히 문제 삼았다.

당시 라모스는 퇴출 위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 지난달 2일까지 23경기에서 타율 0.239(88타수 21안타), 2홈런, 20타점, OPS 0.655에 그치고 있었다. 외국인 타자에 걸맞지 않은 성적표였고, 구단이 교체 여부를 고민하는 건 당연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일단 라모스를 4월 초에 한 차례 2군에 보내 2주 동안 재정비할 시간을 줬는데, 지난해 미국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타율 0.318(280타수 89안타), 13홈런, 55타점, OPS 0.954 맹타를 휘둘렀을 때의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선수단 분위기를 깨뜨리는 행동까지 했다. 라모스는 논란이 있었던 당시 9회말 2사 1루 마지막 타석에서 상대 투수 오승환의 초구 직구를 건드려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나자 스스로 분을 참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보면 프로답지 못하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팬들 앞에서 잘못된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구단은 라모스가 만약 이때 선수단에 사과하지 않았다면 진지하게 퇴출 절차를 밟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라모스는 금세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라커룸에 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을 때 고개를 숙이며 "내가 잘못 행동했다.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선수단에 사과의 의미로 커피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 이후 라모스는 180도 다른 선수가 됐다. 동료 선수들부터 라모스가 타지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더 마음의 문을 열려고 노력했다. 안방마님 양의지(37)가 라모스의 안타 세리머니를 따라한 게 시작이었다. 양의지는 라모스가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사과한 다음부터 라모스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안타 세리머니를 더그아웃에서 따라하기 시작했다. 베테랑 양의지가 그렇게 먼저 움직이면서 '라모스는 두산 선수이고, 함께 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몸으로 표현하자 어린 선수들도 하나둘 라모스의 세리머니를 따라하면서 즐기기 시작했다.

라모스는 타석에서도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지난달 3일 이후 나선 31경기에서 타율 0.392(120타수 47안타), 5홈런, 21타점, OPS 1.077 맹타를 휘두르면서 두산이 선두권 싸움을 펼치는 데 큰 힘이 됐다. 하위 타순만 전전하다 상위 타순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어느 자리에 둬도 자기 몫을 하는 타자가 됐다. 시즌 초반 맹타를 휘두르던 주축타자 강승호와 김재환 등이 주춤할 때 라모스가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전력 손실도 최소화할 수 있었다.

▲ 두산 베어스 헨리 라모스가 팀 세리머니와 별개로 같이 하는 개인 안타 세리머니. 양의지는 더그아웃에서 이 동작을 따라하면서 라모스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도왔다. ⓒ 두산 베어스
▲ 헨리 라모스와 하이파이브하는 두산 베어스 포수 양의지(오른쪽). 양의지는 라모스가 팀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 두산 베어스

두산 관계자는 "라모스가 시즌 초반 타격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때 라모스가 사과하지 않았더라면 함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수단에 한번 사과를 하고, 양의지가 라모스의 세리머니를 같이 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양의지가 먼저 세리머니를 함께하면서 라모스에게 손을 내밀었던 게 정말 컸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라모스는 2022년 kt 위즈와 총액 100만 달러에 계약하고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발가락 골절상 여파로 18경기 만에 방출된 아픈 경험이 있었다. 두산이 2년 전보다 적은 금액인 총액 70만 달러(인센티브 10만 달러)를 제안했을 때 기꺼이 받아들인 건 한국에서 '실패한 선수'라는 이미지를 지우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두산 외국인 스카우트 관계자는 계약 당시 "한국에서 다시 뛸 기회를 준 것에 정말 감사해하더라. 지금 굉장히 의욕에 차 있고, 한국에 와서 더 열심히 하겠다는 그런 마음가짐을 보여줬다"고 했는데, 본인 기대대로 풀리지 않으니 더 그런 모습을 보였던 게 사실이다.

라모스는 현재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승부욕이 앞설 때면 예상하지 못한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한다. 지난 8일 잠실 KIA 타이거즈전에서 상대 선수를 도발하는 소음을 낸 것. 3-4에서 5-5로 따라붙은 7회말 2사 3루 김재환 타석 때 3루주자였던 라모스는 상대 투수 최지민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면서 소음을 냈다. 라모스와 가장 가까이 있던 유격수 박찬호가 라모스에게 '하지 말라'는 취지의 경고를 줬고, 최지민이 김재환을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이닝 교대에 들어간 순간 김선빈을 비롯한 KIA 선수들은 일제히 라모스를 향해 불만을 표출했다.

두산은 KIA의 항의를 들은 이후 곧장 라모스의 잘못을 인정했다. 두산 주장 양석환은 경기를 마친 뒤 KIA 주장 나성범에게 사과했고, 두산 박흥식 수석코치는 KIA 진갑용 수석코치에게 전화해 사과했다. 라모스는 '한국에서는 문제가 되는 행동인지 몰랐다'는 취지로 설명한 뒤 선수단에 사과했다. KIA 측도 재발 방지를 약속받은 뒤 두산 측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이승엽 감독은 "그런 일은 처음이라서. 우리도 몰랐다. 다음부터는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런 긴장된 상황에서는 상대팀을 자극하는 게 사실 좋은 게 아니다. 항상 프로는 페어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를 존중해 줘야 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은 앞으로 안 하도록, 다음부터는 다시는 하지 않도록 우리가 확실히 좀 주입을 시켜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문화가 다르고, 야구를 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 실수라고 생각한다.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언제 어떻게 튈지 모르는 독특한 성격을 지녔다고 볼 수 있지만, 라모스는 어쨌든 올해 두산과 함께하면서 야구 외적으로도 성숙해지는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제 라모스는 논란에서 벗어나 야구 실력만으로 인정받는 선수로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일만 남았다.

▲ 두산 베어스 헨리 라모스 ⓒ 두산 베어스
▲ 두산 베어스 헨리 라모스 ⓒ 두산 베어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스포티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