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선] 4명도 274명도 다 민간인, 모두 피해자

김기석 2024. 6. 1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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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국제부장 경제부문장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가 있다. 개봉한 지 26년 된 고전이지만 지금도 대표적인 전쟁영화로 인정받는 수작이다. 제목은 다소 가볍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운이 지금까지 이어질 정도로 내용은 무겁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라이언 일병을 포함해 4형제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는데 형제들은 모두 죽고 라이언 일병만 살아남았다. 이에 미국 정부는 라이언가의 추가적인 비극을 막기 위해 최정예 군인 8명으로 된 팀을 구성, 최전선에 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흥미로웠지만 사실 내용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1대 8. 한명을 구하기 위해 더 많은 군인을 희생시키는 게 맞는 명령인가 싶었다. 명령을 따르는 그들의 태도에서 명예와 자랑스러움도 느껴졌지만 마지막 모습에서는 허탈함도 느껴졌다. '그'를 구하고 대신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이 영화가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잘 모르겠다.

이스라엘이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에 억류된 인질 중 4명을 구출해냈다. 하마스에 끌려간 지 8개월, 245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환하게 웃는 그들과 가족들의 모습에서 안도감과 행복감이 보인다. 다행이다. 아직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는 다른 가족들에게 희망을 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희생이 너무 컸다. 이스라엘이 4명의 인질을 구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 수는 최소 274명. 한명을 구하는 과정에서 70명가량이 사망한 것이다. 부상자가 598명에 달하니 사망자가 더 나올 수도 있다. 특히 어린이의 피해도 큰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이 더 크다. 많은 언론사들이 '살해' '학살'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피해자 측인 가자지구 보건부의 발표니 부풀려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망자가 100명가량이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해도 잔혹함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하마스가 민간인을 방패로 세워서 피해가 컸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은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팔레스타인인 입장에서는 무자비한 살상이나 다름없다.

전쟁 시작의 책임이 하마스에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잔인했고, 무자비했다. 특히 군인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전 세계가 분노했다.

그러나 이제는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이유는 같다. 민간인의 희생이 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보복공격에 나선 이후 가자지구에서 3만7000여명이 사망했다. 절반이 어린이와 여성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제사회도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고 있다. 국교를 단절하는 나라도 있고 교역을 중단하는 국가도 나오고 있다. 미국 대학가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반이스라엘 시위도 확산되고 있다. 맹방인 미국도 고민하는 모습이다. 여론에 밀려 계속 지원을 하고 있지만 탐탁지 않은 것은 명확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향해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전쟁을 질질 끌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비판하기까지 했다.

국제적으로 망신도 당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하마스 지도부는 물론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BBC는 "유엔이 지난해 이스라엘군을 어린이 보호에 실패한 범죄자 명단에 추가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불명예다.

내부에서도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반네타냐후 시위는 이어지고 있고, 네타냐후와 함께 전시내각을 구성하던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가 각료에서 물러났다.

일부에서는 이번 구출작전으로 휴전이 더 멀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질 구출로 네타냐후 총리가 숨쉴 틈을 찾게 된 데다 간츠 대표의 이탈로 극우세력에 더 의존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실제 미국 NBC는 "끔찍한 사망자 수를 두고 항의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휴전 합의에 조만간 도달할 가능성은 사라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애꿎은 민간인 피해만 더 늘어날 것 같아 걱정이다.

kkskim@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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