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선거 최대승자는 伊 멜로니 총리…EU 흔드나(종합)
극우 르펜, 중도 폰데어라이엔 모두 구애…어느 쪽이든 EU서 영향력 커져
(로마·서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김연숙 기자 = 9일(현지시간) 종료된 유럽의회(EU) 선거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최대 승자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 독일에서 집권 여당이 고전을 면치 못한 것과 달리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강경 우파 여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은 2022년 9월 조기 총선 때보다 득표율을 끌어올렸다.
향후 EU 내 중도 우파와 극우파 모두에게 구애를 받게 된다면 그가 누구와 손을 잡든 EU 의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안사(ANSA) 통신과 일간지 코리에레델레세라에 따르면 개표가 거의 완료된 상황에서 Fdl는 득표율 28.8%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FdI는 EU 내 강경 우파 정치그룹인 유럽보수와개혁(ECR)에 속한다.
FdI는 2022년 9월 총선 때의 득표율 26.0%를 3%포인트 가까이 뛰어넘었다. 집권 연정의 득표율 역시 2년 전의 43% 미만에서 47% 이상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선거는 사실상 각국 기성 정치권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이었다.
연정 파트너인 전진이탈리아(FI) 소속의 리시아 론줄리 상원의원은 이번 선거로 "현 정부가 확실히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멜로니 총리 승리의 여파는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GMF)의 제이컵 키르케고르 선임연구원은 "멜로니 총리가 내치를 확고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EU 수준에서도 추가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고 진단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멜로니 총리의 승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패배와도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멜로니 총리가 이탈리아에서 업적을 남겼다며 다음 단계로 유럽에서의 권력을 원한다고 전했다.
현재 멜로니 총리는 연임을 노리는 중도우파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현 집행위원장과 프랑스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에게 동시에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극우 정당의 약진함에 연임이 불투명해진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프랑스 국민연합(RN)의 대중 정당화를 꿈꾸는 르펜 모두에게 멜로니 총리는 연대의 대상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EU 내 제1당 격인 중도우파 유럽국민당(EPP), 르펜의 RN은 유럽의회 극우 정치그룹 정체성과 민주주의(ID) 소속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멜로니 총리,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르펜 RN 의원을 두고 "유럽을 만들 세 명의 여성"이라며 이들의 합종연횡이 유럽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멜로니 총리는 둘의 제안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는 10일 현지 라디오 RTL 102.5와의 인터뷰에서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의 연임 지지 여부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일단 거리를 뒀다.
이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중도 우파를 더 많이 바라보며 이념보다는 실용적인 정책을 펼치는 유럽"이라며 "여기에 이탈리아는 근본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멜로니 총리의 FdI가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주요인으로 '외연 확장'이 꼽힌다.
파시즘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추종하는 네오파시스트 정당 이탈리아사회운동(MSI)에서 정치를 시작한 그는 집권 전만 해도 '여자 무솔리니'라고 불릴 정도로 반이민, 반동성애, 반유럽통합 등 뚜렷한 극우성향을 나타냈다.
하지만 2022년 10월 이탈리아 사상 첫 여성 총리에 취임한 뒤에는 온건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다. 절제된 언어로 과격하고 위험하다는 이미지를 희석했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대러시아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등 친EU 행보를 보였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한 적극적인 소통과 코로나19 팬데믹 후 유럽 내 이례적으로 높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4.2%) 등으로 이탈리아 내에서 지지율을 높여왔다.
총리 부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찾는 등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긴밀한 협력관계도 유지해왔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진영이 다르고 일부에서는 극우 정치인으로 평가하는 멜로니 총리에게 먼저 손을 내민 이유다.
지난해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첫 유럽 순방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정상만 만나자 이탈리아에서는 '외교 참사'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처럼 국제 무대에서 푸대접받았던 멜로니 총리는 불과 1년 4개월 만에 유럽의회 선거의 최대 승자로 떠오르며 새 유럽의회에서 주도권을 쥐게 됐다.
changyong@yna.co.kr, noma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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