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김경문 한화 감독, 배움의 열정으로 기회를 잡았다.

이상희 기자 2024. 6. 1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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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한화 감독 | 사진=한화 구단 홍보팀 제공)

(MHN스포츠 애리조나(美) 이상희 기자)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는 명언이 있다. 최근 한국프로야구(KBO) 한화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한 김경문(66) 감독을 보고 있으면 이 명언이 자연스럽게 떠 오른다.

2년전 이맘때였다. 당시 기자는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에 있는 LA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루키팀에서 초청강사(Guest instructor)로 활동 중인 김경문 감독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갔다.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루키팀의 소재지 글렌데일과 피닉스 등 인근 지역의 한여름 기온은 섭씨 40~45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미국 내에서 가장 더운 곳으로 유명하다. 기자가 김 감독을 만나러 간 날은 저녁 7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기온이 섭씨 44도였을만큼 무더웠다.

게다가 당시 피닉스 지역은 우기(Monson season)에 접어들어 먼지를 동반한 모래바람도 많이 불었다. 아울러 루키팀들의 경기는 대부분 연습구장에서 치러지기 때문에 더그아웃 환경도 매우 열악했다. 그 흔한 선풍기 한 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먼 발치에서 김 감독을 발견했을 때 기자의 머리엔 "왜"라는 단어가 문득 떠 올랐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프로야구 감독 출신으로 올림픽 금메달까지 획득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돈도 그리고 명예도 이미 다 소유한 그가 "왜" 이런 열악한 시설에서 고생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LA 다저스 루키킴 초청강사 시절의 김경문 감독)
(마이너리그 루키팀 더그아웃 시설은 열악하기로 유명하다)

김 감독은 그런 나에게 "어린 루키리그 선수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또 다른 경험도 하고, 많이 배우고 있다"며 근황을 전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야구 감독으로 냉정한 승부 세계에서 쉼없이 달려왔다. 지금의 이 시간은 그런 나에게 주는 휴식 같은 시간이자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김 감독 스스로 "쉼 없이 달려왔다"고 말했듯이 그는 선수 은퇴 후 1994년 삼성 코치부터 2021년 도쿄올림픽 야구대표팀 감독까지 무려 30년 가까이 지도자 생활을 했다. 2004년 두산 지휘봉을 잡으며 시작해 NC로 이어진 프로야구 감독 경력만 해도 15년이나 된다.

김 감독은 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 감독으로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일궈내 '올림픽 금메달' 감독으로 통한다. 오랜 지도자 경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맡는 팀마다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던 지도력 덕분에 국내에서 몇 안되는 '명장' 평가를 받는다.

기자는 당시 김 감독에게 마이너리그에서 어린 선수들과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우문을 던지자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나의 경력을 인정해줘 이런 기회를 제공해준 다저스 구단과 곁에서 도와준 지인들에게 고맙다"며 "야구는 시대가 바뀜에 따라 지도하는 방법도, 경기를 풀어가는 운영 방식도 바뀐다. 때문에 야구에는 정답이 없고, 배우는 데 있어서 나이와 환경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는 현답을 내놓았다.

(NC 시절의 김경문 감독)
(김경문 감독은 선수들을 위해 스스로 운동장 상태를 돌보는 등 권위를 내려 놓은 감독으로 유명하다)

당시 김 감독은 한국프로야구 두산과 NC 때처럼 다저스 루키팀에서도 등번호 74번을 달고 있었다. 그는 "여기에 있는 동안 내가 타의 모범이 되고 흠 잡히는 언행을 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다저스 구단과 한국 야구인들의 인연이 앞으로도 계속될 텐데 내가 잘해야 내 뒤에 오는 다른 한국 야구인이 인정을 받거나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앞선 이의 책임감에 대해 언급했다.

김 감독에게 '현장으로 복귀할 생각이 있냐'고 묻자 그는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라며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혹시 하늘에서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면 모를까, 내 스스로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겸손해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배움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으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던 김 감독은 결국 한화가 내민 손을 잡으며 현장에 복귀했다. 준비된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은 비단 기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듯 싶다.

김경문 감독은 한화의 지휘봉을 잡은 뒤 10일 현재 3승 2패 1무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1승만 더 추가하면 자신의 감독 통산 900승 고지도 밟게 된다. 이는 김응용(1554승)-김성근(1388승)-김인식(978승)-김재박(936승)-강병철(914승) 감독에 이어 역대 6번째 900승 감독이 되는 대기록이다.

준비된 김경문 감독에게 찾아온 기회가 과연 한화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넘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김경문©MHN스포츠 DB, 한화 구단 홍보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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