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군 vs 계승자 갈등…가야금산조 ‘본향’ 위상 흔들
민선 8기 들어 전승교육 예산지원 중단, 12년 개최 가야금대회 취소 논란
“최고 예우 전폭 지원했으나 성과 미비” vs “업적 지우기…말도 안되는 소리”
(시사저널=정성환·조현중 호남본부 기자)
가야금 산조 창시자인 악성 김창조 선생을 배출한 전남 영암은 자타공인 한국 '가야금산조 본향(本鄕)'이다. 이를 반영해 영암군에는 지난 2014년 3월 전통 한옥 형식으로 한국의 멋을 살린 전국 최초 가야금산조기념관이 건립됐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음악을 주제로 한 '가야금산조 테마공원'도 조성돼 있다. 십수년째 가야금 전국대회도 이곳에서 열려 가야금산조 본향으로서의 지위도 굳혀갔다.
호사다마일까. 무형인간문화재 양승희 선생(계승자)은 3명의 전임 군수들의 임기동안 아무변동 없이 김창조 가야금산조의 맥을 잇고 보존사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민선 8기 들어 '김창조 가야금산조' 계승사업을 둘러싸고 영암군과 인간문화재 양승희 계승자 간에 깊게 패인 갈등으로 가야금산조의 '본향'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영암군은 지난해 삭감에 이어 올해는 전승교육 예산 지원을 전면 중단하면서 가야금산조의 보존‧전승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또한 올해로 12회째인 '김창조 가야금 전국대회'마저 가야금산조의 본고장인 영암에서 열리지 못하고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으로 알려져 지역민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역사회에선 '가야금산조의 본향인 영암에서 국내 가야금 산조의 정통 맥이 끊길 위기에 있다'고 걱정하며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영암군-양승희 인간문화재 사이 갈등 내막은
가야금 산조 인간문화재 보유자(제23호)인 양승희 계승자는 영암 월출산 기슭 기찬랜드 내에 들어선 가야금산조테마공원 조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영암군이 양 계승자가 주도하는 가야금산조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7년 간 지속돼온 전수 교육이 완전히 중단됐다. 이에 인간문화재에 의한 지역 후손들에 대한 전형적인 계승의 맥을 끊음은 물론 국가무형유산의 원형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7년 시작된 가야금산조 전수교육은 전남도와 전남도교육청, 영암군이 각각 1억원씩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이후 2018년 전남도가 영암군에 국한된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은 불가하다고 결정하면서 군이 부담을 모두 떠안아 지난해까지 비용을 지원해왔다. 하지만 영암군은 양 계승자가 진행해온 가야금산조 전수 교육 관련 예산을 지난해 대폭 삭감한데 이어 올해는 전액 삭감하며 가야금산조 교육을 전면 취소했다. 예산 투입 대비 실효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17년 전수교육이 시작된 이래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테마파크를 찾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했고, 가야금산조 공연을 열어도 관람객은 적었으며 7년간의 전수교육에도 계승자가 없는 등 성과가 미미했다는 게 영암군의 주장이다.
군 관계자는 한 지역 언론을 통해 "그동안 십 수년간 많은 예산을 들여 경연대회 등 가야금산조 계승 작업이 이뤄졌지만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군민들과의 공감대 형성과 예산투입에 대한 효과 부분에 대해서도 일부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양승희 선생이 가야금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의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고 가야금산조기념관이 영암군에 들어설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가야금산조의 본향으로서 어느 특정인을 위한 사업이 아닌 김창조 음악을 기리고 계승하는 사업으로서 여러 유파의 많은 국악인들이 영암에서 활동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암군 "특정인의 전유물 아냐…전승교육 지금도 계속돼"
또 영암군은 전승교육이 중단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영암에서는 방과 후 교실과 주말 강습 등을 통해 가야금산조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창조 가야금산조를 보존하는 것이 사업목적으로, 현재 가야금산조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며 "가야금산조를 하고 계시는 분이 한 분(양승희)은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본지의 취재를 종합하면 영암군은 지난 2022년 9월과 10월 남도문예 르네상스 시·군 특화사업인 '종가 더 琴(금)' 음악회를 두 차례 진행한 바 있다. (사)한국전통문화연구회 영암지부 A 예술감독이 공모사업으로 따내 주최한 '종가 더 琴(금)' 공연에는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도 연주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는 민선 6기 후반부터 최근까지 영암군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가야금산조기념관 관리·운영 조례안 개정을 통해 가야금산조기념관 옆 트로트가요센터에 가야금 교습소 개설과 함께 상주단체로 지정받아 가야금산조 계승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양승희 계승자 측은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유지되고 구현돼야 하는 고유한 무형유산은 인간문화재에 사용하는 전형(典型)이다"며 "전통문화를 보존·계승·발전하는 것 역시 인간문화재의 의무이기에 전수자에 불과한 A 감독의 '종가 더 琴(금)'에서 그 역할을 맡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영암 가야금산조의 종가는 국가유산청에서 인정한 산조 창시자 김창조-인간문화재 김죽파-인간문화재 양승희 계보이다"며 "김창조 산조와 김죽파 산조는 법에 따라 보유자인 양승희에 의해서만 전형(典型)의 맥이 유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 "직계 제자 제치고 굳이 다른 강사에게 맡기나" 갸우뚱
일각에선 김창조 가락의 원형을 지금까지 잘 계승해 온 직계 제자인 양승희 계승자를 제외하고, 굳이 왜 다른 강습과 강사를 통해 '김창조 가야금산조'를 계승하려는지 모르겠다며 영암군 행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양 계승자는 사비를 들여 해외에서 자료를 수집해 가며 김창조 가야금산조의 원형을 복원해 낸 인물이다. 김창조 선생의 가락에 대해서는 이론과 실기에 있어 국내 일인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존하는 김죽파 산조 55분은 1980년 양승희 독주를 위해 죽파 선생이 김창조 산조의 바탕위에 자신의 가락을 첨가해 현존하는 국가무형유산인 김죽파 산조를 직접 완성했고, 유일무이한 후계자라고 죽파는 친필 유언을 남겼다.
그동안 성과가 미미했다는 영암군의 지적에 대해 양 계승자는 "'양승희의 업적 지우기'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그는 "문화예술의 성과는 실력으로 나타난다"며 "2017년~2022년(코로나 시기인 2019년 제외)에 영암 어린이가 전국대회에서 장관상 및 상장 34회 수상과 영암 어린이 104명 국립무형유산원 인간문화재 양승희 전수자로 등록했으며, 영암 어린이 4명은 2024년 국립무형유산원의 이수자시험 신청서에 접수했다"고 말했다. 이수자시험은 대학교수도 힘겨워하는 엄격하고 힘든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양 계승자는 최고 예우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다는 영암군의 설명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일축했다.
"되레 본고장 영암서 홀대받는 기분"
지역민과 예술계 인사들도 영암군 행정을 납득키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야금산조테마파크의 운영 및 공연 활성화 여부는 양승희 계승자가 아니라 영암군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시각이다. 김창조 가야금산조계승사업에 밝은 한 군민의 얘기다.
"테마파크는 양승희 선생의 것이 아니라 군민의 것이다.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영암군에 있다. 막대한 국도비와 군비를 들여 지은 테마파크를 찾는 이가 거의 없는 것은 영암군의 활용 대책 부재가 빚은 산물이다. 가야금산조테마파크의 운영 활성화 여부는 양승희 선생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영암군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특히 민선 8기 우승희 군수로 바뀌면서 영암군의 가야금 관련 행사나 지원이 폐지·축소되는 등 세계가 경탄하는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가야금산조'가 본고장 영암에서 오히려 홀대받는 기분이 든다."
지역 예술계 인사는 "설령 민간보조금 삭감조치가 불가피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가야금산조의 본향으로서 마땅히 보존계승을 위해 해야 할 사업 예산에 대해서까지 성과 운운하며 전액 삭감하고 사업을 전면 취소하는 한 것은 누가 보아도 성급하고 감정적이다"면서 "민선 8기 우승희 군수체제가 들어서면서 사업기조가 확 바뀌고 양승희 전승자에 대한 눈에 띄는 홀대가 또 다른 특정인에게 공연 등을 사업을 몰아주기 위한 것이라는 세간에 떠도는 풍문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갈등의 불똥은 여러 군데로 튀고 있다. 영암군은 2011년부터 2022년까지 지속된 '김창조 가야금 전국대회'를 2023년 취소했고, 양승희 선생과 영암 어린이연주단은 10개가 넘는 국가행사 및 영암행사에서 공연이 전면 취소됐다. 특히 그동안 영암군에서 12년째 개최돼온 '김창조 가야금 전국대회'가 올해는 서울에서 열릴 것으로 보여 지역민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대회는 오는 8월 23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서초 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정작 영암에선 지자체의 예산 지원 불가 조치로 개최가 불발됐던 대회가 서울시 민간국악행사 지원 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또 양승희 인간문화재 주도의 가야금산조 전승 교육이 중단되면서 국가유산청(문화재청)에 전수자로 등록된 영암 어린이 전수자 100여 명이 전수자 취소가 됐다. 지난 2016년 영암 어린이 가야금 전승 교육이 시작돼 '영암 어린이 가야금연주단'이 창단된 시기에는 양 전승자로부터 가야금을 배워 국립무형유산원의 전수자로 등록된 어린이들이 100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20여 명만 남아있다. 특히 영암 어린이 4명이 2024년 국립무형유산원의 이수자시험 신청서에 접수했으나 양승희 선생의 전승교육이 중단되면서 응시기회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우수 이수자에게는 2년간 매달 50만 원씩 지원하고 800만 원의 독주회 비용 등도 제공되며 국가의 문화강사 자격증을 부여받게 된다. 또한 향후 전남지방문화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고, 산조 창시자인 김창조-인간문화재 김죽파-인간문화재 양승희 계보를 이어 영암 가야금산조의 본향을 지키는 소중한 역할도 맡게 된다.
양승희, '업무방해'로 영암군 경찰 고소…법정 싸움 비화
문제의 심각성은 양 측 간에 깊게 패인 갈등의 골을 메꾸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영암군은 김창조 가야금산조 보존·계승 사업에 대해서는 그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양 계승자에게 맡기지 않고 운영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양 계승자 측은 영암군 행정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3명의 전임 군수들의 임기동안 탈 없이 진행되던 김창조 가야금산조 사업이 민선 8기에 들어 기조가 바뀌었다고 느끼면서다. 민선 8기에 사설 교육소 허용과 예산 지원, '종가 더 琴(금)' 프로그램의 특성화 지원까지 모든 혜택은 A 감독에게 돌아갔고, 그 사이 양승희 명예관장실은 폐쇄되고, 관련 행사 취소와 전승 교육 중단으로 사실상 쫓겨나면서 계승사업에서 철저하게 배제됐다는 것이다.
특히 명예 관장실 폐쇄는 법정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양 계승자는 "영암군이 본인의 명예관장실에 임의로 쳐들어가 23년간의 개인 기밀문서, 악기 등을 처분하고 두 달이 넘도록 어디에, 어떻게 폐기했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있다"며 "영암군의 부당한 퇴거 요청에 끝까지 맞서겠다"고 밝혔다.
현행 무형문화재 관련 법에는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굴을 위하여 국가무형문화재를 보호·육성해야 한다'는 국가의 의무와 함께 전승 활동을 충실히 수행해야 하는 무형문화재 전수자의 책무도 명시돼 있다. 이에 국가유산청과 국립무형유산원의 전수자로 등록된 영암 어린이들은 인간문화재 양승희 선생과 함께 공개·기획행사 등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그럼에도 영암군이 인간문화재의 국가중요사무에 대한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양 계승자는 11일 오후 목포 경찰에 출두해 영암군을 형사 고소한 '인간문화재 양승희 국가중요사무 업무방해'에 대해 고소인 진술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 오전에는 영암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에 대해 영암군 관계자는 명예 관장실 폐쇄와 관련, "영암군에서 공식절차를 거쳐 명예 관장의 명칭을 부여한 적이 없고, 다만 가야금 교육 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따로 방을 마련해 준 것"이라며 "법적 대응 시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김창조 가야금산조' 계승자 양승희는 누구?
양승희 명인은 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병창 및 가야금산조 보유자(인간문화재)다. 1970~80년대 창작 가야금곡을 양승희가 타지 않으면 연주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독보적인 실력을 인정받았다.
가야금 산조 인간문화재 보유자 양 명인은 영암 월출산 기슭 기찬랜드 내에 들어선 가야금산조테마공원 조성사업 추진위원장을 맡으면서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가야금 산조는 1890년 김창조 선생이 창시해 김창성조-김난초-양승희로 이어지는 가야금 분야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국가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양 명인은 특히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의 대가다. 김죽파(1911~1989) 선생은 일제강점기 가야금 명인인 김창조(1865~1919)의 손녀로 할아버지에게 배운 산조를 자신만의 새로운 산조로 만들어 이를 다시 양승희에게 전수했다. 현존하는 김죽파 가야금산조(공연시간 55분)는 김죽파가 1980년 후계자로 인정한 양승희에게 직접 작곡해 물려준 가야금 연주로 김죽파는 전형을 보유한 양승희에 대해 유일무이한 자신의 후계자임을 유언장으로 기록해 놓았다.
양 명인은 1988년 가야금 산조 준보유자에 이어 2006년 인간문화재(23호) 반열에 올랐다. 양승희는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를 밝혀내며 그간의 공로를 국악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양승희가 밝혀내기 전까지 국내에서는 가야금산조의 창시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양 명인은 고 김죽파 유언에 따라 1990년(김죽파 타계 1년후) 중국 연변에 들어가 북한 자료인 '문화유산', '조선음악', '조선예술' 등 책자 350여권과 1000여 편의 북한 논문 자료(1950년 대 이후)를 한국으로 가져와 연구 분석한 후 1999년 가야금산조의 창시자가 김창조임을 책자로 발간, 논문 발표로 고증했다.
해방 이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김창조 산조 원형을 공연했으며, 문화재청에서는 이를 인정해 국비 등 190억원을 들여 김창조의 고향인 영암에 가야금산조 기념관을 설립해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와 함께 양승희는 지난해 북한 인민배우 안기옥과 정남희, 한국 인간문화재 김죽파, 양승희로 전해진 가락들과 예술을 영어 DVD로 제작해 국제 학술대회(ICTM)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왔다.
학술 및 공연 분야에서도 양승희는 △김창조 가야금산조 창시자를 발굴 △문화체육관광부의 2004년 '8월의 문화인물' 지정 △국립국악원에서 김창조 업적 기념행사를 1개월간 진행 △테마파크 조성 등 190억 정부 지원 확정(국비 100억, 군비 90억)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가야금산조 국가유산청(구 문화재청) 등록 확정위해 2023년에 영문신청서 작성 제출 등 개인적 노력을 기울였다.
시사저널은 양 측 간 논란이 된 사항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10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영암군 해당부서에 전화통화를 요청했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에 영암군의 경우 지역 언론 등에 보도된 내용을 소개했으며, 연락이 닿은 양승희 인간문화재의 반박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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