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폴리시, 최고 정책전문가가 말한다] `회사의 이익`이라는 해로운 농담

2024. 6. 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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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용 K정책플랫폼 거버넌스 연구위원·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밸류업'을 둘러싼 최근 논의에서 기업 지배구조를 주주 중심으로 개선할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낮은 지분율에도 의사결정 권한을 장악한 지배주주가 다른 주주 일반에게 손해를 입히면서 사적 이익을 편취하는 행태야말로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결정적 요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억지하는 기능을 수행할 제도로 회사의 이사에게 신인의무(fiduciary duty)를 부과하고 그 위반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 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잘 작동되어 왔다고는 물론 볼 수 없는데, 상법상 그로써 보호되는 이익의 주체에는 '회사'만이 포함되고 주주는 빠져 있다는 점이 그 이유로 지적되곤 했다.

이에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상법 조항의 '회사를'을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로 변경하여 이사가 주주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는 점을 명시하자는 개정안이 지난 국회에 이어 이번에도 이미 제출된 상태다. 그러나 이 개정안에 흔쾌히 찬성하기에는 주저되는 측면도 있다.

이사는 '회사와 그 주주(the corporation and its shareholders)'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은 널리 채택되고 있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꽤 모호한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미국 델라웨어주 판례에서도 이사회가 주주 외에 채권자나 근로자와 같은 다른 성원들(constituencies)의 이익까지를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를 이해한 것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이익이 주주의 이익에 앞설 수는 없다고 본 것도 있다.

주주 아닌 다른 성원들의 이익은 어차피 그들이 회사와 맺은 계약에 따라 보호될 테니 이사가 이를 나아가 고려할 필요란 없다는 견해도 나름 설득력이 있지만, 그러한 계약상 이익을 실현하고자 소구할 대상이 최종적으로는 집합적인 회사 재산이나 총체적인 기업가치라는 국면에서는 그들이 주주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는 점도 주목되어야 한다.

이 때 최후순위 잔여 청구권자인 주주 일반에게 이로운 결정은 많은 경우 그보다 선순위 청구권자인 다른 성원들에게도 이로울 것이지만, 그러한 관계가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우선주와 보통주처럼 비율이 아니라 순위를 달리하는 관계도 있고 보면, 그리 분명한 것만은 아니다.

기실 문제의 핵심은 '회사'의 의미가 오해 혹은 곡해되고 있다는 데 있다. 회사를 비롯한 법인이 사람처럼 실재하느냐는 법학계의 오래된 농담 같은 질문이다. 그러나 회사란 그 성원들과 구별되는 독자적 이해관계의 주체라는 관점은 문제가 있다.

'회사'를 단지 그 성원들을 집합적으로 지칭하는 축약적 표현이 아니라 회사 그 자체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는 그 뒤에 자리한 구체적 인간들 사이의 충돌하는 욕망과 이해를 감춰버려 그러한 충돌의 공정한 해결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법원은 이처럼 회사의 이익이란 주주나 다른 성원의 이익과는 다른 것이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예컨대 이사회가 제3자에게 신주를 저가로 발행함으로써 기존 주주가 부의 이전에 따른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반드시 회사에 손해가 생겼다고 볼 수는 없다는 듯한 취지의 판결들로부터 확인된다.

그러나 이러한 저가 발행은 회사의 성원인 기존 주주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그렇다고 채권자와 같은 다른 성원에게 그에 맞먹는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닌 만큼,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회사에 손해가 되는 거래임이 명백한 것이다. (이 때 신주를 인수하는 제3자는 회사의 성원이 아니라 거래 상대방일 따름이므로, 저가 인수에 따른 그의 이익은 그 단계에서 회사의 이익으로 포섭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최선의 방향은 우리 법원이 바른 태도를 명확히 밝힘으로써 이 혐의를 떨쳐버리는 쪽일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최선이 실현될 수 없다면, 상법 개정에의 주저를 거두는 차선의 길만이 남은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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