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라이시 사망 이후 이란의 핵카드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헬기는 왜 떴을까. 외신이 전해온 사진을 보면 안개 자욱한 험준한 산악지형이다. 구조대원들이 2~3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를 헤치며 긴박하게 움직였다. 얼마되지 않아 시신은 수습됐다. 이란의 2인자 라이시 대통령의 헬기 추락사 소식이 시시각각 전세계에 타전됐다. 이란 당국은 노후화된 헬기를 사고원인으로 꼽는 것 같다.
라이시의 장례식엔 수백 만명의 이란인들이 운집했다. 군 호위대가 관을 옮기는 동안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운구행렬을 뒤따르며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반복해 외쳤다. 그러나 "속 시원하다"며 그의 죽음을 반기는 사람들도 적잖았다. 라이시는 그렇게 사라졌다.
라이시는 단순히 대통령 역할을 넘어선 '이슬람 국가'를 향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라이시는 이슬람혁명 발발 후 1981년 검사 생활을 시작, 검찰총장에 이어 사법부 수장으로 30년간 법조계에 몸담았다. 그는 1988년 반체제 인사 수천명의 처형을 명령한 소위원회 일원으로 활동했고, 검사 시절 숙청 작업의 전 과정을 주도했다. 그래서 그의 또다른 이름은 '테헤란의 도살자'였다.
라이시의 사망으로 이란의 핵무기와 우라늄 개발 정책이 어디로 향할 지 또다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이란과의 핵사찰 실무 협상은 중단됐다. IAEA는 라이시의 갑작스런 사망에 당혹스런 표정이다. 핵 개발 위기를 반영하듯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3개국(E3)은 이란을 향해 당장 핵시설 사찰을 위한 협력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IAEA는 이란의 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들여다봤다. 지난달 11일 측정한 이란 내 60% 농축 우라늄 비축량은 142.1kg에 달했다.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 적힌 양보다 20.6kg 증가한 수치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이란은 불과 단 며칠 만에 핵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3개의 핵무기를 뚝딱 제조할 수 있다고 미 당국자들은 분석했다.
꼬일 대로 꼬인 이란의 핵 문제는 2015년에 체결된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이 흔들리면서 비롯됐다. 이 협정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대가로 경제 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을 골자로 했다. 그러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역사상 최악의 거래'였다고 맹비난하며 JCPOA를 파기해버렸다. 이란은 이를 기회 삼아 핵 프로그램을 재개할 명분을 얻었다.
JCPOA를 부활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라이시가 집권한 2021년 8월 이후에도 여러 차례 협상이 이뤄졌지만 이듬해인 2022년 8월 마지막 회담을 끝으로 더이상 진전은 없었다. 이제 국제사회는 이란이 빠르면 6개월 이내에 조잡한 수준의 '핵폭발 장치(핵폭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라이시의 사망에 따른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가 오는 28일 치러진다. 이번 선거의 주요 변수는 단연 이란 핵 정책이다. 대선 후보 6명 중 대다수가 강경 보수파다. 선거를 통해 이들 중 한 명이 대통령이 되겠지만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의중이 절대적이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하메네이가 쥐고 있다. 따라서 새 대통령이 등장해도 핵개발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은 어떤 핵카드를 꺼낼까. 수년간 서방의 제재가 쌓이고 이란 경제가 극도로 위축되면서 이란 내부에선 '북한 모델'을 따르자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하메네이는 이란의 원자력산업 기간시설을 건드리지 말라고 서방에 경고했다.
관건은 미국의 입장이다. 미국은 오는 11월 대선에서 바이든이든 트럼프든 이 둘 중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이란과 핵 협상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중동 최대의 숙제가 미 대통령 당선자 책상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 kt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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