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 동거’ 지원, 저출산 대책될 수 있나? [세상읽기]

한겨레 2024. 6. 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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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출생아 수의 가파른 감소를 완화할 수 있는 대책으로 비혼 출산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구 국가들의 사례처럼 ‘등록 동반자’ 제도를 도입하여 ‘비혼 부부’와 이들이 키우는 아이가 법적·제도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된다.

이러한 주장의 배경과 근거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비혼의 확산은 우리나라 출산율 하락의 중요한 요인이다. 25~39살 여성 중 결혼한 여성의 비율은 지난 30년간 85%에서 45%로 줄었다. 필자의 연구 결과는 30년간 출생아 수 감소의 약 85%는 비혼의 증가로 말미암은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둘째, 한국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비혼 출산 비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결혼하지 않은 커플에게서 태어나는 아이의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은 40%가 넘지만, 한국은 4% 미만에 불과하다. 이러한 여건에서 비혼 출산이 늘면 출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정책 방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각 개인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가족의 형태와 관계없이 그 구성원이 법적·제도적·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노력은 저출산 대책을 떠나서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이고, 특히 모든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꼭 필요한 일이다. 이는 청년을 비롯한 국민의 인식 변화를 적절하게 반영하는 길이기도 하다. 2020년 가족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데 20대 인구의 46%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필자는 비혼 동거 지원이 한국의 여건에서 실효성 있는 저출산 대책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선 정책의 의도대로 비혼 동거의 불이익이 사라져서 비혼 청년 인구의 상당수가 ‘동거 동반자’로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결혼한 부부도 아이를 낳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비혼 부부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혼한 부부의 출산율은 2010년 이후 급락하고 있고, 결혼해서 자녀를 갖지 않는 부부의 비중은 빠르게 늘고 있다.

사실 비혼 부부는 결혼한 부부에 비해 아이를 낳아 기르기 더욱 어렵다. 서구 사회에서 동거가 늘어난 중요한 이유는 결혼에 비해 해체가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혼 출산은 어머니나 아버지 혼자 아이를 키우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비혼 출산 비율이 약 40%인 미국의 경우,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진 저학력 여성의 약 3분의 1이 파트너가 없는 상태에서 출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볼 때 비혼 부부가 직면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나 잠재적인 경제적 어려움은 결혼한 부부보다 훨씬 클 것이다. 따라서 비혼 부부가 아이를 낳을 수 있으려면 혼자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한국은 저소득 한부모 가정에 월 최대 20만원을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동거혼 등록제도 도입과 같은 제도적 변화만으로 결혼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의 다수가 동거혼을 선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서구 국가들의 등록 파트너십 도입은 대체로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들 국가에서 동거와 비혼 출산 증가는 대부분 그 이전에 발생했다. 프랑스의 경우 1999년 시민연대협약 법률 제정 직전에 이미 비혼 출산의 비중이 40%를 넘어섰다. 즉 제도 도입으로 동거와 비혼 출산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진행된 가족의 변화를 반영하여 법과 제도를 고쳤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따라서 비혼 동거의 사회경제적·문화적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만 도입하는 정책은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다. 청년의 경제적 여건 개선 없이는 결혼할 수 있었던 커플들이 주로 비혼 동거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밝혔지만, 비혼 파트너십과 비혼 출산을 법적·제도적으로 보호하는 정책은 바람직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출산율 제고를 위해서가 아니라 인권 신장과 선택의 자유 확대 측면에서 그러하다. 빠른 출생아 수 감소가 초래하는 인구 위기의 심각성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자체로서 중요하고 가치 있는 정책을 굳이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태도는 다소 씁쓸하게 다가온다. 이는 해당 정책을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하는 데도,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저출산 대응 정책을 마련하는 데도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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