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통수권자가 확인도 하지 않고 격노하다니 [왜냐면]

한겨레 2024. 6. 1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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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처럼 패거리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집단의 상사를 잘 만나야 한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힘을 가진 상사의 잘못된 판단이 부하를 억울한 희생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확인 행정을 제대로 하려면 대통령이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과 국방장관 두 사람 모두에게 사건 내용을 확인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수사를 맡은 수사단장에게 사건 진상을 직접 확인하는 절차가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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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15일 인천항 수로 및 팔미도 근해 노적봉함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홍진옥 | ​전 인제대 교수

한국 사회처럼 패거리 문화가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집단의 상사를 잘 만나야 한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힘을 가진 상사의 잘못된 판단이 부하를 억울한 희생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채 상병 사건에서 수사 외압이라는 의혹을 받게 된 것은 국군통수권자인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국방장관의 전화 통화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확인 행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확인 행정이란 행정기관이 이미 발생한 사실이나 내용을 확인하는 행위로, 공무원에겐 기본처럼 강조되는 것이다. 국방장관과 대통령 두 사람이 통화한 것은 확인 행정이 아니다. 확인 행정을 제대로 하려면 대통령이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과 국방장관 두 사람 모두에게 사건 내용을 확인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국방장관 한 사람에게 수사 내용을 확인한다면 편파적이고 일방적인 확인일 뿐이다.

특히 수사 외압 의혹을 부추기는 증거로,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 하나?”라는 대통령의 격노 이후 국방장관이 수사 서류의 경찰 이첩 결재 서류를 번복하게 했다는 것과 그 이후 경찰로부터 사건 조사 서류를 다시 찾아오는 대반전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속담처럼 하필이면 국방장관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한 직후에 경찰로 사건 내용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고, 그날 낮 2시로 예정된 언론 브리핑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해병대 부사령관을 국방부 집무실로 불러서 지시를 내리기를 누구누구는 수사 언급하면 안 되고, 누군가에 대해 조치 혐의는 안된다는 메모 기록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이해 불가한 일련의 조치가 너무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힘을 가진 상사의 지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의혹을 받는 것이다.

“격노할 수 있다”는 변명으로 사건의 본질을 피해 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어떤 집단이건 상사의 사적인 감정이나 말 한마디가 수사에 영향을 주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수사를 맡은 수사단장에게 사건 진상을 직접 확인하는 절차가 빠져 있었다. 대통령이 수사단장으로부터 수사 내용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뒤에 얼마든지 채 상병 사건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할 수 있고, 수사에 오류가 있다면 수사단장을 보직 해임해도 늦지 않다. 현 정부는 확인 행정을 하지 않은 결과가 얼마나 불행한 참사를 초래하는지 이미 여러 번 경험해놓고도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

확인 행정은 공정한 집단 경영의 기본 규칙이다. 확인 행정을 하지 않는 집단은 거짓이 진실을 이기게 되고 불의와 부패가 싹 트기 시작한다. 사건의 진실이 아직까지 규명되지 못했고, 국민의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종섭 국방장관과 통화했던 내용을 왜 속 시원하게 밝히지 못하는가? 시간을 끌수록 사건 은폐 의혹만 커지고 국민의 불신은 깊어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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