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가꾸어 나가는 ‘어린이 식당’…따뜻한 공간 경험까지

한겨레 2024. 6. 10.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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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식당’을 소개합니다
어린이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는 ‘냠냠’
밥도 먹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참여
돌봄 필요한 지역사회 아동 발굴 계기도
강동구 등 지자체 운영 어린이식당 늘어
서울시 은평구 녹번로에 자리한 어린이 식당 ‘냠냠’의 전경. 입구 오른쪽 화분 옆엔 물통을 두어 누구나 자유롭게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했다. 박은아 객원기자

“문을 활짝 열어 둬야 지나가던 어린이도 식당인 줄 알고 들어오지 않을까요?”

“식당이 어린이한테는 너무 큰 공간이에요. 편의점처럼 쉽게 들어가기 힘들어요.”

“어린이 식당이지만 어른들도 오잖아요. 혼자 밥을 먹고 싶은데 어른들이 자꾸 말을 걸까 봐 싫을 수도 있어요.”

“발상의 전환으로 우리가 먼저 말을 걸면 어때요?”

아이들의 힘으로 자라는 ‘냠냠’

지난 6월7일 금요일, 서울시 은평구 녹번로에 자리한 어린이 식당 ‘냠냠’에서 어린이 손님 활성화를 위한 열띤 회의가 펼쳐졌다. 초등학교 4~6학년으로 구성된 냠냠의 어린이 운영위원 7명은 매월 1회 운영회의에 참여해 식당 운영에 관한 크고 작은 안건을 직접 논의한다. 더 많은 지역 주민과 어린이들에게 냠냠을 알리기 위해서 펼치는 행사에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 직접 행사에 참여해서 진행을 돕기도 한다.

어린이 운영위원 제도를 도입한 어린이 식당 냠냠이 문을 연 것은 지난 2월.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은광사회적협동조합 김명자 이사와 센터 교사들은 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뿐 아니라 지역의 모든 어린이가 편안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냠냠을 오픈했다. 지자체나 정부의 예산 지원 없이 자립적으로 운영하기에 재정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자율성을 갖고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기도 하다.

김명자 이사는 “좋은 재료로 만든 밥을 나눠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건강한 문화가 있다”며 “지역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한 밥을 통해 씩씩하고 활발하게 자라는 경험을 하기를 바랐고, 밥만큼은 평등하게 먹이고 싶었다. 나아가 자기 식사를 직접 선택하고 주체적으로 공간을 이용하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 문화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오픈 초기라서 아직 어린이 이용자가 많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직접 김밥을 주문하고 돈을 낼 때 뿌듯해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 사회는 어른들이 대신 모든 걸 결정하고 완성된 것을 제공하는 문화가 너무 크다. 부족하고 서툴더라도 아이들이 직접 시도할 수 있는 자율성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어린이 식당의 취지를 설명한다.

노키즈존이 늘어가는 현실에서 어린이 식당은 어린이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혼자 이용해도 안전하고 환대받을 수 있는 공간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냠냠은 아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매달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해서 선보이고 있다.

4월에는 기후 그림책을 읽고 퀴즈를 맞히는 ‘기후 그림책 읽고 골든벨 울려라’를, 5월에는 김밥을 직접 말아 보는 ‘김밥말아김밥’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5월 첫째 주에는 어린이날을 맞이해 초등학생 대상으로 김밥을 천 원에 판매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최근에는 식당 앞에 물통을 마련, 아이들은 물론 동네 주민들도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고 가면서 냠냠을 편안한 공간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냠냠의 이러한 운영 전반에는 어린이 운영위원 7명의 손길이 녹아 있다. 지원서 제출과 면접이라는 체계적인 절차를 통해 선발된 7명의 운영위원은 냠냠의 크고 작은 일에 직접 관여하면서 함께 공간을 만들고 키워간다. 어린이 운영위원이 공통으로 꼽는 운영위원 참여 이유는 어린이 식당이라는 공간에 대한 신기함과 반가움이다. 조은서(은평초등학교 6학년) 운영위원은 “어른들이 가는 카페는 많은데 우리만의 공간을 만든다고 하니까 기대가 됐다. 같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뭔가를 해보는 게 재밌다”라고 활동 소감을 전했다.

노키즈존 공간에 대해 묻자 어린이 운영위원들은 “식당에서 술 마시고 취하거나 목소리 큰 어른들을 보면 우리도 싫다. 우리도 불편하지만 참는 건데 어른들은 왜 참지 않냐” “친구가 다른 애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면서 나만 안 주는 기분”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김명자 이사는 “아이들에게도 다 자기 의견이 있는데, 그걸 펼칠 자리가 없을 뿐이다. 자기 의견이 공간에 반영되는 경험을 하면서 효능감을 쌓아갈 수 있다. 항상 조용하고 의견을 낼 때면 눈물이 그렁하던 한 아이는 이제 씩씩하게 자기 의견을 내고 활동도 활발하게 한다.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대단한 성취나 성적 1등보다도 일상 속 작은 효능감을 쌓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린이 식당 ‘냠냠’에서는 어린이 운영위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냠냠의 크고 작은 일에 직접 관여하면서 함께 공간을 만들고 키워간다. 박은아 객원기자

돌봄 공백 채우는 아지트

국내 어린이 식당은 냠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 금천구에 위치한 ‘어린이 식당 든든&청소년 식당 튼튼’은 지난 2019년부터 지역 아이들에게 2천원(청소년 4천원)에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직거래를 통한 농부들의 신선한 농산물을 활용하는 ‘동네부엌 활짝’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반찬 정기구독, 점심 뷔페 등 요리 사업을 통해 얻은 수익 일부를 어린이들을 위한 건강한 밥상을 차리는 데 쓰고 있다.

코로나와 공간 이전 등으로 인해 어린이 이용자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어린이 식당이라는 상징적 공간이 돌봄이 필요한 지역사회 아이들을 발굴하고 찾아내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동네부엌 활짝을 운영하는 건강한농부 사회적협동조합의 김선정 이사장은 “어린이 식당 공간을 계기로 지역사회에 먹거리 중심으로 어떤 돌봄이 필요한지, 어떻게 촘촘하게 돌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연결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며 “어린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 주민들이 모이고 나누면서 관계 맺음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라고, 그런 공간이 늘어났으면 한다”며 돌봄 공백을 채우는 어린이 식당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부천에 위치한 어린이 식당 ‘마루’는 아이들만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 전용 식당이다. 공동체에 관심을 깊게 두고 활동해 온 정봉임 대표가 마을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서 꾸린 공간으로, 2021년 6월12일에 문을 열었다.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2천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든든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과 음료 등은 무료로 제공한다. 학기 중 기준으로 마루를 드나드는 아이들의 수는 평균 100여 명에 이른다. 동네 아이들에게 편안하고 자유롭게 밥을 먹기도 하고, 시원한 카페에서 보드게임을 하기도 하고, 잠깐 쉬고 가기도 하는 안전한 아지트인 셈이다.

부천에 위치한 어린이 식당 ‘마루’는 아이들만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 전용 식당으로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2천원에 식사를 할 수 있다. 마루 제공

지역 공동체 회복 기여

일본의 경우에는 이러한 어린이 식당이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2012년 도쿄도 오타구 주택가의 어린이 식당 ‘단단’의 탄생을 계기로 이후 시민단체와 지자체, 기업 등 여러 주체가 참여하면서 발전하고 확산했다. 2022년 기준으로 지역 교류와 아동 빈곤 해결이라는 목표를 함께 추구하는 어린이 식당은 일본 전역에 7천곳이 넘는다. 어린이 먹거리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됐지만 다양한 세대가 교류하면서 안전한 지역망을 만드는 거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린이 식당 마루의 정봉임 대표는 “일본은 시민 주도, 관 주도, 시민과 관의 합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어린이 식당이 운영된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확산도 빠르다. 어린이 식당 지원센터가 있어 후원금을 각 어린이 식당에 다시 나눠주기도 한다. 어린이 식당이라고 하지만 다양한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고 만날 수 있는 모두의 식당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공간이 공동체의 모습으로 많이 확장되었으면 한다”며, 지역 공동체 관점에서 어린이 식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시 금천구에 위치한 ‘어린이 식당 든든&청소년 식당 튼튼’은 지역 아이들에게 2천원(청소년 4천원)에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동네부엌 활짝 제공

국내 역시 더디지만 시민 및 시민단체 주도의 어린이 식당뿐 아니라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어린이 식당이 하나둘 느는 추세다. 서울시 강동구는 지난 2022년 1월 전국 최초로 만 6살 이상~15살 이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 전용 식당을 열었다. 저소득층 아동만이 아닌 지역의 모든 아동에게 문을 열어 사회적 낙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학교 밖을 벗어나면 모든 것이 어른의 눈높이로 이뤄진 세상이다.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편의점 외에 아이들이 어른 없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이러한 현실에서 아이들을 환대하고, 나아가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자기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의 탄생은 지역사회의 안전망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도 ‘노키즈존’ 식당이 확산되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이러한 어린이만을 위한 공간에서 환대와 존중을 경험한 아이들은 자신이 받은 것을 나눌 줄 아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박은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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