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큰돌고래 관점에서 자연의 가치 전하고 싶어요”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이 있잖아요. 매든 남방큰돌고래든 제주의 생태와 자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어요. 죽은 새끼를 주둥이에 이고 유영하는 돌고래나 둥지를 떠날 때까지 키우고 사냥하는 기술을 훈련하는 매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지요.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자연의 관점에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지난 6일 오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바닷가에서 만난 오승목 ‘다큐제주’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시멘트 길을 따라 렌터카와 자전거를 탄 관광객들이 휙휙 지나가고, 그 옆으로는 푸른 바다가 넘실댔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있는 무인도 다려도를 600㎜ 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응시하고 있던 오 감독이 웃으며 맞았다.
‘비봉이’ 방류로 본격 생태 기록 나서
2년간 매일 제주 해안 일주하며 촬영
드론으로 ‘이합집산’ 특이 행동 확인
100여마리 단체 유영하는 ‘장관’도
남방큰돌고래 촬영 영상 20TB 넘어
개발로 훼손되는 제주 생태계 목격
“폐어구·쓰레기가 돌고래·조류 위협”
“무엇을 관찰해요?” “다려도가 보통 섬이 아닙니다. 해녀 어업만이 아니라 조류 활동의 서식지로도 중요한 섬이지요. 쇠백로의 번식지이기도 합니다.”
조류를 관찰하던 그가 다려도를 응시하며 말을 꺼냈다. 오 감독은 매일이다시피 제주도 해안을 일주한다. 이날도 오 감독은 구좌읍 하도리와 김녕리 바다를 거쳐 북촌리 바다까지 왔다. 전날인 5일에도 구좌읍 해안가에서 60∼70마리씩 두 그룹으로 무리 지어 유영하는 남방큰돌고래들을 관찰했다.
오 감독은 최근 2년 동안 남방큰돌고래를 만나러 거의 매일 제주 해안을 돌아다니고 있다. 2022년 6월 신엄리 해안가에서 천연기념물 매를 촬영하다가 우연히 돌고래 무리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카메라에 담았다. 작업실로 돌아와 영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돌고래 주둥이 쪽에 무엇인가 걸려 있는 게 보였다. 확대해서 보니 새끼 돌고래였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영상자료를 조류 전문가인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김완병 박사를 통해 김병엽 제주대 교수한테 문의하게 됐어요. 그제야 죽은 새끼 돌고래라는 걸 알게 됐어요. 태어난 지 3∼4일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주 어린 새끼였지요.”
오 감독은 그때 왜 돌고래가 죽었는지 궁금했다고 했다. 남방큰돌고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그해 10월에 수족관에서 17년을 살았던 ‘비봉이’가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앞바다 가두리에서 야생적응훈련을 거친 뒤 방류됐다. 오 감독은 그곳에서 김병엽 교수를 만난 뒤 본격적으로 남방큰돌고래의 생태를 기록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제주도 한 바퀴를 도는 날도 흔하다. 오 감독은 “비봉이를 방류한 다음에 금방 찾았으면 나의 작업도 빨리 끝났을 수도 있었다. 안 보이니까 계속해서 제주도 해안을 돌면서 비봉이를 추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뒤 오 감독은 점점 남방큰돌고래의 생태에 빠져들어 촬영한 분량만도 외장하드 8테라바이트(TB)짜리 3개나 된다. 비봉이는 방사 이후 육안이나 카메라, 선박 등을 이용한 모니터링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 비봉이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성공이냐, 실패냐를 단언하기는 힘든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 감독은 2년여 동안 날마다 돌고래를 촬영하고 분석하면서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 그는 “육안으로는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하는데 드론으로 찍다 보니까 돌고래들이 신기한 행동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래서 점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말 그대로 돌고래에 ‘올인’했다. 지원을 받거나 프로젝트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오직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돌고래 촬영이다.
“이합집산이라고 하잖아요. 돌고래들이 뜻이 맞으면 같이 행동하다가도 나뉘기도 합니다. 함께 무리를 지어가다가 꼬리 치는 돌고래들이 있어요. 꼬리를 세게 때리면 잠깐 멈추겠다는 것이지요. 돌아갈 것인가 더 진행할 것인가 의논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진행하는 돌고래들도 있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돌고래들도 있어요.”
오 감독은 “100여 마리가 한꺼번에 유영하는 걸 목격한 적이 있는데 제주도 돌고래들이 거의 모인 것이었다”며 “시커먼 물체가 바다 밑으로 대형 무리를 지어 잠수 유영하는 걸 보니 장관이었다”며 웃었다.
남방큰돌고래에 관심을 갖기 전인 2018년부터는 천연기념물인 매를 촬영 소재로 삼았다. 매도 번식의 전 과정을 촬영했다. 보통 2월부터 7월까지 촬영하는 매의 기록도 돌고래만큼이나 될 정도로 많이 찍었다.
오 감독은 지역일간지 한라일보가 2002년 ‘한라산 대탐사’를 시작할 때 탐사반과 함께 다니면서 제주의 생태, 자연, 인문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제주도 곳곳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점점 제주도가 주는 인문의 가치를 발견하고 빠져들게 됐습니다. 제주를 기록하자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언젠가는 개발로 제주의 생태가 사라질 수도 있잖아요.”
태평양전쟁 시기 일제가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해 제주도 곳곳에 파놓은 갱도진지(인공동굴)와 군사시설들을 촬영하고, 노무동원된 이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지금도 고스란히 6㎜ 테이프와 외장하드에 보관하고 있다.
제주의 자연을 촬영하면서 날로 훼손되는 제주도를 보게 됐다고도 했다. 폐어구는 돌고래 생존의 심각한 문제이고, 해안가의 쓰레기는 조류에게도 위협이 된다. 결국 인간이 자연의 생태에 위협적이란 이야기다.
“자연의 관점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려고 해요. 남방큰돌고래의 관점에서, 매의 관점에서 인간에게 이야기하려는 것이지요. 자연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말입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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