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법정] 파괴당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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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예술의 명성을 이용해 해외에서 자동차를 팔아먹고 이익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우리 예술가들의 작품을 성가신 듯 잔디를 깔기 위해 불도저로 밀어버리지는 말아달라."
프랑스는 예술가의 권리 중 하나로 작품이 저작자의 동의 없이 함부로 파괴 또는 철거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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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르노의 작품 의뢰
1년 만에 예산 문제로 철회
작품 몰두하다 멈춘 예술가
사측과 8년 분쟁 끝에 승소
"작품 철거권은 창작자에게"
"프랑스 예술의 명성을 이용해 해외에서 자동차를 팔아먹고 이익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우리 예술가들의 작품을 성가신 듯 잔디를 깔기 위해 불도저로 밀어버리지는 말아달라."
1973년 프랑스 자동차 회사인 르노는 파리 외곽 불로뉴비양쿠르에 초현대적인 알루미늄과 유리로 새로 지어진 본사의 실내와 정원을 예술로 장식할 야심 찬 대규모 예술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특히 장 뒤뷔페에게는 직원의 휴식 공간으로 사용될 건물의 커다란 안뜰을 장식할 기념비적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의뢰했다.
뒤뷔페는 정규 교육과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다. 가업인 와인 사업도 해보았으나 예술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고, 40대 중년의 나이에 본격적인 예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전통적 창작의 원칙에서 벗어나 본능과 무의식을 원천으로 삼아 아르 브뤼(Art Brut) 사조를 창시한 그는 '날것의' '다듬어지지 않은' 작품들로 전후 프랑스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1974년 9월 뒤뷔페는 2000㎡ 규모를 장식할 예술 작품의 모형을 만들었다. '여름의 방(Salon d'ete)'이라는 제목의 조각 정원이었다. 뒤뷔페 조형물의 상징 같은, 기묘한 구부러짐과 곡선의 얼룩과 공간으로 가득 찬 이 대규모 작품은 잎이 무성한 나무와 구름, 여름 산책로를 연상시켰다. 르노 사는 흔쾌히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한창 작업 중이던 1975년 어느 날, 회사로부터 중단 통지가 날아들었다. 1년여 만에 르노 사의 예술 프로젝트도 중단됐다. 달라진 것은 단 한 가지, 전임자의 프로젝트가 불편했던, 예술보다는 예산이 중요했던 회사의 새 대표였다. 뒤뷔페는 회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예술이 파괴당하지 않을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르노 측은 계약상 의뢰한 작품(정원)의 구상이나 설계에 대한 승인 또는 거부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프로젝트를 중단할 권리, 그리고 잔여물을 철거할 권리도 있다고 맞섰다. 원심과 항소심은 르노 사에 약정한 계약 금액을 지급하되, 프로젝트는 중단하도록 판결함으로써 미완의 작품에 대한 철거권은 회사에 있다고 판시했다.
뒤뷔페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 돈 문제가 아니었다. 작품의 의뢰자는 제안서를 승인하고 실행할지 결정할 권리가 있지만, 미완이긴 하나 이미 만들어진 작품에 대한 철거 또는 파괴에 대한 권리는 창작자인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는 예술가의 권리 중 하나로 작품이 저작자의 동의 없이 함부로 파괴 또는 철거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8년여간의 법정 다툼 끝에 프랑스 대법원은 예술가의 손을 들어주었다. 르노 사는 '여름의 방' 제작을 발주하고, 모형과 제안서를 토대로 승인함에 따라 구현 중이며 완성만 남은 상태라며 예술가의 권리를 인정했다.
뒤뷔페는 승소했고, 법원은 프로젝트의 진행을 명했지만, 그는 원치 않는 작품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며 결국 '여름의 방'의 완성을 포기했다. 파리 불로뉴의 숲 인근 파리를 상징할 만한, 전후 프랑스 대표 작가의 기념비적 조각 정원은 그렇게 사라졌다.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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