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캔디는 그만 …'속물 신데렐라' 시대
결혼으로 신분상승 꿈꾸는
가난한 여자와 재벌의 연애
상향혼·순수한 사랑 찾는
대중의 모순된 욕망 충족
즐거움을 주는 것이 제1의 목적인 대중예술은 대중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 위해 양립하기 어려운 모순된 욕망들도 가상 세계 안에 모두 투영한다.
물질적 결혼관을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자취를 감췄던 신데렐라 신드롬 서사가 다시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고 있다. 신데렐라 신드롬은 왕자와 결혼하는 동화 속 신데렐라처럼 여성이 능력 있는 남성에게 의탁해 신분 상승을 꾀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달 31일 공개를 시작한 티빙 10부작 드라마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신데렐라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여자 신재림(표예진)이 사랑을 믿지 않는 재벌 문차민(이준영)과 만나 벌이는 사건을 그린다.
죽은 아버지로부터 "부자 남편 만나 인생 펴라. 이 세상 어차피 네 힘으로 성공 못해"라는 유언을 받은 신재림은 부자들의 사교 클럽 청담헤븐에 직원으로 취직한다. 부친의 유지대로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해 팔자를 고치기 위해서다.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는 '명랑소녀 성공기'(2002), '시크릿가든'(2010) 등에 나타난 한국 드라마의 전통적 신데렐라 서사를 비튼 작품이다. 이들 드라마는 주인공이 순수한 사랑을 하다 결과적으로 부잣집 안주인이 됐지만 신재림은 재벌 8세 문차민에게 처음부터 작정하고 접근한다. 주인공이 대놓고 속물적 사랑을 하는 서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의 선택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지만 "부끄러움은 삶에 도움이 안 된다. 부끄러움을 뚫는 용기가 밥을 먹여준다"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는다.
드라마는 돈을 위해 사랑을 도구로 이용하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바라는 모순된 욕망을 실현시킨다. 불순한 의도로 문차민에게 다가갔던 신재림은 회차가 지나며 그와 진심으로 사랑에 빠진다.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물질적 풍요를 1순위(조사 대상 17개국 중 유일·퓨리서치센터)로 꼽는 한국인의 욕망과, 낭만적 사랑 이야기를 원하는 한국 대중의 취향을 모두 반영한 결과다.
시청자가 주인공의 속물적 모습에 거부감을 덜 느낄 수 있는 장치도 배치됐다. 드라마는 빚을 남기고 죽은 아버지, 어린 시절 학원비가 없어 미술대학 진학의 꿈을 접었던 사연 등을 제시하며 신재림의 행보를 정당화한다. "자본이 없어 사업을 못하고, 경력이 없어 취업을 못하니 할 수 있는 게 없다" "부모 잘 만났냐로 정해지는 인생 1라운드에서 졌으니 결혼 상대 잘 골랐냐로 결정되는 2라운드라도 잘해야 한다" 등 대사는 한국 청년들의 절망적 현실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는 감동보다는 즐거움을 주는 데 집중한 작품이다. 표예진 배우는 속물이지만 밉지 않은 인물 신재림을 사랑스럽게 표현하고, 이준영 배우가 연기하는 문차민은 빼어난 외모와 재력을 겸비한 데다 싸움까지 잘해 시청자를 매료한다. 사랑에 빠질 때 인물들이 허공에 떠오르고 여자에게 관심 없는 문차민의 시선 앞에 여자들이 돌로 변하는 등 만화영화스러운 특수효과도 자주 등장한다. 시시각각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감상의 방향을 친절히 제시해 시청자가 드라마를 인지적 부담 없이 볼 수 있게 한다.
드라마가 신데렐라 신드롬을 중심 소재로 삼은 것은 소득 수준이 비슷한 남녀가 결혼하는 소득동질혼 빈도가 주요 선진국 중 최하위(조사 대상 34개국 중 33위·한국은행)이고, 1인당 사치품(명품) 소비액이 전 세계 1위(2022년 기준·모건스탠리)인 한국 사회의 속물적 세태를 꼬집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신재림이 계모, 새언니와 함께 살고, 구두가 벗겨지는 것을 계기로 문차민과 만나게 되는 설정 등 동화 '신데렐라'에서 가져온 모티프는 낭만적 사랑을 외치면서도 물질적 조건을 재는 한국의 신데렐라들을 풍자하는 것으로 읽힌다.
24.9%의 tvN 역대 최고 시청률로 지난 4월 종영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남자 주인공이 돈을 목적으로 여자 주인공을 이용하는 '역신데렐라' 서사를 다뤘다. 재벌 홍해인(김지원)과 결혼한 백현우(김수현)는 이혼을 결심하지만 아내가 병으로 3개월 후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유산을 받기 위해 아내의 환심을 사려 노력한다.
'눈물의 여왕'에도 대중이 낭만적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서사가 배치됐다. 백현우는 처음엔 아내의 시한부 삶 선고를 기뻐하지만 점차 두 사람이 애틋했던 과거의 이야기가 조명되며 다시 진정한 사랑을 하게 된다.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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