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살면 생명도 무허가인가요”.. 장마가 두려운 판자촌[르포]

김형환 2024. 6. 1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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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앞둔 성뒤·구룡마을 가보니
난개발에 제대로 된 배수시설 無…산사태 우려
“물에 잠길라” 비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주민들
주민들 “대책 요구해도 모르쇠…우리도 시민”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김세연 수습기자] “작년 폭우 때 제 반려견이 떠내려가 죽었어요. 그런데 구청에서는 무허가니깐 수해 예방도 안 해준다네요.”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랫성뒤마을에서 만난 김상경씨는 울분을 토로하며 이같이 말했다. 매년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구청에 안전 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구청은 ‘당신네들이 무허가에 사는데 무슨 할 말이 있냐’는 식으로 대응을 한다”며 “무허가에 사는 사람들은 생명도 무허가 생명인가”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올 여름 평년보다 많은 강수량이 예상된다는 보도에 재개발을 앞둔 판자촌의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매년 수해를 겪는 이들은 산사태 대책 등을 구청에 요구하고 있지만 이르면 올해 개발을 시작하는 판자촌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주민들은 토로하고 있다.

10일 이데일리가 찾은 서울 서초구 아랫성뒤마을 마을회관 뒷모습. 산에서 떠내려온 흙 등이 마을회관 코 앞까지 들이닥쳐 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난개발로 매년 수해 위협…“무허가에 사는 사람은 생명도 무허가인가”

아랫성뒤마을은 1960~70년대 강남개발로 생긴 이주민들이 정착해 생긴 대표적인 판자촌이다. 이 곳은 이주민들이 땜질식으로 도로 등 마을을 만들며 살아온 탓에 제대로 된 배수 시설이 없다. 이 때문에 매년 여름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수해를 피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실제 이날 기자가 찾은 마을회관은 제대로 된 산사태 방지 시설이 없어 산에서 쏟아진 흙더미가 덮치기 직전이었다. 마을 주민이 힘을 합쳐 모래주머니를 만들어 쌓아놨지만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아보였다.

이러한 환경 탓에 성뒤마을 주민들은 언제나 불안감에 살아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30년 가까이 마을에서 살아간 70대 A씨는 “작년 여름에 방에 물이 계속 들어와 밤새 퍼냈지만 장판이고 벽지고 가전용품도 모두 망가졌다”며 “결국 피해보상비로 120만원을 받았는데 그걸로 어떻게 피해를 복구하겠나. 결국 사비로 다 메웠다”고 호소했다. 30년 넘게 살아온 김모(57)씨는 “걱정되는 정도가 아니라 무섭다. 항상 조심하지만 재해를 어떻게 피하겠나”라며 “매년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대표적 판자촌 구룡마을 주민들 역시 장마철을 걱정하고 있었다. 35년간 마을에 거주한 이강일 구룡토지주민협의회 회장은 “폭우로 나뭇가지 등이 농수로를 막으면 물이 안 빠져 나가 침수가 되는 것”이라며 “따로 배수시설이 없다 보니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 2022년 8월 폭우로 285가구가 침수되고 106명이 살아갈 터전을 잃었다. 당시 수해를 입었던 김모(70)씨는 “집이 농로 옆에 있어 폭우때 피해가 컸다. 집이 없다보니 구룡중학교에서 생활했다”며 “미리 수해 예방을 하면 좋은데 피해가 있어야지 대책을 마련한다. 작년에 모래주머니 준 것도 수해 피해가 있으니 보여주기식으로 준 것”이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10일 이데일리가 찾은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 모습. 길에 배수로 시설이 전무한 상황이다. (사진=김세연 수습기자)
재개발 추진에 주민들 ‘뒷전’…“미리 조치해달라”

난개발로 인해 제대로 정리가 안 된 전선으로 인해 감전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수해로 허리춤까지 물이 찼던 성뒤마을은 전선이 정리되지 않은 채 가구에 연결돼 있었다. 아랫성뒤마을에서 30년 가까이 산 이모(56)씨는 “지난해 물을 퍼내는데 물이 전선 연결된 부분까지 덮쳐 감전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며 “아무리 없이 사는 사람들이지만 누가 죽어나가야 들여다 볼 것인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이날 찾은 성뒤마을과 구룡마을 모두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이주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상황. 남은 주민들은 지자체가 재개발 지역에 대한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성뒤마을 주민 김모(67)씨는 “구청에 산사태가 날 것 같다고 조치를 취해달라 했는데 한 번 둘러만 보고 가지 아무런 공사도 하지 않는다”며 “이미 개발될 곳이라고 점 찍어놔 사람이 살고 있는데 관심 한 번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룡마을 주민 김모(70)씨 역시 “수해가 나야지 구호물품이나 지원금을 준다”며 “올해도 아직 아무 조치가 없으니 예방이 안된다”고 설명했다.

각 담당 구청에서는 수해 대비를 위해 각종 조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구룡마을에 소방용 모래주머니를 배치하는 등 산사태에 대한 대비를 한 상황”이라며 “현재 배수를 위한 수로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하수관 정리 작업이나 하수도 정비 작업은 진행했다”면서도 “정비사업 대상 지역이기 때문에 수로 확장 계획 등은 없다”고 했다.

10일 이데일리가 찾은 서울 서초구 아랫성뒤마을 모습. 정비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붙어 있다. (사진=김형환 기자)

김형환 (hwan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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