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이탈리아 총리, EU ‘퀸 메이커’ 부상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47)가 속한 강경우파 연합 유럽보수와개혁(ECR)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진하며 유럽 내에서 멜로니 총리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멜로니 총리는 오는 17일 유럽연합(EU)의 새 집행부 구성 논의를 앞두고 유럽의회 내 중도우파 세력과 극우연합 중 어느 편과 연합할지 고심 중이다. 멜로니 총리가 중도우파와 손잡는다면 이 그룹을 대표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연임을 위한 확실한 기반을 얻게 된다.
9일(현지시간) 종료된 2024 유럽의회 선거 출구조사 결과 ECR은 이번 선거에서 현 의회보다 4석 더 많은 73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탈리아 극우 이탈리아형제들(FdI) 소속이자 ‘네오파시스트’로 불리는 멜로니 총리는 최초 이탈리아 여성 총리로 2022년 10월 취임했다. 그는 반이민 정서를 자극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적극 소통하면서 이탈리아 내부에서 지지율을 높였다. 이에 더해 유럽 전반에 안보·이민 등 문제와 관련해 극우가 득세하면서 FdI이 속한 ECR 확보 의석 수가 늘어났다.
로이터통신은 그간 멜로니 총리가 자신을 ‘주류 중도우파와 극우 진영 사이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왔다고 전했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 직전부터 ECR은 ‘캐스팅 보터’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 때문에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극우인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연합(RN) 의원 등 두 여성 지도자는 멜로니 총리에게 구애했다.
2019년 EU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된 폰데어라이엔은 재선을 확실시하기 위해 ECR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EU 리스본조약에 따르면 회원국 정상들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고려해 집행위원장을 선출해야 하는데, ECR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속한 유럽국민당(EPP)과 손을 잡으면 지지율을 높일 수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민자 무관용’ 정책을 지지하는 멜로니 총리와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과 멜로니 총리는 지난 3월 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해 이집트에 찾아가 이주민 단속 지원 합의문을 발표했다.
멜로니 총리가 유럽의회에서 최다석을 가진 EPP와 손을 잡으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게 된다. 미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GMF)의 제이컵 키르케고르 선임연구원은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 국내 정치를 확고하게 통제하고 있으며, EU에도 추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고 진단했다.
반면 르펜 의원은 “폰데어라이엔 시대를 끝내야 한다”며 멜로니 총리를 설득하고 있다. 르펜 의원이 속한 국민연합(RN)은 극우 연합 ‘정체성과 민주주의’(ID)에 속해있다.
르펜 의원과 멜로니 총리가 손을 잡으면 EU 의제에 막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이 만들어진다. ID와 ECR의 예상 의석은 각각 58석, 73석으로, 두 연합은 전체 720석 중 131석을 차지할 전망이다.
멜로니 총리는 젠더, 민족주의, 무역 등 여러 분야에서 르펜 의원과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안락사, 동성 결혼, 임신 중지 등에 대해 반대한다. 인종주의 정책을 시행하고 한때 독일 나치와 손을 잡은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 전 총리에 대해선 “그가 한 모든 일이 이탈리아를 위해 한 것이라는 점에서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멜로니 총리가 르펜 의원과 연합하면 지지층을 탄탄하게 결집시킬 수 있고, 정책 방향도 선명하게 정할 수 있다.
멜로니 총리가 어느 세력과 손을 잡든 EU의 정책은 오른쪽으로 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번에 약진한 ECR과 ID가 대러시아 입장 등 여러 분야에서 이견을 보이는 만큼 유럽의회에서 연합 세력을 결성해 협력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면서도, 이들 극우 세력이 이민 정책부터 기후 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의제에 있어 EU의 전반적인 방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했다.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406100723001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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