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세계유산’ 고심 커지는 일본 정부

김소연 기자 2024. 6. 1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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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우라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 “전체 역사 설명해야”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금 채굴 현장이었던 브이(V)자 산봉우리 ‘도유노와레토’ 모습. 사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유네스코의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보류’를 권고하면서 일본 정부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정부가 2015년 7월 유네스코 때처럼 ‘조선인 강제노역’을 인정할지 등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유네스코 보고서를 보면, 이코모스는 지난 6일 사도 광산이 “세계유산 목록으로 고려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서도 여러 지적 사항을 붙여 보류를 권고했다. 핵심 항목 세 가지와 함께 여덟 가지를 추가로 권고했다.

일본 정부는 이코모스가 지적한 △기타자와 지구 등을 세계유산 대상에서 제외하고 △유산 보호를 위해 완충 지대를 확장할 것과 △광업권 소유자가 유산 범위 내에서 상업 채굴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필요하다는 세 가지 핵심 사항에 대해서는 수용하겠다는 생각이다. 니가타현 관계자는 아사히신문에 “세 가지 내용은 대응할 것”이라며 “7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 때까지 추가 자료를 제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추가 항목에 있었던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권고다. 이코모스는 “광업채굴이 이뤄졌던 모든 시기를 통해 추천자산에 관한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다루는 설명 및 전시전략을 수립하고, 시설 및 설비 등을 정비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도 조선인 강제동원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노골적으로 피하려고 세계유산 등재 대상 기간을 에도 시대(1603~1867)로 한정했을 때부터 한국 쪽에선 전체 역사를 설명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1989년 폐광이 된 사도광산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인 1939년 이후 약 1500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구체적인 자료와 증언으로 입증된 상태다.

사도광산 주변에는 80여년 전 조선인 노동자들이 생활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광산 뒤쪽 빈터에 돌무더기가 쌓인 곳이 있는데, 조선인 노동자들이 매일 밥을 먹던 식당 자리다. 안내판 하나 없이 휑한 모습이다. 사도/김소연 특파원

지역에선 기시다 정부가 판단할 문제라면서도 등재를 위해 권고를 수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구체적으로 사도에서 관광 안내소 구실을 하는 시설에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전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일본의 세계유산 전문가도 이코모스 권고를 무시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마쓰우라 고이치로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지지통신에 “(2015년 7월 하시마 등) 선례에 따라 사도광산의 역사 전체를 설명하는 센터를 만들어야 한다”며 “한반도 출신의 사망자 등 자료와 노동환경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쓰우라 전 사무총장은 1999~2009년까지 유네스코에서 사무총장을 지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하시마(군함도)를 포함해 ‘메이지일본의 산업혁명유산’ 23곳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강한 반발로 ‘조선인 강제노역’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뒤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시다 정부는 난처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대상 기간이 에도 시대로 한정됐다며 한국 쪽 지적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코모스 권고를 수용하려면 그동안의 입장을 뒤집어야 하는 데다, 어떤 내용으로 전시할지도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도광산 등재에서 일본이 ‘조선인 강제노역’을 인정한 2015년 유네스코 결정 때보다 후퇴할 경우 일방적 양보를 거듭하는 ‘윤석열식 외교’에 대한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해 모집·알선 및 국민징용령에 근거한 것이었다며 2021년 4월 각의에서 ‘강제노동’, ‘강제연행’이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결정을 한 상태다.

극우성향의 산케이신문은 “한국 쪽은 (사도광산에서) 강제노동이 있었다고 반발한다”며 “역사적 사실을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리는 ‘역사전(쟁)’을 어떻게 마주할지 일본 정부의 자세가 주시된다”고 강조했다.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다음달 21~31일 인도에서 개최되는 세계유산위에서 최종 결정된다. 한·일 등 21개 위원국이 참여하는 세계유산위는 만장일치 결정이 관례지만, 견해가 다를 경우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등재가 가능하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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