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징벌적 상속세 기업 의지 꺾고 투자 유치 막아, 국제기준으로 낮춰야”

임석훈 논설위원 2024. 6. 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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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용 전 한국세무학회장(인천대 교수)
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 OECD 평균 25%로 내리고
정책 실패 국민에 전가한 종부세 폐지·대폭 완화해야
금투세 시행 늦추고 법인세 美 수준 21%로 인하를
감세는 장기적 세수 증가·경제 선순환, 부작용 일시적
[서울경제]
홍기용 전 한국세무학회장이 1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속세·종부세 등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인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정부·여당이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와 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를 추진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상속세 개편과 종합부동산세 손질에 대해 전향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국세무학회장을 지낸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1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징벌적 상속세는 기업하려는 의지를 꺾고 투자 유치에도 부정적”이라며 “상속세 최고세율을 글로벌 평균인 25%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또 “종부세는 정책 실패를 국민에게 전가시킨 비정상 세금이므로 당장 폐지하거나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상속세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이다. 대기업 대주주의 상속세율은 할증이 붙어 최고 60%에 달한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00년에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개정된 후 물가 수준이 높아졌고 경제 규모도 커졌는데도 그동안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1999년 대비 2023년 물가는 4배 가까이 올랐고 주택 가격도 급등했다. 1999년에는 서울 강남 압구정동 60평 아파트를 물려받아야 상속세 대상이 됐는데 지금은 서울 강남의 30평대 아파트도 상속세를 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상속세가 ‘부자 세금’이 아닌 ‘서민 세금’이 된 것이다. 상속세 납부액은 2000년 5137억 원에서 2021년 5조 1764억 원으로 20년 동안 10배나 불어났다.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의 상속세는 어떤가.

△미국은 매년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상속세 공제 한도를 늘려주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상속세 공제 한도는 1290만 달러(약 176억 원)에 달한다. 부부 합산으로 350억 원가량의 재산을 세금 없이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스웨덴 등 12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상속세가 있는 나머지 나라들의 평균 상속세율도 25%에 그친다. 우리나라 상속세가 글로벌 기준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제는 ‘부자 감세’ 프레임에서 벗어나 ‘서민 감세’ 차원에서 상속세 개편을 검토해야 할 때다. 자산 가격 상승 등을 감안해 과표구간·최고세율 등에 대한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OECD 평균인 25% 수준으로 빨리 인하해야 한다.

-과도한 상속세로 인한 부작용이 적지 않은데.

△상속 욕구는 인간의 본성에 가깝기 때문에 지나치게 억제하면 궁극적으로 국민 후생과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과도한 상속세는 국민의 주거 불안과 기업의 지속 경영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현행 상속세를 유지하면 자산이 부동산에 집중된 개인들의 주거가 불안정해진다. 소득이 없는 고령의 주택 보유자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집을 처분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상속세 부담은 기업 경영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 대기업들은 창업 후 2세대까지는 창업자의 지분율이 높아 상속을 통해 지배구조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3세대·4세대로 넘어가면서 지분율이 떨어짐에 따라 상속세를 내고 나면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됐다. 지금처럼 최고세율 60%로 상속세를 납부하면 경영권 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높은 상속세율이 기업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고 있는 것이다. 상속세 부담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아예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높은 상속세 부담은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에도 부정적이지 않은가.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총세금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4%에 달한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단연 1위다. 2위인 벨기에의 1.7%보다 월등히 높고, OECD 평균(0.4%)의 6배에 이른다. 이는 한국에서 사업해서 돈을 벌면 세금으로 국가에 빼앗길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창업하거나 투자하기를 바랄 수 없을 것이다.

-종부세와 관련해 야당에서도 완화 언급이 나왔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주택과 토지의 가액을 합산해 재산세 외에 별도의 종합부동산세를 징수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없다. 기본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세금이다. 종부세는 세금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함으로써 국민 간 갈등을 유발하는 포퓰리즘 정책이다. 헌법 제35조 제3항은 ‘국가는 주택 개발 정책 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주택 가격 안정은 세금이 아닌 수요와 공급 중심의 주택 개발 정책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세금을 동원해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은 자유시장경제를 외면하는 발상이다. 과세를 통한 부동산 가격 안정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종부세에 대해 ‘핀셋 과세’라고 주장했다.

△‘핀셋 과세’라는 말은 재정학이나 경제학 어디에도 없는 허구의 용어다. 문재인 정부는 ‘종부세 대상이 기껏해야 1%밖에 안 된다’는 식으로 국민 갈라치기를 시도했다. 종부세는 무엇보다 국민의 세 부담 능력을 넘어선 과세라는 점에서 재산권을 박탈하는 징벌적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 주택에 대한 과세는 세금 부담 능력 등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하는데 종부세 부과는 그렇지 않았다. 정부가 잘못된 주택 정책으로 집값을 올려놓고 그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넘긴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종부세는 정부의 정책 실패를 국민들에게 전가시키기 위한 대표적인 비정상 세금이다.

-그러면 종부세를 어떻게 개편해야 하는가.

△다주택자에게 중과세하는 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유일하다. 다주택자가 있어야 임대주택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주택자에 중과세하면 임대주택 거주자에게 세금이 전가된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시장 원리를 무시했다. 불합리하고 모순덩어리인 종부세를 빨리 정상화시켜야 한다.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맞다. 다만 최근 헌법재판소가 종부세 합헌 결정을 내리고 일부 국민들이 아직 종부세 폐지에 부정적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그렇더라도 종부세는 대폭 완화해야 한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배당소득세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자본시장의 양도소득세라고 할 수 있다. 주식과 채권·펀드·파생 상품 등을 거래해 일정 금액(주식 5000만 원, 기타 250만 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부과하는 세금이다. 당초 지난해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여야 합의로 2년 유예됐다.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주식 양도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투세는 글로벌 기준에 맞는다. 다만 우리 증시는 외국 상장 기업 부족, 국제화 미흡 등으로 인해 글로벌 경쟁에 취약하다. 이런 점에서 단순히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 원칙만 강조할 수 없는 처지다. 국내외 증시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금투세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있다. 금투세를 시행하면 외국 투자자 등의 이탈로 우리 증시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당분간 과세를 유보하는 게 바람직하다. 시행 시기를 더 늦출 필요가 있다.

-배당소득세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배당소득은 이자소득과 합쳐 연 2000만 원을 넘으면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에 포함돼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데 이를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처럼 주식 장기 보유자와 단기 보유자에 대한 세율에 차등을 두는 방식으로 완화해야 한다. 장기 보유자에게는 혜택을 주고 단기 보유자에게는 지금처럼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는 투자자는 기업 성장에 기여하는 애국자라고 봐야 한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사람들과는 구별해야 한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세제 정책 방향은.

△무엇보다 기업들의 세금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다. 현재 24%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미국 수준인 21% 이하로 인하할 필요가 있다. 법인세율을 높게 유지하면 ‘기업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인식을 심어줄 뿐이다. 세율이 높다고 법인세 세수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최근 법인세 세수가 악화된 것은 킬러 규제, 징벌적 세금 등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인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 조건 중에 법인세가 매우 중요하다.

-거대 야당은 법인세 인하에 대해 ‘부자 감세’라며 반대한다.

△‘부자 감세’라는 말은 세금에 부자 개념을 꿰맞춰서 만든 정략적인 용어다. 사람이 아닌 법인인 기업을 부자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세수 부족을 이유로 법인세 인하 등에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그것은 단견이다. 물론 일시적인 세수 감소 등 부작용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법인세 인하는 경제 선순환 효과를 가져온다. 세금 부담이 줄어든 기업이 장사를 잘하면 자연적으로 세수가 늘어나고 경제 규모도 커진다. 종업원의 월급도 올라 복지도 향상될 수 있다. 앞으로 기업의 세 부담을 줄여주는 조세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가야 한다.

◆He is···

1960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아주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복지경영학회장·한국세무학회장을 역임했다. 2010~2013년 4년 동안 납세자단체인 한국납세자연합회장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세법원론’ ‘지방세법’ ‘K-IFRS 회계원리’ 등이 있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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