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조사 발표 1시간만에 의회해산…마크롱 조기총선 '도박' 성공할까
대선 3년 앞두고 극우 신바람 차단…총선 패배시 동거정부 구성·르펜에 '날개'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이 자국 내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1시간 만에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극우 세력이 힘을 받는 것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마크롱 대통령이 또 한번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참패 3주 안에 자신이 몸담은 중도 정당 르네상스보다 득표율이 두배나 많은 RN을 따라잡아야 하는 건 상당한 부담이다. 실패할 경우 2기 집권 3년 차에 야당 총리를 임명해야 하는 건 물론 3년 뒤 대선에서 정권을 내줄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요 외신들이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결정을 '도박(gamble)'이라고 평가한 이유다.
이날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 영국 경제전문매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처럼 프랑스 조기 총선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마크롱 대통령이 마린 르펜 RN 총재의 대권 가도를 저지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 분석했다. 빠르게 전열을 재정비한 뒤 전국 단위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극우 중심의 정계 개편을 막고 정국을 안정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르네상스는 이미 2022년 6월 열린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연립정부를 이루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조기 총선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이날 출구조사 발표 직후 열린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곧바로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 결정을 알린 뒤 "평온과 화합을 위해 분명한 다수가 필요하다"며 "프랑스 국민들은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이에 대해 연정 파트너인 프랑수아 베이루 민주운동 총재는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극우파의 제안을 인정하는지' 질문을 던짐으로써 정치적 교착 상태를 끝내는 게 대통령의 목표"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르펜 총재는 승리를 자축하며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결정을 오히려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다. 이날 당원들 앞에 선 그는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국민이 투표하면 국민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조기 선거를 소집하기로 한 대통령의 결정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지지한다면 우리는 권력을 행사할 준비가 돼 있다"고 연설했다. 총재 옆에 선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도 "국민의 30% 이상이 우리를 선택했다"면서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라고 거들었다.
이날 현지 여론조사 기관들이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RN의 예상 득표율은 32.3~33.0%로 프랑스 전체 1위를 기록했다. 반면 르네상스의 예상 득표율은 14.8~15.2%로 2위에 그쳤다. 3위는 13.0~14.0%의 예상 득표율을 보인 사회당이 차지했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오는 30일 하원 1차 투표를 치르고 내달 7일 결선 투표인 하원 2차 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예고했다. 출구조사 결과만 놓고 볼 때 앞으로 남은 3주간 르네상스는 다른 연정 파트너들과 힘을 합쳐 지금의 득표율을 두배로 불려야 RN을 이길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총선에서 승리한 RN의 당수를 총리로 임명하는 시나리오가 전개된다. 프랑스 헌법상 총리 임명 권한은 대통령이 갖지만, 하원 역시 정부 불신임권을 행사할 수 있어 실질적으론 하원 의석 구성에 맞춰 제1당을 대표하는 인물이 총리에 오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다른 정당 소속인 경우를 '동거 정부'라고 하는데, 정책 일관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또한 2022년 연임에 성공한 마크롱 대통령으로선 임기 5년이 보장된 2기 집권 3년차에 때 아닌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을 맞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마크롱 대통령의 의도와 정반대로 RN의 유력 대선후보인 르펜 총재의 2027년 대선 승리에 되려 '날개'를 달아주는 효과도 생기게 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58.6%의 득표율로 르펜 총재를 17.2%p차로 이긴 바 있다. 하지만 그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서방 동맹에 대한 피로감이 높아지고 △대통령 직권으로 연금개혁이 강행된 데다 △친환경 규제 일변도로 농민 민심을 잃게 되면서 지난 1년간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에 갇혔다. 반대로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를 거론하고 연금개혁에 반대했던 르펜의 몸값은 뛰었다.
마크롱 대통령의 도박이 성공할지 여부를 두고 전문가들은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치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 그룹의 무즈타바 라만 유럽지역 본부장은 이날 폴리티코에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총선을 통해 르펜 총재에게 거의 확실히 제동을 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파리정치대학의 브루노 코트레스 정치학 교수는 FT에 "마크롱 대통령이 총 7년간 집권했고 오랫동안 극우세력과 싸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패배는 심각하다"며 "프랑스 유권자들이 그를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에게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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