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를 통해 저마다의 엄마가 떠올라 촉촉해지는 시간('엄마, 단둘이')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6. 1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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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 때문에 봤는데 자꾸 엄마가 보이는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엔터미디어=정덕현] "우리는 식구가 많고 그러니까 늘려서 먹으려고..." 다른 집에서는 오징엇국을 잘 해먹지 않는데 우리 집에서는 그걸 자주 먹었다는 기억을 떠올리는 이효리에게 엄마는 그 이유를 말해준다. 여섯 식구가 오징어 하나로 배불리 먹어야 했던 시절, 엄마는 오징어로 국을 끓였다. 그렇게 끓인 오징엇국 하나로 여섯 식구가 맛난 저녁을 먹는 모습에 엄마는 얼마나 안쓰러우면서도 흡족했을까.

JTBC 예능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에서 이효리는 엄마가 오징엇국을 만드는 뒷모습을 응시하며 생각이 많아진다. 지금은 천천히 해도 되지만 여전히 바쁘게 종종거리며 요리를 하는 모습에서 이효리는 '옛날에 엄마가 저랬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자식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드는 엄마들의 종종대는 손길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게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그리 바쁠 필요도 없지만 손에 익은 종종댐은 여전하다. 자식에게 어서 음식을 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것처럼.

"누구 엄마 같으면 바리바리 준비해왔을 텐데..." 너무 소박하다 여겨지는 오징엇국을 끓여주는 게 약소하다 여긴 엄마는 괜스레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이효리는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살짝 마음에 안들면서도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하며 말끝을 흐린다. 그리고 30년만에 다시 맛보는 엄마의 오징엇국. 이효리는 말이 없어진다. 연거푸 몇 번 더 맛을 보다가 "맛이 어떠냐"는 엄마의 물음에도 답하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쏟아진 눈물을 조용히 닦아낸다.

이효리는 왜 갑자기 울었을까. 시청자들은 아마도 모르겠지만 알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을 게다. 엄마가 끓여준 오징엇국의 맛에서 30년 전 그때의 기억들이 소록소록 피어났을 테고, 그렇게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한 그 맛에서 나이는 들었지만 변함없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을 게다. 또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은 엄마의 삶 또한, 그 오징엇국 하나로 오롯이 전해지지 않았을까.

"먹고 더 퍼서 먹어. 맛있게 먹어라" "내가 누룽갱이밥 먹을 게 네가 새 밥 먹어." 이효리의 엄마가 하는 말들은 세상 모든 엄마들이 늘 하는 그 말들 그대로다.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와 앉아 함께 밥을 먹는데 엄마는 금세 딸이 울었다는 걸 알아차린다. 엄마가 말한다. "싹 풀어버려 맺혔던 거." 딸의 눈물이 엄마에게는 괜한 죄책감 같은 걸 들춰낸다. 뭔가 맺힌 것이 있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 역시 자식이 갖는 모든 감정들이 내 탓만 같은 세상 엄마들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이효리의 눈물은 그런 게 아니다. "밥을 먹으니까 옛날 생각 났어. 나쁜 생각 아냐. 좋은 생각. 추억." 엄마에게 그렇게 말하는 이효리는 사실 그 눈물의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옛날 맛이랑 똑같은데 딱 먹는 순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복받치는 감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미안해한다. "옛날에 없이 살아가지고 모든 걸 부족하게 해주고 그래서 항상 엄마는 미안하지 뭐 자식들한테."

너무 맛있다며 남은 거 버리면 안된다고 벌써부터 걱정하는 엄마와, 그 국을 싸가지고 제주도에 가서 "이상순 네가 눈물 젖은 오징엇국을 아느냐"고 묻겠다는 딸. 이효리는 "우리 가족의 서사는 우리 가족만 안다."며 "그때 내 그릇에는 오징어도 몇 개 못들어 왔어."라고 무심코 말한다. 근데 그게 그렇게 가슴 아픈 기억은 아니라며, 오징어 한 마리로 진짜 푸짐해 여섯 식구 6인분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 말에도 엄마는 데뷔한 후 처음 오징엇국을 끓여준 것이나, 딸이 자신의 국에는 오징어도 몇 개 안 들어왔더라는 이야기에 가슴이 찡했다고 말한다.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는 제목처럼 이효리가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는 과정을 담담히 담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단둘'이 가는 그 여행에 자꾸만 나도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효리가 주인공이라고 해서 들여다봤는데, 자꾸만 엄마에게 눈이 가고, 이효리의 엄마라는데, 자꾸만 저마다의 엄마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고 치부하며 살아왔지만 사실은 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자꾸만 마주하게 만든다.

예고편에서 이효리는 엄마가 끓여준 오징엇국을 먹기 전까지는 엄마가 짜증나는 말을 하면 짜증이 났지만 지금은 그냥 웃기다며 "그 안에 뭐 탔어?"라고 장난스럽게 묻는다. 그러자 엄마 역시 유머를 섞어 답한다. "엄마의 사랑." 오징엇국 하나에 문득 세상 모든 엄마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아마도 그 시절 엄마들에게는 저마다의 '오징엇국' 하나씩은 있었을 게다. 또한 그 맛을 어느 날 문득 오랜만에 본 후 저도 모르게 이효리처럼 먹먹해졌던 우리들의 경험들도. 문득 엄마와 단둘이 여행이라도 가고픈 마음을 불쑥 들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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