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 풍선 계속돼도 ‘대북전단’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정부
최근 정부가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살포의 배경이 된 국내 일부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사실상 방치하면서 갈등을 키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가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한 관련 법에 대해 위헌 결정한 의미를 곡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입법에 나서지 않은 국회의 책임도 꼬집었다.
“제지 가능” 헌재 결정 ‘무대응’ 일관하는 정부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는 대북전단 살포를 처벌하는 남북관계발전법의 금지 및 벌칙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전단 살포 등을 일괄적으로 금지해 처벌하는 것은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했다.
침해의 최소성 원칙은 다른 대안으로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데도 기본권을 일괄적으로 과도하게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입법 원칙을 말한다. 대북전단 살포를 처벌하는 것은 지나친 형벌권 행사라는 뜻이다.
헌재는 “전단 등 살포 현장에서는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접경 지역 주민의 위해를 방지하려는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대북전단 살포를 사전에 신고받는 등 제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고도 했다.
앞서 대법원도 2016년 국민의 생명·신체 안전을 위해 경찰이 전단 살포를 막는 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정부는 헌재 판단을 ‘무대응’의 근거로 삼고 있다. 통일부는 10일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경찰도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정례 기자회견에서 오물풍선에 대한 조치 여부를 묻자 ‘경찰 특공대의 폭발물처리반(EOD) 출동’까지 거론하면서도 “오물 풍선을 국민의 생명·신체에 대한 급박하고 심각한 위협으로 볼 수 있느냐는 명확지 않다”고 밝혔다.
윤 청장은 법원 판례에 대해선 “(당시 판결은) 2014년 10월에 있었던 대북 풍선에 대한 ‘민간인 출입 통제선’에서의 고사포 발사 등의 사례 때문”이라며 “단순히 오물 풍선을 날리는 것으로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오물 풍선은 고사포 발사 사례와 달리 위협적이지 않아 경찰이 제지에 나설 수 없다는 취지다.
전문가들 “정부 종합 판단 필요…국회도 입법 나서야”
전문가 일부는 대북전단 살포를 경찰이 개별적으로 나서서 제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봤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도발 행위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협이 되는지 사안별로 경찰이 구체적으로 판단하고 조치에 나설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대북전단과 오물풍선의 인과관계, 오물풍선의 위협성 등이 명확하지 않아 추상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차 교수는 “개별 경찰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남북의 대치 상황 등을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 취지에 따라 국회가 입법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을 포함한 행정당국이 헌재 결정만 앞세우면서 가만히 있는 것도 문제”라며 “헌재가 예를 든 것처럼 대북전단 살포를 사전 신고하도록 국회가 법을 만들면 위헌 결정 이유인 침해 최소성의 문제도 해결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위헌 결정 후 법 개정에 나섰어야 했는데 국회가 손을 놓고 있다”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의 결정은 정부가 자제요청을 하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통일부와 대통령이 대북전단 살포를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헌재의 결정에 따라 국회가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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