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50〉우리는 AI와 놀아야 한다
'2025년까지 온라인 콘텐츠의 90%가 생성 AI에 의해 만들어질 것이다.'
4월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도브(Dove)는 'Real Beauty Prompt Playbook' 캠페인 시작을 위의 문장으로 알린 바 있다. 이번 캠페인은 도브가 인공지능(AI)을 사용해 여성의 이미지를 표현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AI 기술을 통해 더 포용적이고 다양한 여성의 이미지를 생성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플레이북을 포함하고 있다.
이번 캠페인은 지난 20년간 도브가 지속해 온 'Real Beauty'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AI가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도브가 제공한 플레이북에서는 AI로 생성된 여성 이미지의 37%가 금발, 30%가 갈색 눈, 53%가 올리브 피부를 가진 것으로 나타나는 등의 통계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구체적인 프롬프트 작성 방법과 예시를 통해 다양한 인종, 성별, 피부색 등을 반영하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Confident woman'이라는 추상적인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금발에 날씬한 체형, 밝은 피부색 등 전형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을 반영한 이미지가 생성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curly hair' 'plus-size body' 'giving a presentation'과 같이 구체적인 외모, 체형, 상황 등을 명시하면 보다 현실적이고 다양성을 반영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도브의 접근법과 이를 대외적으로 공유하는 행보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함과 동시에 AI의 윤리적 활용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특히 'Playbook'이라는 단어 선택에서 엿보이듯, 단순한 지침서나 매뉴얼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 'Play'의 개념은 우리가 AI를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시사한다.
우리는 흔히 AI를 효율성 향상을 위한 도구, 즉 인간 노동을 대체할 수단으로 여긴다. 하지만 체코 태생의 브라질 철학자 빌렘 플루서의 관점에 따르면,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장치(apparatus)로 이해될 수 있다. 그는 카메라를 예로 들며, 사진 찍기란 세상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일종의 놀이라고 설명한다.
플루서는 카메라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작업 도구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호를 생산함으로써 세상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장치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메라를 사용할 때 우리는 세상의 상태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포착하거나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는 것이다. 그는 카메라가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작업을 '기계화'해 화가가 붓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사진가가 카메라를 가지고 노는 데(playing) 전념할 수 있게 만들기에 인과관계가 아닌 조합의 논리로 바라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AI 생성 이미지 제작에 적용해 보면, 프롬프트를 입력할 때마다 AI와 일종의 '대화'를 나누는 셈이다. 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해도 결과물은 매번 달라지고, 우리가 이 과정을 멈출 때까지 AI는 언제든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해낸다. 이런 상호작용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마치 놀이를 하듯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결국 AI는 단순히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일과 놀이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의 사고와 행동 방식을 변화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다가올 합성(합성, 리믹스) 정보의 세계에서 우리는 기기 운영자이자 플레이어로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교육과 지도가 필요하다. 도브의 'Real Beauty Prompt Playbook' 캠페인은 AI 기술의 바람직한 활용과 우리의 역할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고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단지 여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AI가 우리의 가치관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화두이기도 하다. AI와 공존하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윤리의식과 함께, 그 과정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시켜 나가려는 자세다. 이것이 곧 앞으로 우리 모두가 짊어져야 할 새로운 차원의 책임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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