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칼럼] 어려웠던 과거를 잊으면 다시 어렵게 된다
백범 김구는 1947년에 출간한 '백범일지' 말미에 붙인 '나의 소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63년 취임 당시 “내 가슴 속에 풀리지 않고 맺혀 있는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우리도 어떻게 하든지 남과 같이 잘 살아봐야 되겠다는 염원”이라며 심중을 전한 바 있다.
그 무렵 1964년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7달러에 불과했다. 광부와 간호원의 파독(派獨) 얘기가 처음 나온 1962년에는 87달러에 그쳤다. 당시 파독 초기 광부 월급이 약 200달러였으니 독일에서 한 달 월급이 국내 연평균 소득의 2배 정도였던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집계한 첫 해인 1980년에는 한국의 1인당 GDP는 1714달러로 일본(9659달러)의 17.1% 수준이었다.
그런데 올해 한국의 1인당 명목 GDP가 일본을 앞설 것이라는 IMF 전망이 나왔다. 국내 1인당 명목상 GDP 전망치가 일본을 추월한 것은 IMF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올해 5100만 인구의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1억2300만 인구 대국인 일본의 총수출액을 추월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일본 인구의 40%에 불과한 한국이 수출액 총량에서 일본을 능가한다는 소식은 오래살고 볼 일이라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으며 이를 성취할 것으로 기대되는 우리 후대들이 무척 대견스럽다.
그런데 이같은 기쁨이 지속될 수 있을까. 이것이 한국 경제발전의 최대치인가. 최근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 선로가 없어 동해안의 대형·신규 화력 발전소들이 가동을 멈추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GS동해전력 등 4개사가 16조원을 투자해 건설한 석탄화력 발전소 8기가 지난 4월 중순부터 전력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고 하는데, 이들 8기의 발전 총량은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들여 건설하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를 댈 수 있는 막대한 규모다. 정부의 권유로 동해안에 발전소를 건설한 회사들은 부도 위기에 몰린 상황이다.
이러한 사태가 빚어진 것은 한국전력의 송전선 건설 계획이 7년 이상 미뤄지면서 신규 발전량이 송전선의 송전 능력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의 송전선로 용량은 11.4GW인데 동해안권의 원전과 석탄발전, 신재생에너지 발전총량은 18GW에 이른다. 1GW는 100만kW에 해당한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019년까지 8GW짜리 송전선로가 추가 건설돼야 하는데 탈원전·탈석탄을 밀어붙였던 전임 정부는 주민 반발을 이유로 신규 선로 건설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신규 사업자들이 스스로 발전소 건설을 포기할 것을 기대하면서 계획된 선로 건설 사업은 방치됐다. 근거없는 전자파 인체 유해론을 믿고 싶어하는 송전선 주변의 주민들은 차치하더라도 국가 산업발전을 고려해야 할 정부로선 있을 수 없는 무책임한 일이었다.
지금 수도권에선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과 데이터센터 건설 등으로 전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송전선로 부족으로 송전을 못 받는 바람에 발전 원가가 석탄보다 30% 이상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나 공해 물질 배출이 2배 이상인 구형 석탄 발전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다.
이는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여름철 대규모 정전 사태도 우려된다. 지방에선 송전선이 없어 발전소가 전기 생산을 못하고 있고, 수도권은 전력이 부족해 법으로 데이터센터를 못 짓도록 막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200조원 부채를 진 한국전력과 대량의 전력을 소비할 산업체의 목을 거세게 조르고 있다.
가난하던 사람이 배에 기름이 끼면 사람이 달라진다. 우리는 달라진 사람이 돼 패망하는 쪽을 향해 걸어가 결국에 푸쉬킨의 동화 '어부와 금붕어' 속 어부 부부가 되고 말 것인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보다 잘 살던 중남미 국가 국민들이 현대판 디아스포라를 연출하며 미국 남부 국경지역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김윤명 한국전자파학회 펠로우·단국대 전자전기공학부 명예교수 gimm@emfsafe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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