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시대, 자해하는 아이들 [플랫]
한 여학생이 부모, 할머니, 외삼촌 등 무려 4명의 보호자들과 함께 진료를 받으러 왔다. 그 여학생의 가장 큰 문제는 자해라고 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여학생 세계는 자해공화국에 가깝다. 칼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칼과 몸, 정확히는 칼과 마음이 가깝다.
2022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생 10명 중 4명이 스트레스로 자해 생각을 한다. 2021년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조사에서는 10대 청소년 10명 중 1명이 최근 2주 안에 자해를 생각해보았다고 답했다. 세종시를 비롯한 몇몇 지역 교육청 실태조사들에서 자해행동을 실제로 한 10대 청소년은 10명 중 1명 이상이고, 대다수가 여학생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대부분 조사에서 여학생들의 비율이 남학생들에 비해 모두 2배 이상 높았다.
다시 그 학생 이야기로 돌아가서 자해 이유가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워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는 것이 힘드냐”고 물었더니,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했다. 가족들은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우리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라고 할머니가 말하자, 아이는 “가족들 모두 나가줄 수 없냐”고 했다. 이후 아이가 한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친가에 다 모이면 자신 외에 부모님과 조부모, 삼촌 한 명이 전부다. 외가 또한 다 모이면, 자신 외에 부모와 외조부모, 외삼촌 부부인데, 외삼촌 부부는 아이를 낳지 않고 강아지를 가족으로 데려왔다. 양가를 통틀어 인간 아이는 자기뿐인 상황이 부담스럽다. 가족이 모일 때마다 홀로 리사이틀을 해왔고 십수년째 재롱을 떠느라 힘들다. 배운 것을 해보라는 말이 싫고, 또 다른 싫은 말은 ‘희망’이다. 어른들의 “너가 유일한 희망”이라는 말은 구토 유발이다. 왜 어른들은 본인 스스로를 희망으로 삼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양가 집안 모든 어른들이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데, 100세 시대를 살면서 자식인 나에게 바랄 것이 아니라 어른 자신이 직접 하면 될 것 같다. 엄마는 툭하면 “공부가 제일 쉬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엄마에게 “지금부터 공부해서 50대에 의사가 되어도 30년 이상은 의사로 살 수 있으니 직접 하라”고 말했다. 사랑한다면서 ‘무엇이 되라고 하는 말’할 때 진짜 짜증이 난다. 사랑한다는 것은 존재 자체를 향한 말이지, 성취나 직업을 향한 말이 아니지 않은가. 전문직을 갖거나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면 굶어죽을 것처럼 공포를 강요하는데 그것은 부모시대의 공포일 뿐이다. 아이들도 별로 없는 시대라는데, 있는 아이들 모두 줄 세우고 경쟁시키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학교마다 아이들 품평회를 하니 미친 나라 아닌가.
아이는 탈출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으로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찾아들면 슬프고 괴로웠다고 한다.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기대와 압박감에 시달려 큰 고통이라고 했다.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말할 사람조차 없을 때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음이 힘들 때, 달리 방법을 몰라 몸에다 상처를 내는 것이라고 했다. 어른들은 마음 아픈 것은 모르더니, 몸에 칼자국이 나면 그게 더 아픈 것처럼 난리를 피운다고 했다. 더 아픈 것은 마음인데, 마음은 여전히 볼 줄 모른다고 했다. 아이는 자기처럼 고생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 싫어서, 결혼 생각, 아이 생각도 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이 집안은 이제 자신으로 끝이라고 했다. 강아지만 아마 남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이상은 저출생 시대, 나의 진료실에서 간혹 만나는 자해하는 양가 외동들의 이야기를 합친 이야기이다. 마음의 문제와 존재의 부담을 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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