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파’ 간츠 빠진 이스라엘 정부 어디로 가나···연쇄 반발? 우경화 가속?

선명수 기자 2024. 6. 1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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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 간츠 이스라엘 국가통합당 대표가 9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어 전시 내각 각료직에서 사임하겠다고 선언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전시 내각의 핵심 구성원이었던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가 9일(현지시간) 네타냐후 총리를 비판하며 전시 내각 각료직에서 사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간츠가 이끄는 국가통합당의 이탈이 연정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흐름이 계속될 경우 점차 거세지는 총리 퇴진 여론과 함께 네타냐후 정부에 적지 않은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극우세력에 휘둘리는 이스라엘 연정에서 유일한 중도 세력의 철수가 전쟁을 더 극단으로 치닫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간츠 대표는 이날 TV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네타냐후는 진정한 승리를 가로막고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면서 “이런 이유로 무거운 마음으로 비상 정부를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네타냐후 총리를 향해 “나라가 분열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며 전쟁 발발 1년이 되는 올가을 새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조기 총선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간츠 대표와 같은 국가통합당 소속으로 전시 내각에 참여해온 가디 아이젠코트 의원과 칠리 트로퍼 의원도 사직서를 냈다.

네타냐후 총리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는 간츠 대표는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에서 8석을 보유한 중도 성향 국가통합당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 10월 전쟁이 발발한 뒤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율을 앞서는 등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제1야당 예시 아티드(24석)와 함께 네타냐후 정권을 견제해 왔지만,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후 네타냐후 총리의 요청에 따라 통합 정부 차원의 전시 내각에 합류하고 연정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협상파’인 간츠 대표는 협상 대신 초강경 노선을 고수해온 네타냐후 총리와 번번이 대립해 왔다. 그는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생존을 위해 휴전 협상과 전후 계획 수립을 거부하며 전쟁을 장기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해 왔고, 지난달 18일에는 네타냐후 총리가 가자지구 전후 계획과 인질 송환 계획을 이달 8일까지 내놓지 않을 경우 전시 내각에서 나가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이후로도 “하마스 제거라는 목표 달성 없이 전쟁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며 전후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 당초 간츠 대표는 자신이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던 전날 사임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군이 가자지구에서 인질 4명을 구출하면서 거취와 관련한 입장 표명을 하루 미뤘다.

집권 리쿠드당이 주도하는 6개 정당 연정은 120석 이스라엘 크네세트에서 64석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야당인 국가통합당이 이탈해도 연정은 유지된다. 다만 전쟁 장기화와 인질 석방 난항으로 정권 퇴진 운동이 불붙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반발 기류는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다. 네타냐후 총리도 이를 의식한듯 “지금은 힘을 합칠 때”라며 내각 잔류를 촉구했다.

간츠 대표 사임 후 정치권에서 유사한 움직임이 이어진다면 네타냐후 총리가 입을 정치적 타격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간츠 대표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을 콕 집어 “행동하라”고 촉구한 것도 연쇄적인 반발 움직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6인으로 구성된 전시 내각에서 의결권은 네타냐후 총리와 갈란트 장관, 간츠 대표 3인만 갖고 있다.

간츠 대표는 갈란트 장관을 “용기 있고 결단력을 갖춘 지도자이자 애국자”라고 치켜세우며 “(그가) 옳은 말을 하는 것뿐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갈란트 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와 같은 집권 리쿠드당 소속이지만, 휴전 협상 및 전후 구상 문제에 있어 네타냐후 총리와 대립해 왔다. 지난달 15일에는 이스라엘의 전후 가자지구 통치에 반대하며 네타냐후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연정 내 유일한 중도파의 이탈이 한동안 이스라엘 정부의 강경 노선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간츠 대표의 사임 후 네타냐후 총리가 연정 내 강경파에 더욱 의존하면서 레바논과 전선을 확대하는 등 전쟁을 장기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 봤다.

당장 국가통합당의 이탈로 이스라엘 연정에는 집권 리쿠드당과 3개 극우정당, 2개 초정통파 정당만 남게 된다. 연정이 ‘극우 일색’으로 향해가는 것이다. 연정 내 대표적인 극우인사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은 공석이 된 전시 내각 자리를 달라고 네타냐후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미국 등 우방의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을 준 ‘중도주의 블록’의 이탈이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의 고립을 심화시키고 미국과의 갈등 역시 고조될 수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 공격 문제를 두고 네타냐후 총리와 충돌하던 지난 3월 보란듯이 간츠 대표를 미국에 불러들여 미국과 네타냐후 총리 간 갈등설이 재점화되기도 했다. 당시 네타냐후 총리는 간츠 대표가 정부 승인 없이 미국을 방문했다며 “이스라엘 총리는 한 명뿐”이라고 격분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간츠 대표의 사임으로 그가 이번 전쟁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줄어들겠지만, 향후 치러질 선거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대항마로 입지를 굳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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