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에서 ‘자기배려’로…베스트셀러가 달라진 이유
문성훈 | 서울여대 교수(현대철학)
최근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일종의 트렌드 변화가 감지된다. 2023년 겨울 동안 인터넷 판매 1위를 차지했고, 지금도 상위권을 유지하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처럼 인생을 주제로 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 물론 인생을 주제로 한 책들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
지금까지 인생을 다룬 책들은 대부분 자기 계발서다. 인생의 성공을 위해, 더 구체적으로는 입시와 취업에 성공하고 직장, 재테크, 대인관계에 성공하고, 이젠 대화, 토론, 글쓰기까지, 이른바 성공한 삶을 위한 ‘노하우’를 제시한 지침서가 대세였다. 이에 반해 최근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한 책들은 ‘자기 계발’이 아니라 ‘자기 배려’가 목적이다.
‘자기 배려’라는 말은 미셸 푸코의 용어로서 문자 그대로 우리가 각자 자신을 보살피고 돌보는 것을 말하며, 흔히 내가 나의 삶의 주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지,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을 뜻한다. 자기 계발은 성공한 삶이라는 특정한 삶을 전제하고, 이에 필요한 능력 계발을 통해 이러한 삶에 도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자기 계발에서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성공한 삶이 어떤 것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문제 삼으며 자신을 배려하는 사람에게 삶이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야 할 창작품과 같다.
최근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한 책들은 성공을 위한 지침이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렇기에 구체적 상황에서 내가 나의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가가 핵심 문제로 등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책들의 독자층이 3040세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3040세대는 1980~199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 시기는 민주화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고, 신자유주의 시대를 초래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일어난 일대 전환기였다.
그 결과 우리는 독재정권 치하의 권위주의로부터 해방되어 개인의 자유를 경험하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 모든 사회 영역이 이윤 극대화 논리에 따라 재편됨으로써 무한경쟁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이제 한국 사회는 겉보기에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사회가 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 성공 척도에 맞게 자신을 계발해야 하는 철저한 자기관리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시대를 산 3040세대가 왜 자기 계발이 아닌 자기 배려에 주의를 돌리기 시작했을까? 3040세대는 인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된 인생을 유지하는 안정화 시기에 접어든 세대다. 이미 학벌과 직장이 정해졌다면, 무한경쟁에서도 대세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언가 새로운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지금까지의 경쟁을 통해 정해진 각자의 인생 경로를 따르는 것이다.
사실 무한경쟁은 이미 승패가 정해진 싸움인지도 모른다.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경쟁력이 된 사회에서 경쟁이란 능력과 업적에 따라 사회적 재화가 분배되는 정의로운 절차라기보다, 기득권이 ‘정당하게’ 세습되는 기만 장치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없다.
3040세대 가운데 많은 사람이 이것을 경험한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무엇 때문에 무한경쟁에 뛰어들어, 되지도 않는 일을 하느라 인생을 허망하게 보냈는지 자조하는 것은 아닐까?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도 그렇다. 과연 이들은 이른바 성공한 삶이 진정 자신이 원하던 삶이라고 느낄까? 아니면 마음속으로는 부모, 아니면 사회가 강요한 삶이라고 느낄까? 만약 후자라면 이들은 자신의 삶에서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 허무주의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자기 배려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한 책들은 쇼펜하우어나 니체처럼 염세주의나 니힐리즘(허무주의)에서 출발하지만, 이를 넘어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았던 철학자들과 관계가 있다. 3040세대에게 허무주의를 느끼게 한 무한경쟁이 철폐되기 위해서는 사회가 바뀌어야 하지만, 각자 자신의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보는 자기 배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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