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강하는 삶의 숙명…나이듦이 말하는 사랑과 몸

노형석 기자 2024. 6. 1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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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그들이 몸을 던졌다.

늙은이의 시선으로 젊음의 특권이라고 흔히 인식되는 사랑과 몸에 얽힌 감정, 인식들을 사진에 풀어낸다.

나이들어감을 자각하는 중년의 작가가 젊은 몸에 대한 그리움과 염원을 절벽에서 점핑하거나 암벽 위에서 부유하는 청년 군상들의 몸과 몸짓, 그리고 20대 남녀의 누드상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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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옥현 사진가 근작전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서로 신성함으로 이끈다’
안옥현 작가가 올해 찍은 신작 ‘여자와 남자는 서로 신성함으로 이끈다-떨어지다2’(부분). 바닷가 절벽에서 해면으로 뛰어드는 ‘클리프 점핑’의 모습을 포착한 이 연작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바로 옆에 내걸린 벗은 청년의 알몸 사진과 대비되면서 삶의 하강, 나이듦의 의미로 치환된다. 노형석 기자

젊은 그들이 몸을 던졌다. 바닷가 절벽에서 발을 떼고 짓쳐 올랐다가 이내 물 위로 떨어져 내리는 순간이다.

여성사진가 안옥현(54)씨는 혈기방장한 청년들이 해안가 피서지에서 벌이곤 하는 ‘클리프점핑’의 모습들을 포착한 신작들을 청춘남녀의 생기 넘치는 알몸 사진 신작들과 나란히 전시장 합판 벽에 붙여놓았다. 지구상의 땅이나 바위에서 발을 떼고 뛰면 중력에 의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하강의 숙명적 장면들을 작가는 ‘누구나 다 어쩔 수 없이, 피할 수 없이 늙어갈 수밖에 없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며 찍었다.

그래서 청년들의 하강 장면은 바로 옆에 내걸린 젊은 누드사진들과 대비되면서 삶의 하강, 나이듦의 이미지로 치환되어 다가오게 된다. 청년이 점핑하는 절벽과 바다 해면 사이에서 희붐하게 프린트된 하늘빛의 색조는 이런 상념을 더욱 미묘하게 부추기는 듯한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지난달 초부터 서울 종로구 상업화랑 사직에서 열리고 있는 안 작가의 근작전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서로 신성함으로 이끈다’는 색다른 결을 지닌 전시회다. 늙은이의 시선으로 젊음의 특권이라고 흔히 인식되는 사랑과 몸에 얽힌 감정, 인식들을 사진에 풀어낸다. 나이들어감을 자각하는 중년의 작가가 젊은 몸에 대한 그리움과 염원을 절벽에서 점핑하거나 암벽 위에서 부유하는 청년 군상들의 몸과 몸짓, 그리고 20대 남녀의 누드상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단순한 노년의 넋두리나 노년의 삶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사진 공간의 미학을 통해 늙음과 젊음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는 것이 이 전시의 매력이다.

상업화랑 사직 전시장의 나무벽에 붙어있는 안 작가의 신작들. 왼쪽은 ‘여자와 남자는 서로 신성함으로 이끈다-민규의 가슴’(2024)이고 오른쪽은 ‘여자와 남자는 서로 신성함으로 이끈다-떨어지다1’(2024)이다. 바닷가 절벽에서 해면으로 뛰어드는 ‘클리프 점핑’의 모습을 포착한 오른쪽 연작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옆에 내걸린 청년의 알몸 사진과 대비되면서 삶의 하강, 나이듦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치환되어 다가오게 된다. 노형석 기자

노년의 남녀들에게도 여전히 사랑과 몸에 대한 감정과 욕망은 살아 숨 쉬지만, 표출하는 것은 터부시되고 비루한 것으로 치부되는 현실과의 괴리를 담담하고 처연하게 작가는 드러낼 뿐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늙음과 병듦은 더욱 두렵고 꺼려지는 타자화의 대상으로 치부되었고, 지금 시대 사람들의 정서는 더욱 젊고 새로운 것의 강박 속에 되레 메말라가는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지를 전시는 암묵적으로 묻는다.

배우 정영숙과 정동환이 출연해 노년의 질투와 격정을 풀어낸 단막극 ‘사랑의 전당’(2022)을 작가가 연출해 선보이는 전시장 안쪽의 극장 공간도 젊은 몸들의 사진이 붙은 들머리 공간과 흥미롭게 대비된다. 광대 부부가 실제 치정에 얽혀 무대에서 연기 도중 살인하는 오페라 ‘팔리아치’의 극적 장면을 풀어낸 이 단막극은 지금 이 시대 세대를 망라해 펼쳐지는 감정과 욕망의 실체에 대해 숙고하고 사색하게 한다. 15일까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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