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미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검토? "수개월, 수년 내 결정"

남승모 기자 2024. 6. 1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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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에 이어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까지 격화되면서 국제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2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핵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북한 같은 국가들은 강대국 간 힘겨루기로 국제사회 견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 핵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서구, 아시아 할 것 없이 핵 위협이 고조되면서 이른바 비확산체제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미 영향력 쇠퇴 속 확장억제 불안 증폭

미국은 그간 핵무장을 하지 않은 동맹과 우방국들을 핵 위협에서 지켜주는 확장억제 정책을 펴왔습니다. 아직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이긴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가자지구 전쟁에서 보듯 미국의 영향력은 빠르게 쇠퇴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공공연한 핵 사용 위협, 중국의 핵무력 증강은 물론 북한과 이란 같은 대미 적성국가들의 핵무장까지 속도를 내면서 불안감은 전례 없이 커졌습니다.

한미 정상이 지난해 4월 핵협의그룹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워싱턴 선언'을 채택한 것도 이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확장억제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 조치로 실제 핵 전력 증강이 포함된 건 아니었습니다. 러시아나 북한의 핵 위협이 있을 때도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확장억제를 거듭 약속했지만 핵무기 추가 배치 같은 조치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부작용에 비해 정작 실익은 크지 않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굳이 곳곳에 핵무기를 배치하지 않더라도 전 세계 어디든 단시간 내 핵 전력을 투사할 수 있습니다. 핵무기 배치를 배치하면 동맹국들을 안심시킬 순 있지만 자칫 상대 적성국을 자극해 핵 경쟁을 더 가속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손익 계산을 잘 따져봐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득 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한 셈입니다. 또 비확산을 주장하는 미국 입장에서 핵무기 배치를 늘리는 건 부담일 수 있습니다.
 

미 핵무기 확대 검토 시사…"수개월·수년 내 결정"


이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핵무기 확대 배치 가능성을 일축해 온 미국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프라나이 바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군비통제·군축·비확산 담당 선임보좌관은 지난 7일 러시아, 중국, 북한 모두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핵무기를 확충 및 다변화하면서 군비 통제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적국의 이런 흐름에 변화가 있지 않다면 미국은 몇 년 뒤 현재 배치된 핵무기 숫자를 늘려야 할 시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미 대통령이 그런 결정을 할 경우 시행할 완전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미국과 동맹에 대한 핵 위협이 증대될 경우 핵무기 배치를 늘릴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겁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중국이나 러시아뿐 아니라 북한과 같은 국가의 핵무기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의 핵 억제력을 보장하기 위해 동맹국 등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핵무기 배치를 늘려야 할 수도 있다는 바디 선임보좌관의 발언과 관련해선 아직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며 수개월이나 수년 안에 내려야 할 결정이라고 답했습니다.

설리번 보좌관은 특히 상황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면서 지금 말한 (핵무기 확대) 가능성을 적어도 (논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라는 전문가 위원회와 초당적 요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복잡하게 이야기했지만 한마디로 핵무기 확대 가능성도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간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해 핵무기 배치 확대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던 바이든 정부 안보 정책에 변화 가능성을 내비친 겁니다.
 

미 대선용 메시지?…가능성이라도 대비해야 하는 이유


바이든 정부의 이런 태도 변화는 공화당 고위 인사들 사이에서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 핵무기 배치 확대 필요성이 언급된 뒤 나왔습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의 핵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현재 수준의 확장 억제 정책만 고집할 경우 공화당에게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습니다. 안보 분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밀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핵 대비 태세에서도 약한 모습을 보일 경우, 강한 미국을 외치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대선 경쟁에서 더욱 불리해질 수 있단 겁니다.

물론 대선을 5달 남짓 앞둔 상황에서 바이든 정부가 당장 핵전력 증강을 결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중국, 북한의 핵 전력 증강이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대선 이후 실제 미국의 핵 전력 증강과 확대 배치가 실제 검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비록 가능성이지만 우리 안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사안인 만큼 우리 정부에서도 철저한 사전 논의와 대비가 필요합니다.

얼핏 '핵에는 핵'이니 배치되면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장 한국 내 국론 분열 가능성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가 '북한 핵 위협에 맞서는 강력한 억지력이 되느냐',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우리 손으로 허물어 북한에게 핵무장을 가속화시키는 빌미가 되느냐'… 상반된 시각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사드 보복에 나섰던 중국이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시 어떤 대응에 나설지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안보 문제에서 시행착오란 용납될 수 없습니다.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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