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 지배구조의 늪: 밸류업 '업' 못하는 이유 [視리즈]

김다린 기자 2024. 6. 1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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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밸류업 100일의 기록➋
증시 대표 저PBR 종목들
밸류업 테마주로 묶였지만
반짝 상승했다가 다시 꺾여
밸류업 못 믿는 투자자들
주주가치 훼손하는 이슈들
해소 못하면 밸류업 어려워

#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설계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베일을 벗은 지 100일이 지났다. 視리즈 '밸류업 100일의 기록' 첫번째 기사에서 알아봤듯, 증시의 체질을 보여주는 지표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지수 역시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밸류업을 아무리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한다지만,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며 출발했다는 걸 고려하면 못마땅한 성적표다.

# 한때 밸류업 테마주로 주목 받던 종목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서가긴커녕 뒷걸음질만 쳤다. 視리즈 밸류업 100일의 기록 두번째 편이다.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사진=뉴시스]

올해 초 국내 증시에선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업종이 큰 주목을 받았다. PBR은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값이다. 이 값이 1배를 밑돌았다는 건 시가총액이 순자산 가치에도 못 미칠 만큼 주가가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는 '저평가의 정상화'였다. 이런 종목들이 수혜를 입을 공산이 컸다. 활발한 주주가치 제고 활동으로 충분히 주가를 부양할 수 있으면서도 현금흐름이 양호한 종목의 이름은 연일 차트에서 빨간불을 켰다. 대표적 저低PBR 업종인 보험, 증권, 은행, 자동차, 지주사 등의 상승세가 뚜렷했다.

문제는 상승세가 오래 지속하지 않았다는 거다. 지난 100일간(2월 26일~5월 6일) KRX증권과 자동차 지수는 각각 8.76%, 2.80% 하락했다. 이 지수는 국내 대표 상장 증권사 11개와 자동차 업종 20개 종목으로 구성한 지표다. 밸류업 가능성이 높다고 꼽혔던 KRX보험 지수 역시 2.64% 내려갔다.

지배구조나 배당성향이 개선될 여지가 많다던 KRX은행 지수도 0.30% 오르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KRX반도체와 필수소비재 지수가 두 자릿수 오른 것과 비교하면 '밸류업 수혜'는 아예 누리지 못한 셈이다. 이들 지수는 공통적으로 밸류업 기대감이 넘쳐흘렀던 3월 초 정점을 찍고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정부가 콕 집은 종목들의 주가 흐름도 별로였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4월 '기업 밸류업을 위한 대표기업 간담회'를 열었는데, 자산총액 10조원이 넘는 업종별 대표 기업들을 호출했다. 미래에셋증권(금융업), 삼성전자(전기ㆍ전자), KT(통신업), KT&G(제조업), 코리안리(금융업), 현대차(운수장비), BNK금융지주(금융업), CJ제일제당(음식료품), KB금융(금융업), LG화학(화학), 네이버(서비스업) 등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적극 협조해달란 취지였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이들 기업의 지난 100일간의 주가 평균 등락률은 -2.04%에 그쳤다. KB금융(17.93%)과 CJ제일제당(11.53%) 정도만 선전했을 뿐, 나머진 고만고만한 주가 흐름을 보였다. 지난 5월 28일 상장사 중 처음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했던 키움증권 역시 공시 이후 주가 상승률이 1.74%에 그쳤다.

이런 성적표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증시가 호응하지 않는다는 방증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코스피는 2500~2700선의 박스권에 갇혔고, 코스닥도 900선까지 올랐다가 870선으로 후퇴했다. 외국인투자자의 강한 매도세가 상반기 내내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나쁜 지표다. 이런 박스권 장세가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반전할 거라 내다보는 전문가들은 없다. 현재로선 밸류업 프로그램이 '증시의 밸류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거다.

프로그램 자체가 논란거리이기도 하다. 인센티브가 뚜렷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고 페널티 없이 자율에만 맡긴 프로그램이 제대로 가동하겠냐는 지적도 숱하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만으론 한계가 명확하단 따가운 목소리도 있다. 증시를 바꾸려면 기업 실적이 뒷받침해야 하고,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할 뿐만 아니라 효율성을 저해하는 규제를 해소하는 등 더 다양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국거래소 측은 "긴 호흡을 갖고 추진하는 중장기적 과제"라고 설명했지만, 밸류업을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려놨는데도 증시가 개선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밸류업 테마주의 단기 변동성이 커져버린 상황"이라면서 "시장의 기대와 밸류업 프로그램 진행 과정 간의 괴리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한 K-밸류업 프로그램이 투자자들로부터 저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과연 100일이 더 흐른 뒤, 밸류업은 박한 평가를 뒤집을 수 있을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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