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 연습, 허찌르려 대낮 택했다...이스라엘 인질 구출 180분 재구성

이철민 기자 2024. 6. 1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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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닮은 건물 2개서 3주 간 연습
일용품 트럭 가장해 대낮 작전
미 국방부·CIA가 억류 장소 정보 제공

토요일이었던 8일 오전 11시가 조금 안 된 시간, 가자 지구(Gaza Strip) 중심부에 위치한 누세이라트 난민촌은 여느 때처럼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1948년 이스라엘의 독립전쟁 때 고향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몰려들어 세워진 이 곳은 도시 전체가 거대한 난민 캠프였다.

이스라엘의 대(對)테러 경찰특공대인 야만(Yaman)과 국내첩보기관 신베트(Shin Bet) 요원들은 이날 이 곳의 작은 아파트 건물 두 채에 억류돼 있던 이스라엘인 인질 4명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구출 작전의 이름은 ‘여름의 씨앗들(Seeds of Summer).’

8일 이스라엘 대테러 경찰특공대원들이 가자 지구 중심부에 위치한 누세이라트 난민촌에서 구출한 인질들을 인근 해안에 대기하고 있는 대형 수송 헬기로 긴급히 이동시키고 있다./이스라엘 국방부

이들은 인질들이 억류된 장소가 확인되자, 수 주간 모의 건물을 만들어 놓고 구출 연습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실제 구출 과정에서는, 팔레스타인 주민 수백 명이 또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은 적의 허를 찌르려고 일부러 ‘대낮’을 택했다. 성공하면 8개월째 접어든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국내 여론과 사기를 되살릴 기회가 되지만, 실패하면 하마스 테러범들이 즉시 인질을 처형할 수 있는 매우 리스크(risk) 높은 작전이었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테러 이후에, 지금까지 이스라엘군이 성공적으로 구출해 낸 인질은 3명에 불과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구출 작전의 성공 의미를, 이스라엘 국적 피랍 승객 100여 명을 구해냈던 1976년 7월의 우간다 엔테베 공항 기습 작전에 비교했다. 예루살렘 포스트와 타임스오브이스라엘,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이스라엘과 미국 매체는 긴박했던 순간들을 재구성했다.

◇인질 구한 뒤 첫 무전은 “다이아몬드 손에 넣었다”

8일 오전, 헤르치 할레비 IDF(이스라엘방위군) 참모총장과 로넨 바르 신베트 수장(首長), 다니엘 하가리 IDF 대변인(해군 소장) 등은 현장이 동영상 모니터로 연결된 신베트 청사 지휘센터에 모였다. 11시쯤 할레비 총장이 “작전 개시” 명령을 내렸고,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미리 선정한 누세이라트 난민 캠프 내 건물들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폭탄과 미사일이 떨어졌다.

하마스에게 인질구출 작전의 낌새를 주지 않으려는 성동격서(聲東擊西) 작전이었다. 난민촌 주민들에게 폭격과 사망, 애도로 이어지는 또 하루의 시작이었다.

폭격 개시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출발한 경찰특공대 야만과 신베트 요원들은 2대의 민간인 차량을 타고 누세이라트 난민촌으로 들어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들이 하마스 군복과 모자, 배지를 착용한 하마스 대원들과, 남부 라파에서 이스라엘군 폭격을 피해 떠나온 난민 행색을 했다”고,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권 매체에 말했다. 2대의 트럭엔 종종 난민촌으로 들어오는 일용품, 매트리스 등이 실려 있었다.

사실 이들은 야만 특공대원 중에서도, 평소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섞여 살면서 주민 행세를 하는 아랍어에 능통한 대원들이었다. 또 일행이 마치 대가족인 것처럼 탑승자 중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피랍 245일만인 6월8일 이스라엘 경찰특공대의 기습작전으로 구출된 이스라엘 인질들이 가족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일단 난민촌에 들어서자, 특공대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한 그룹은 26세의 여성 인질 노아 아르가마니가 혼자 갇힌 3층짜리 낮은 아파트, 또 다른 그룹은 이곳에서 100m 떨어진 아파트로 향했다. 그곳엔 남성 인질 3명이 갇혀 있었다.

오전 11시25분, 현장 구출 작전이 시작했다. 흰색 트럭이 노아가 갇힌 건물 옆에서 2층으로 사다리를 연결하자마자 10여 명의 특공대원이 신속하게 들어가 하마스 대원들을 제압했다. 공중에는 이스라엘군의 아파치 공격 헬기 수 대가 낮게 떴다.

8일 낮 민간 트럭에 탄 피난민으로 가장한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이 여성 인질 노아가 억류된 아파트 2층에 사다리를 대고 진입하기 직전 모습. 인근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찍었다./X

야만 특공대원은 “당신은 구출됐다”며 여성 인질 노아를 신속하게 이동시켰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 테러범들의 모터사이클에 태워져 납치되면서 “살려 달라”고 절규했던 여성이었다. 그가 납치된 지 245일만에 구출된 8일은 아버지의 생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시간 100m 떨어진 건물에서 전개된 구출 작전은 기습에 실패했다. 이 집은 하마스 정부의 노동부 대변인 출신이었던 여성 소유로, 남편은 팔레스타인 기자였다. 야만 특공대 팀장이 진입 중에 총상을 입었고, 결국 사망했다. 집주인 팔레스타인 여성의 일가족 7명도 몰살했다. 치열한 교전 끝에 인질 3명을 구해냈지만, 탈출할 차량이 하마스의 로켓추진유탄(RPG)에 맞아 파괴됐다.

구출팀은 이웃 건물로 인질들을 데리고 피하며, 공중 지원을 요청했다. 대기하고 있던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탈출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곧 공습을 시작했고, 동시에 이스라엘군 탱크와 포들도 포격을 시작했다. 가자 남부에서 피난 온 난민들로 붐비는 이 좁은 거리는 계속된 폭발로 혼돈에 빠졌다.

이 틈을 타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은 해안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고, 이곳에 대기 중이던 CH-53 시 스탤리언(Sea Stallion) 대형 수송 헬기는 특공대원들과 인질 4명을 태우고 곧 사라졌다. 인질 구출 성공을 알리는 암호 무전은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었다”였다.

◇미 정보수집팀이 위치 파악…3주 구출 연습 되풀이

4명 중에서 먼저 위치가 파악된 것은 여성 인질 노아였다.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의 정보수집ㆍ분석팀이 수개월째 이스라엘을 돕고 있었다. 미국은 자체적으로 가자에 드론을 띄우고 디지털 통신 정보를 수집했다. 이날 구출된 4명 중 일부는 이스라엘ㆍ미국 이중국적자였고, 이스라엘군 관리는 “이스라엘도 정보 수집능력이 있지만, 미ㆍ영의 공중ㆍ사이버 정보 수집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이 작전엔 수천 명의 이스라엘군 병력과 기술자, 정보분석가들이 동원됐다. 인질들을 억류한 두 장소가 가까워, 구출은 동시에 이뤄져야 했다. 곧 2개의 건물을 닮은 모의 건물에서 경찰특공대 야만과 신베트 요원들이 대낮 임무 수행을 위한 연습을 되풀이했다. 보안을 중시하다 보니, 일부 요원은 이 연습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동시에 탈출이 용이하도록, 가자 중부를 점령한 이스라엘군은 불도저를 동원해서 누세이라트 주변 도로들의 땅을 골랐다.

비밀이 새 나가지 않게, 6일 예정된 이스라엘 안보 내각 모임도 취소됐다. 그리고 그날 밤 베냐민 네탸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등 극소수의 안보책임자들은 작전을 최종 승인했다.

◇작전 개시 2시간 반 뒤 “4명 구출했다” 발표

이날 오후 1시 반, 이스라엘 정부는 4명의 인질이 살아서 돌아왔다고 발표했다. 구출 성공을 알리며, 다니엘 하가리 IDF 대변인은 “경비가 삼엄한 이런 아파트에선 오히려 대낮 기습작전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인질들이 억류된 아파트를 진입ㆍ탈출하는 데 더 많은 위험이 따르고, 수많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8일의 이스라엘 인질 구출 작전이 전개된 누세이라트 난민촌의 아파트 주변은 이스라엘 전투기와 포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하마스 보건부는 이날 팔레스타인 주민 274명 이상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살해된 하마스 테러범 수는 공개되지 않았다./로이터 연합뉴스

가자를 장악한 테러무장집단 하마스의 보건부는 9일 이스라엘 구출 작전으로 주민 274명 이상이 살해됐다고 발표했다. 이 중 몇 명이 하마스 대원이었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하마스는 또 “4명의 인질을 구하는 과정에서 미국인 1명을 포함한 인질 4명이 살해됐다”며 이들이 희생된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매체들은 이는 하마스의 허위 심리전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하가리 IDF 대변인은 “약 100명의 팔레스타인 희생자가 발생한 것은 알지만, 이는 하마스가 인구 밀집 주택가에 인질을 억류하고 이곳에서 전투를 한 탓”이라고 말했다.

작년 10월 7일 테러집단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 인질 251명이 끌려가고 1200여 명이 살해됐다. 이후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숨진 팔레스타인 희생자는 10일 현재 3만7000여 명(하마스 주장)에 달한다. 남은 이스라엘 인질은 120명. 이 중 30명가량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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