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서울[이기봉의 우리땅이야기]

2024. 6. 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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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소설과 방각본을 연구하는 이윤석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로부터 필자의 저서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1·2'(평사리, 2023)에 대한 멋진 서평을 받았다.

그 안에는 그동안 알고 싶었지만 찾아보지 못했던 서울에 대한 소중한 정보가 있었다.

한글 고소설 '춘향전'에서 직접 찾아 세어본 결과, 조선의 수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한양이 5회이고 서울은 무려 21회나 나왔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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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소설과 방각본을 연구하는 이윤석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로부터 필자의 저서 ‘산을 품은 왕들의 도시 1·2’(평사리, 2023)에 대한 멋진 서평을 받았다. 그 안에는 그동안 알고 싶었지만 찾아보지 못했던 서울에 대한 소중한 정보가 있었다. 한글 고소설 ‘춘향전’에서 직접 찾아 세어본 결과, 조선의 수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한양이 5회이고 서울은 무려 21회나 나왔다는 내용이다. 조선의 백성들이 수도를 가리킬 때 서울 또는 한양이라 불렀고, 그중 서울이 압도적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의미 있는 수치로서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진한 소국 시절 신라의 국명이었던 서벌(徐伐)에서 시작하여 소리가 조금씩 변해 지금의 서울에 이르렀다는 것은 학계에서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다만 왜 서벌이 수도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대한민국 수도의 공식 명칭이 서울로 정해졌는지는 아직 정리가 덜 된 것 같다.

신라는 진한 소국의 하나로 출발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정복한 후 대동강-원산만 이남의 큰 영토를 가진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소국 시절의 신라 영역인 서벌과 정복한 지역의 출신을 철저하게 차별하는 골품제란 신분제를 운영하였다. 특권 공간인 서벌은 ‘임금이 사는’ 수도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바뀌었다. 신라에서는 성(城)을 ‘벌’이라고 했는데, 서벌은 한자 金(쇠 금)과 城(벌 성)의 뜻을 빌려 金城이라 표기되기도 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자 서울은 ‘임금이 사는’ 수도인 개성을 가리키는 일반명사로 변했고, 조선 개국 후에는 역시 ‘임금이 사는’ 수도 한성부를 지칭했다. 일제강점기, 공식 명칭이 경성(京城)으로 바뀌고 임금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관성적으로 서울이라 불렀다. 미 군정 아래 있던 1946년 8월 15일, 서울헌장이 공포되고 경성부에서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되면서 서울은 신라 멸망 후 1000여 년 만에 수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의 지위를 되찾게 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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