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가 각성하자 양키스가 솟구쳤다 [이창섭의 MLB와이드]
뉴욕 양키스가 달라졌다. 지난해 82승80패로 겨우 5할 승률을 넘긴 양키스는 지구 4위에 그치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하지만 올해는 위치가 바뀌었다. 지구 1위를 넘어 전체 1위를 다투고 있다.
양키스의 부활에는 에런 저지(32)가 중심에 있다. 지난해 저지는 부상으로 상당 경기를 놓쳤다. 106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7, 37홈런을 기록했다. 9년 3억6000만달러 대형 계약이 시작되는 첫번째 시즌이었기 때문에 실망감이 컸다.
올해도 출발은 불안했다. 저지는 복부 부상으로 스프링캠프를 온전히 치르지 못했다.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즌에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첫 33경기에서 타율이 0.197에 허덕였다.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공에 힘을 쓰지 못했다. 심지어 홈구장에서 야유도 받았다. 이에 대해 저지는 “전적으로 이해한다.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지는 5월 초도 다사다난했다. 5월5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경기에서 볼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을 당했다. 지금까지 저지에게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 퇴장 이후 저지는 각성했다. 5월5일부터 32경기 동안 타율이 0.409에 달한다. 홈런도 17개나 때려내면서, 장타율 1.018를 기록하고 있다.
‘팬그래프닷컴’은 타격과 주루 성적이 반영된 공격 지수를 제공한다. 5월5일 이후 저지의 공격 지수는 35다. 2위 호세 라미레스(클리블랜드 가디언스)가 17.8, 3위 후안 소토(뉴욕 양키스)가 14.3이다. 2위와 3위를 합친 점수를 넘어선다. 혼자 다른 세계에서, 자신만의 야구를 하고 있다.
다른 기록도 군계일학이다. 조정득점생산력(wRC+)은 타자의 전반적인 공격력을 알 수 있다. 리그 평균을 100으로 뒀을 때 그보다 얼마나 더 좋은 생산력을 보였는지 판단한다. 현재 저지는 이 기록이 유일하게 200이 넘는다(210). 리그 평균 대비 100%를 능가하는 득점 생산을 보이고 있다. 참고로, 조정득점생산력은 160만 돼도 굉장히 훌륭하다고 평가된다.
시즌 초반 저지가 부진할 당시 현지 여러 매체에서 “저지의 스윙이 이전 같지 않다”고 전했다. 타격 준비 시 손의 위치가 너무 높아진 것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지는 더 적극적인 스윙을 통해서 무너진 타격 폼을 다듬었다. 주변 혹평이 따랐지만, 자기 신념을 지키며 그 시간을 인내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로 돌아왔다. 정상을 찍은 선수가 바닥에서 다시 정상에 오르는 건 훨씬 더 힘든 일이다.
저지는 비난에서 찬사로 바뀐 상황도 의연하게 대하고 있다. 저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늘 말했던 것처럼, 출발을 어떻게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달과 나쁜 달은 항상 따라올 것이다. 일관성 있게 평정심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저지가 반등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던 에런 분 양키스 감독도 저지의 생각에 동의했다. 분 감독은 “저지는 162경기 시즌에서 상승세와 하락세를 가장 잘 다루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설령 또 타격감이 떨어진다고 해도 그 시기를 잘 헤쳐 나가는 비결을 알고 있다.
5월에 폭발했던 저지는 아메리칸리그 이달의 선수로 선정됐다. 28경기에서 26장타를 몰아쳐 조 디마지오와 베이브 루스, 테드 윌리엄스 등 전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저지는 5월 이달의 선수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저지의 목표는 언제나 우승이었다. 양키스에 남은 이유도 “양키스와 함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루고 싶어서”였다. 우승을 원한다면 저지가 초점을 맞춰야 할 시간은 5월보다 10월이다.
2022년 12월, 저지는 양키스 역대 16번째 공식 리더가 됐다. 그 자리에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양키스를 위해 쏟아붓겠다”고 약속했다. 올해는 이 약속을 지킬 기회가 찾아왔다. 저지가 우승 염원에 앞장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창섭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pbbl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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