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주주 충실의무' 법제화 움직임에...재개 "기업활동 위축" 우려
정부와 정치권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현행 '회사'에서 추가로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을 추진한다. 재계는 이같은 방향으로 상법이 개정될 경우, 기업 이사진이 주주에 의한 상시 소송 리스크에 노출돼 결과적으로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10일 경제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올 하반기부터 상법 내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 개정에 착수할 예정이다. 현재 상법(제382조의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해당 조항을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라고 고쳐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외에 주주까지 확대하겠다는 것.
앞서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6월 중 공청회를 열고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상법에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한 뒤 법령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같은 움직임에 재계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상법이 개정돼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가 도입될 경우,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 소송 남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주주들의 지분 보유목적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배당과 대규모 투자, 전략적 인수합병(M&A) 등 경영 활동에 대해 다양한 주주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결국 어떤 경영상 판단이든 일부 주주에게는 충실의무 위반이 될 소지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신주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회사에 이익이 되지만 기존 주주 지분을 희석시켜 주주 입장에선 손해다. 반대로, 배당, 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환원 정책은 주주에겐 이익이지만 회사는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 이사진이 회사에 끼칠 손실을 피하려고 주주에 손실을 입히면 민사상 손해배상 리스크를 안게 되고, 반대로 주주 손실을 막으려다 회사에 손해가 발행하면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결국, 회사와 일부 주주간 이해가 상충할 때 이사진은 리스크를 우려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은 어려워진다는 주장이다.
회사와 주주에 대한 이중적 충실의무를 부과하려는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과 독일은 이사에게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만 부과한다. 이사의 배임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은 있다. 영국 역시 회사법상 이사는 회사에 대해서만 충실의무를 진다. 미국 24개주가 따르는 모범회사법도 회사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만 규정하고 있다. 단, 미국 델라웨어 등 일부 주들은 회사와 주주에 대한 이중 충실의무를 인정하고 있는데, 배임죄 규정이 없어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날 한국경제인협회는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뢰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전제로 하는 이사의 충실의무 인정 여부 검토' 연구용역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 외에 주주까지 확대하는 것은 해외 입법례에서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주식회사의 기본원리인 자본 다수결 원칙 및 회사와 이사 간 위임관계 훼손 등 우리나라 회사법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현행법 체계상 이사가 회사 외에 별도로 주주에 대해 충실의무를 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상법상 이사는 주주총회 결의로 회사가 임용한 '대리인'인데, 이는 민법상 위임의 법리와 수임인(대리인)의 선관의무를 적용한 것이다. 이사의 보수 역시 정관이나 주총 결의로 회사가 지급한다. 결국, 민법 및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는 위임계약을 맺은 회사에게만 한정된다는 주장이다.
상법 개정안이 '자본 다수결 원칙'(주총에서 1주 1의결권 원칙에 따라 모든 주주가 보유한 지분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다수결 원리에 의해 안건을 최종 결의)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개정안의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라 함은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뜻이 달라도 이사가 소수주주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이렇게 되면 소수주주가 누리는 이익이 이들의 주식 지분보다 과대평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권재열 교수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장은 현실화시킬 수 없는 이상적 관념에 불과하다"며 "이를 상법에서 강제할 경우 회사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경영판단을 지연시켜 기업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동욱 기자 dw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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