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특고 노동자는 최저임금 책정 때만 안 보이는 '투명인간'?
지난 글에서는 한국의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 중 이미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에 가입된 이들만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는 내용을 다룬 바 있다. (☞관련기사 : 尹, 노동약자 지원하겠다고? '데이터' 파악부터 제대로 해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그럼 이들에게 고용보험료·산재보험료는 어떻게 부과하고 징수하는 걸까?
1건당 세금과 보험료 일일이 걷는다
아래 그림은 어느 대리운전기사의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린샷으로 찍은 것인데, 카카오T 앱을 통해 7만 7500원 짜리 꽤 장거리 콜을 잡은 사례이다. 제일 먼저 전체 요금의 20%인 1만 5500원이 운행수수료라는 이름으로 플랫폼기업 또는 대리운전업체가 빼가게 된다.
오 마이 갓! 20%라니, 이거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닌가. 카카오 택시도 20%를 떼어가긴 하지만 16~17%를 운행 데이터 제공 대가로 돌려줬기 때문에 실제 수수료는 3~4%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이르다. 여기서 떼어야 할 돈이 더 남았으니까.
다음 선수는 근로복지공단이다. 3만 6000원의 수입에서 고용보험료와 산재보험료를 계산하여 각각 200원, 120원씩을 떼어간다. 오, 실화인가! 월 수입에서 제하는 것이 아니라 분초 단위로 이뤄지는 1건당 보험료를 떼어간다는 거?
월급쟁이보다 투명한 유리지갑
이게 끝이 아니다. 마지막 선수인 소득세와 지방세를 부과하는 국세청과 지자체가 남았기 때문이다. 7만 7500원의 장거리 콜을 잡은 이 대리기사가 손에 쥐는 최종 수입은 5만 9400원이 된다. 이 콜을 잡기 위해 이동한 비용, 다음 콜을 잡기 위해 이동하는 비용, 대리운전보험 비용을 제하고 나면 얼마나 남게 될까.
여하튼 한 가지 확실한 건, 플랫폼노동자의 모든 노동 한 건 한 건에 대해 자본가들은 고액의 수수료를 챙겨가고, 근로복지공단과 국세청은 건건이 고용보험료·산재보험료 및 소득세와 지방세를 징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리운전기사만이 아니라 퀵서비스기사, 배달 라이더의 상황도 모두 동일하다.
고용노동부는 투명인간 취급
지난 글에서 정부는 매년 실시해온 '플랫폼 종사자 규모 및 노동실태 조사'의 작년치 결과를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얘기했는데, 정부가 이들에 대해 얼마나 신경을 안 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자료를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위 자료는 고용노동부가 노동자들의 임금·고용·노동시간·사회보험 등 노동조건 실태를 가장 자세히 조사하여 발표하는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결과이다. 현재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최신 결과가 2023년 6월 기준 조사인데, '자료 이용 시 유의사항'에 버젓이 이렇게 적시되어 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근로시간, 사회보험 가입여부 등이 대부분 파악되지 않아 분석에서 제외하였음."
아니, 고용보험·산재보험 가입자 규모가 100만을 넘어섰고, 근로복지공단은 가입자 통계를 월별·성별·지역별·업종별로 자세히 내고 있다. 납부하는 보험료를 통해 수입 규모를 거의 정확히 산출할 수 있는데 "사회보험 가입여부가 파악되지 않아 분석에서 제외"한다니? 고용노동부에게 이들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는 투명인간이란 말인가.
가입자 통계도 내지 않는 고용보험?
그뿐이 아니다. 매월 고용노동부가 고용보험 행정통계 자료를 통해 분석한 노동시장 동향 자료에서도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와 관련한 항목이 통째로 빠져 있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최신 자료는 2024년 4월 고용행정 통계 기준인데, 여기에는 사회보험 가입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 따위의 얘기는 적혀 있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더 심각하다.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자들이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음에도 분석 대상에서는 '포괄하지 않는 부분'으로 아예 제껴져 있기 때문이다.
대체 왜들 이러는 것일까? 개별 의원실을 통해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고용보험·산재보험 관련 데이터를 받아보면,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닌 <인사이드경제>의 눈으로 봐도 흥미로운 부분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를테면 산재가 빈발하는 업종이 어디인지, 계절별로 차이가 나는지, 입직기간에 따라 산재발생율에 차이가 생기는지, 지역별 편차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전수통계자료가 나온다. 그렇다면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 각 업종별 특화된 예방법은 무엇일지에 대한 소중한 자료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고용보험의 경우 가입자 수와 피보험자격 상실자 수를 자세히 살펴보면 각 업종별로 고용 규모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계절적 요인은 없는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업종에서 일감과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는지를 매우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일자리 및 고용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더없이 중요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노동시장 동향 분석을 위해 이런 통계자료를 활용하지 않는다고? 하다못해 민간보험도 가입자 데이터와 보험료 수취 현황을 분석해서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가입자에게 알려주는 서비스를 하는데,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보험이 이런 서비스조차 하지 않고서 어찌 '노동약자 지원'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건당 세금·보험료는 떼면서 건당 최저임금은 안 된다?
뉴욕시가 배달 라이더와 승차공유 앱 기사에게 최저임금 제도를 실시할 수 있었던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배달 및 승차공유에 대한 일체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달플랫폼 기업들로부터 배달 건수, 배달료, 배달거리, 앱 로그인시간과 대기시간 및 배달시간 등의 데이터를 받아 정밀한 분석을 실시했다. 그로부터 유효운행률, 멀티앱핑 등의 수치를 얻었고, 이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관련 공정한 룰을 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관련 기사 : 불가능하다고? '라이더 최저임금' 만들어낸 뉴욕시를 보라)
하지만 한국의 경우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이미 국세청과 근로복지공단이 플랫폼 노동자 각각의 개인별로 분류(sorting)된 세부 데이터를 모두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관들에 이런 데이터가 없다면 세금도, 보험료도 부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한국의 경우 뉴욕시가 조사한 라이더들의 '경비' 관련 수치를 별도로 구할 필요도 없다. 이미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료·고용보험료를 부과할 때 이들 경비를 제외한 실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하기 위해 이미 수많은 데이터 조사를 통해 각 업종별 '경비율' 제도를 오래 전부터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는 가능했는데 한국만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데이터가 없어서도 아니고, 경비율이 없어서도 아니다. 한국 정부에 부족한 건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보장하고 확장하기 위한 '의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1건당 0.09%의 고용보험료율, 그와 못지 않은 산재보험료율도 적용하고, 3.3%의 사업소득세도 1건당 떼어가는데, 1건당 최저임금은 설정할 수가 없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라는 말을 거듭 외치지 않을 수 없다.
세금과 보험료를 부과할 때에는 한없이 투명하게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지갑을 다 들여다보고 떼어가지 않는가. 그런데 최저임금을 비롯한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면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가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라니? 이제 선택적 기억상실증을 닮은 선택적 시각상실증이 새로운 유행병으로 번지는 걸까.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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