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 알아듣겠어” 12년간 美정신병원 갇힌 원주민 할머니
약 40년 전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쓴다는 이유로 미국의 한 정신병원에 갇혀야 했던 멕시코 원주민 사건이 최근 현지에서 재조명받고 있다고 9일(현지시각) 유엔과 BBC 문도(스페인어판) 등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멕시코에서는 이 사연의 주인공인 리타 파티뇨 킨테로(1930∼2018)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무키 소팔리릴리 알리구에 가위치 니루가메’라는 영화가 상영됐다. 이 제목은 원주민어로 ‘별들과 산들의 여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리타는 멕시코 북부 치와와주 라라무리(타라우마라) 원주민으로, 춤과 노래를 즐기고 약초 사용이 능숙했으며 양을 치기도 했다. 그는 1983년 길을 잃고 헤메다 미국 국경을 넘어 중부 캔자스주(州)까지 가게 됐다. 당시 미국과의 국경 보안이 지금과는 달리 느슨했던 터라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과 계곡, 산을 건너면서 리타의 옷은 더러워졌고, 그의 다리에는 수많은 상처가 생겼다. 굶주렸던 그는 교회에서 날달걀을 먹다 걸렸고, 일부 경찰관을 상대로 물리력을 행사하다 구금됐다.
당시 원주민어만 구사했던 리타는 경찰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경찰은 리타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결국 리타는 ‘외모와 행동, 말투 등에 근거해 조현병 환자로 간주된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됐다.
당초 법원은 리타에게 3개월 간 입원 후 정신 상태를 재평가할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 리타의 국선변호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의료진 또한 리타와 소통할 수 없어 그의 출신지나 가족과의 연락처를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리타가 무려 12년 뒤인 1995년에야 정신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리타가 나올 수 있었던 건 캔자스주 인권센터 덕이다. 1994년 인권센터에서 5년 이상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의 의료기록 검토를 진행했고, 아주 초기 단계에 리타가 원주민임을 드러냈다는 것을 언급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인권센터는 리타에게 토리아 므로즈라는 이름의 변호인을 배정해, 리타가 자신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리타는 1995년 집으로 돌아온 뒤 병원과 직원 30명 등을 상대로 한 소송을 진행했다. 2001년까지 이어진 소송은 변호인단이 원했던 배상액보다 훨씬 적은 액수(9만 달러)로 합의하며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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