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수출 9% 신화 뒤에 숨겨진 삼성전자의 비밀
“공장에선 지독한 냄새가 나는 연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밤이면 하얀 먼지가 온 도로를 덮을 정도로 날아다녀요. 주말이면 강한 연기가 바람을 타고 집 쪽으로 날아오는데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또 공장 기계들은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을 내는데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됩니다.”
베트남 박닌시에 거주하는 응우옌반하이는 2022년 12월, 베트남 국영티브이(TV) <브이티시>(VT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분통을 터트렸다. 반하이를 괴롭히는 연기의 출처는 집 인근에 있는 에스아이티 비나(SIT VINA) 공장. 해당 공장은 휴대전화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의 부품 제조 2차 협력업체로 화학물질을 분사하는 도장공정을 담당한다. 문제는 이 업체가 공장 내부의 공기를 정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외부로 배출해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적되는 오염, 반복되는 질환
박닌시 반두옹구 보건소의 응우옌반투엔 박사는 <VTC> 뉴스에 “최근 몇 년 사이 인후통, 비염, 알레르기, 호흡곤란 등 질환으로 고통받는 주민이 늘었고 암 환자도 증가하고 있는데 주로 폐암 환자들”이라며 “2022년 초부터 우리 병동에 암 환자가 10명 정도 있었으나 드러나지 않은 환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 보도와 관련해 “SIT VINA의 배기가스는 베트남법 허용 범위 이하로 규정에 위반되지 않았고, 최근(2024년 3월) 점검에서 분진과 냄새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는 이러한 베트남 일부 지역의 환경오염과 건강 문제가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이 유독한 화학물질을 다루는 공정을 협력업체로 떠넘기고, 환경·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현지에서 10만 명을 고용하고, 2022년 650억달러의 제품을 수출해 베트남 전체 수출의 9%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베트남’의 이면이다.
반올림은 국제오염물질추방네트워크(IPEN), 젠더가족환경개발연구센터(CGFED)와 함께 이러한 내용이 담긴 ‘삼성 내부 자료로 확인된 베트남 공장의 화학물질 부실 관리와 환경오염 실태’ 보고서를 2024년 5월 펴냈다.
보고서에는 삼성이 1998년 베트남에 진출한 뒤 현지에서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문제를 바로잡지 않고 방치한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고서는 베트남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한 내용과 삼성전자에서 환경보건안전 전문가로 40년을 근무한 공익제보자 강아무개씨의 진술, 그리고 그가 제공한 내부 문건을 검토한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한겨레21>이 단독 입수한 반올림의 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가 박닌시에 세운 최초의 휴대전화 공장은 2008년 휴대전화 조립 공정을 가동하기 시작했는데 2010년부터 초기 3년 동안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공장 폐수를 처리할 설비를 갖추지 않고 가동해 폐수를 무단 배출했다. 비슷한 시기 공장 내부에 공기 정화 장치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거나 부속품인 필터를 제대로 교체하지 않아 7년 동안 심각한 대기오염을 초래한 사실도 분석됐다. 삼성은 2012년 당시 자체 환경안전 점검조사에서 지적된 관리상의 문제를 즉시 개선 조처했다고 해명했다.
개선은커녕 유독 물질 공정 외주화
공익제보자인 강씨는 반올림과 한 인터뷰에서 이처럼 환경·보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삼성은 현지 공장의 오염 방지시설을 개선하는 대신 유독 물질을 다루는 공정을 2017년께 협력업체로 ‘외주화’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강씨는 “삼성의 공급망에서 2차 이하 협력업체가 휴대전화 생산에 기여하는 부분이 상당하지만, 삼성은 이들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협력업체로 외주화한 공정의 환경·보건 영향은 제대로 조사하거나 보고할 수 없는 구조다. 협력업체의 자체 평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스스로 부여한) 협력업체들이 이듬해 생산 물량을 우선 배정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문제를 알릴 동기가 없다. 반올림은 “‘위험의 외주화’가 베트남에서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현지에서 삼성의 부실한 화학물질 관리 실태가 개선되기 어려운 이유”라며 “그 결과로 오늘날까지 여러 지역사회의 대기오염과 건강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올림 보고서에는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에서 환경오염 문제가 있음을 알고도 개선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정황도 담겼다.
공익제보자 강씨가 반올림 쪽에 제공한 삼성 내부 보고서와 사진 자료를 보면, 삼성 구미사업장과 본사의 환경보건안전 부서(EHS 그룹)에서 직접 이러한 문제점을 조사하여 경영진에 보고했지만 개선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삼성전자 본사 글로벌환경안전센터의 일반 종합점검에서는 문제가 있는 베트남 현지 공장의 대기 오염관리와 폐수처리 분야에 최고 점수를 부여했다. 삼성은 대외적인 환경안전 보고에서는 이러한 일반 종합점검의 긍정적 평가를 반영해왔다.
삼성도, 베트남 정부도 외면한 문제
삼성전자 본사의 글로벌환경안전센터는 삼성전자 전체의 환경안전보건 문제를 총괄하며 실태를 대외적으로 보고하는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매년 작성한다. 2021년도의 활동을 보고하는 ‘2022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환경안전센터는 삼성전자 전체 협력업체들이 “제품에 포함될 수 있는 유해물질과 생산현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고 오염물질이 수생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올림 보고서를 보면, 2021년 삼성전자 호찌민의 환경보건안전 부서가 호찌민 삼성가전 공장에서 폴리우레탄 단열재 공정의 독성 폐기물을 처리 과정 없이 우수관으로 방출하고, 저장 탱크의 폐화학물질이 누출됐으며, 공장 안에서도 화학물질이 누출돼 노동자에게 위험을 초래한 사실을 보고했다고 적혀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은 “2021년 당시 환경안전 점검조사에서 지적된 일부 미흡한 점이 있었지만 베트남 법규 위반 수준은 아니었다”며 “삼성전자의 내부 기준이 관련 규정 대비 훨씬 엄격하기 때문에 자체 점검에서 발견돼 조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부 조사에서 확인은 됐지만 법규 위반이 아니기 때문에 외부로 발표할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것이다.
‘오염물질 배출 및 이전 등록’(PRTR) 시스템이 부재한 베트남 당국의 허술한 관리체계도 문제의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에서는 PRTR를 통해 삼성전자 공장에서 배출하는 400종에 이르는 화학물질이 공개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삼성은 이런 화학물질을 단 한 건도 보고하지 않았고, 규제 당국과 대중에게 광범위한 오염물질 누출을 숨길 수 있었다.
반올림은 삼성이 비용 절감을 위해 현지에서 보고되는 문제를 알고도 눈감았으며, 베트남 정부는 무관심으로 이러한 삼성의 행태를 묵인했다고 지적한다. 공익제보자 강씨는 “삼성전자 박닌 공장이 운영된 지난 14년 동안 베트남 정부가 오염물질 배출 문제를 조사한 일은 내가 알기론 없었다”고 증언했다.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들의 이러한 운영실태는 글로벌 스탠더드(국제기준)에 위배된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2011년 채택한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GPs)은 ‘기업의 활동이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 그 문제를 다루고 방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 ‘기업의 대응이 적절한지 평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도 명시한다.
국제오염물질추방네트워크의 조 디간지 과학기술고문은 2024년 6월5일 <한겨레21>과 한 화상인터뷰에서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의 운영실태는 국제사회의 기준에 크게 어긋나는 것으로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공개하지 않고 철저하게 숨기는 ‘비밀주의’를 고수하면서 삼성이 환경과 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수 없었지만, 공익제보자의 고발로 상당한 문제가 있음이 뒤늦게 확인됐다”며 “환경오염 등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하면 기업이 자체적으로 공개하고 대중과 소통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국제사회가 제시하는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자산업에 사용되는 화학물질의 정보 공개와 관리 실태는 공익제보자의 용기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의 실천 의지나 노동자와 환경을 보호하려는 기업의 경영방식에 따라 공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법 아니라는 삼성, 스스로 선언한 규범은?
반올림은 해당 보고서를 토대로 시민사회와 국제기구, 언론 등에 이 사실을 알리고 삼성이 환경안전보건 위험을 지역사회에 떠넘기지 말고 직접 해결할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아울러 제22대 국회가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인권환경보호에 관한 법률’(기업인권환경보호법)을 통과시켜 기업의 환경오염과 인권침해 문제를 잘 감시할 수 있도록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이상수 반올림 활동가는 “삼성이 한국에서 감추려 했던 많은 질병과 죽음은 국제적으로 계속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더 늦기 전에 삼성이 스스로 공언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보고서의 문제 제기와 관련해 <한겨레21>에 “공익제보자 강씨가 현지 공장을 점검했던 시기는 2012년으로 10년도 더 전이고, 당시는 공장이 설립된 초기여서 여러 문제가 있었을 수 있지만 현재는 개선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또한 “삼성전자는 베트남법인을 포함한 글로벌 모든 사업장의 오염물질 배출 관련 데이터 총량을 당사의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베트남에 PRTR제도가 없어 오염물질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라며 “베트남 현지에서 위법으로 판단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삼성전자는 ‘환경안전이 경영의 제1원칙'이라는 기조 아래 각국의 환경기준보다 엄격한 자체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환경안전 관련 인프라·인력·교육·협력사 지원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지 실정법 위반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반올림이 보고서에서 제기한 모든 문제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선언한 행동규범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협력회사는 모든 적용 가능한 법률 및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고, 안전한 작업환경을 확보하며 근로자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윤리적으로 기업을 운영해야 합니다. 본 규범은 책임 있는 비즈니스연합(RBA) 행동규범과 세계인권선언,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GPs) 등 글로벌 기준에 기반을 둡니다. (…) 본 규범과 현지 법규의 내용이 상충할 시에는 보다 엄격한 기준이 우선합니다.”
2024년 3월, 삼성이 직접 작성한 ‘삼성전자 협력회사 행동규범’에 나오는 내용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준과 협력업체가 위치한 국가의 실정법이 충돌할 때는 보다 엄격한 글로벌 기준을 우선시한다는 자신의 다짐을 지킬 수 있을까.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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