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또 한 번 ‘박재현’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손동환 2024. 6. 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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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4년 5월호에 게재됐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고려대의 전성기를 주도한 박재현은 프로 관계자드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프로 입단 후 숱한 부상으로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오히려 선수 유니폼을 빨리 벗어야 했다. 하지만 박재현은 농구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여겼다. “지금처럼 살 수 있다면, 또 한 번 ‘박재현’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이 박재현의 진심을 함축했다.

기대
공격과 센스를 갖춘 박재현은 경복고 시절부터 대형 포인트가드였다. 잠재력을 인정받은 박재현은 고려대로 진학했다. 후배인 이승현(부산 KCC)-문성곤(수원 KT)-이종현(안양 정관장) 등과 고려대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재현은 2013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경희대 3인방(김종규-김민구-두경민)에 밀렸기 때문. 그래서 박재현은 4순위로 프로에 입성해야 했다.
그렇지만 박재현을 지명한 서울 삼성은 박재현을 기대했다. 박재현의 잠재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실제로, 박재현은 데뷔 시즌(2013~2014)부터 많은 기회를 얻었다. 주축 자원은 아니었지만, 핵심 로테이션에 포함됐다.

2013년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4순위로 서울 삼성에 입단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프로 선수를 꿈꿨습니다. 그래서 프로에 입단한 것 자체가 너무 큰 영광이었고, 너무 기뻤어요. 설레기도 했고요.
물론, ‘내가 어느 팀에 갈까? 몇 순위가 될까?’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대학 생활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프로에 함께 가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기회를 많이 받지 못했던 동기들이 드래프트를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걸 지켜본 저도 동기들의 걱정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동기들과 꼭 프로에 가고 싶었어요. 그리고 동기들 모두 프로에 지명됐습니다. 너무 다행이었고, 저 역시 프로 입단의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행복했던 것 같아요.
삼성 농구단의 첫 인상은 어땠나요?
꿈꿨던 프로에 갔고, 꿈꿨던 선배님들과 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너무 뿌듯했고 너무 설레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어요.(웃음) 게다가 STC(삼성트레이닝센터)는 최고의 시설을 자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삼성에 소속된 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삼성은 ‘가드 왕국’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 가드였던 이상민 코치님(현 부산 KCC 코치)께서 계셨고, 모든 가드에게 롤 모델이었던 김승현 선배님(전 해설위원)께서 베테랑으로 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학교 선배님(김해 임호중)이셨던 이시준 선배님(현 인천 신한은행 코치)께서도 저를 다잡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더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웃음)
데뷔 시즌에 36경기 평균 20분 5초를 소화했습니다.
(기록은 평균 3.8점 1.9어시스트 1.7리바운드였다)

프로 입단 후 동아시아 대회 때문에 바로 차출됐습니다. 그래서 구단에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고, 시즌을 준비하는 시간 또한 짧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데뷔전’이나 ‘첫 득점’보다, 정신없었던 기억만 남아요. 게다가 시즌 중에 손목 골절을 당해, 더 정신없었던 것 같아요.

끝자락이 남긴 경험
박재현은 2014~2015시즌 기회를 더 많이 얻었다. 경기당 24분 10초를 소화했고, 평균 6.4점 2.3어시스트 1.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커리어 하이. 박재현의 농구 인생은 탄탄대로일 것 같았다.
그렇지만 박재현은 다음 시즌 부침을 겪었다. 데뷔 최다인 50경기를 소화했지만, 평균 9분 3초 밖에 뛰지 못했다. 기록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재현은 그 후 공백기를 겪었다.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2018~2019시즌. 고양 오리온으로 팀을 옮겼고, 평균 16분 12초 동안 5.5점 1.8어시스트 1.1리바운드로 쏠쏠한 활약을 했다.
박재현은 2021~2022시즌 전주 KCC(부산 KCC)로 이적했다. 2022~2023시즌 중 일본 무대를 경험했다. 3개월 동안 니가타 알비렉스 BB에서 활약했다. 일본 무대를 경험한 박재현은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2014~2015시즌에 커리어 하이를 찍었습니다.
데뷔 시즌보다 부담을 덜 느꼈던 것 같아요. 또, 새롭게 부임하신 이상민 감독님께서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셨어요. 어린 선수들한테 자신감을 심어줬고, 편안하게 농구할 수 있도록 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슈팅 횟수를 늘릴 수 있었습니다. 공격 비중도 늘어났고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기록을 냈다고 생각합니다.
2018~2019시즌 때 다시 반등했습니다.
상무 제대 직전에 어깨를 수술했습니다. 힘든 시기였지만, 단단해질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큰 힘이 됐고, 추일승 감독님(전 대한민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께서도 저에게 기회를 많이 주셨거든요. 제가 선수로서 기회를 받았기 때문에, 제가 조금이라도 더 보여드렸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대릴 먼로(전 안양 정관장)라는 훌륭한 멘토가 있었습니다. 먼로는 똑똑한 선수고, 같이 뛰는 선수를 빠르게 파악했어요. 같이 뛰는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했죠. 저에게도 “너는 이게 장점이니, 이런 플레이를 해라. 너가 이렇게 움직이면, 내가 이렇게 움직일게”라고 이야기해줬어요. 그렇기 때문에, 2018~2019시즌의 저는 못할 수가 없었습니다.(웃음)
2022~2023시즌 중 일본으로 넘어가셨어요.
KBL이 ‘아시아쿼터’로 새로운 문을 열었듯, 저 역시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꼭 한 번 도전하고 싶었죠. 배울 게 많을 거라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2022~2023시즌 전에 최형길 단장님과 전창진 감독님께 말씀을 드렸고, 두 분 모두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그 후 일본에 갈 기회를 얻었죠.
일본에서는 어떤 것들을 느끼셨나요?
많은 게 세분화됐고, 전술과 시스템도 다양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한국 농구와 구체적인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용어와 옵션 등 기본적인 시스템만으로도 경기 흐름과 방향을 세부적으로 설정합니다. 상대 수비 전략과 상대 장단점을 세밀하게 파악한 후, 공략하는 방법을 체계화하는 거죠. 그래서 투입되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깔끔했습니다. 공격 진행 과정도 원활했고요. 제가 느낀 일본 농구는 그런 점에서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신장 작은 가드를 약점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를 장점으로 생각합니다. 단신 가드를 위한 전술도 많이 만들고요.(토가시 유키와 카와무라 유키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그래서 조금은 놀랐습니다.
또, 일본 팀 절반이 외국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고 있습니다. 각자의 특색을 지닌 외국인 감독님이 일본 문화와 잘 결합됐기에, 일본 농구가 빠르게 선진화된 것 같습니다. 일본 농구가 빠르게 발전한 힘이라고도 느꼈고요.

터닝 포인트
프로 스포츠 선수는 누구나 새로운 인생과 마주한다. 선수만 평생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재현도 마찬가지였다.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선수 생활을 마쳤기 때문에, 새로운 포인트와 마주할 수 있었다. 은퇴 직후 유소년 농구 교실에서 일하게 된 것.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전과 다른 환경에서 많은 걸 경험했다. 무엇보다 지도자로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게 가장 큰 포인트였다.

프로에 오랜 시간 있다가, 클럽 농구를 접했습니다.
다양한 나이의 다양한 친구들과 만나고 있어, 늘 새롭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 유소년 친구들과 교류를 하고 있어,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유소년 클럽 농구 일을 하는 동안, 많은 친구들이 농구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농구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클럽 농구의 매력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클럽 농구에 있는 동안, 어떤 걸 배우셨나요?
농구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훌륭하고, 농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클럽 선수들이지만, 자기 경쟁력을 제고하려고 합니다. 끊임없이 준비하죠. 그런 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대회가 클럽 농구를 하는 친구들에게 큰 무대이자 큰 기회로 느껴졌습니다.
어떤 대회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아시아 유스 챔피언십’이라는 큰 대회가 최근 충주에서 열렸습니다. 제가 청소년 대표팀 때 치렀던 국제 대회에서나 느꼈던 규모였죠. 클럽 대회가 그 정도의 규모로 열린 게, 저한테는 너무 큰 감동이었습니다. 이런 큰 대회가 어린 선수들한테는 엄청 소중하게 다가왔을 겁니다. 저 역시 클럽 농구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고요.
지도자로서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농구와 사랑에 빠지게 하자’입니다. 사랑에 빠지면, 어려움도 잊고 직진하게 되잖아요. 만약 농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농구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겁니다. 더 좋은 퍼포먼스를 쟁취하려는 노력 역시 마찬가지고요. 또, 농구와 사랑에 빠진다면, 고난과 시련 역시 어린 친구들에게는 최고의 거름이 될 겁니다.
지도자로서 공부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과거에는 포지션에 맞는 플레이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메인 볼 핸들러와 스크리너, 공간 창출을 하는 사람 등 역할에 맞는 플레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요?
포지션이 정해져있다고 해도, 선수가 상황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함지훈 선배님(현 울산 현대모비스)께서도 상황에 맞는 역할과 행동을 합니다. 메인 볼 핸들러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스크리너로서의 역할을 이행하기도 하죠.
이렇듯, 선수 한 명의 다양한 행동이 팀 옵션을 훨씬 다채롭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선수가 지닌 가치와 경쟁력이 달라져요. 다만, 그렇게 하려면, 역할에 맞는 기술 향상이 선수들에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역할에 맞는 플레이’를 더 연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가 있을까요?
일본 오사카에서 뛰고 있는 이현중 선수가 그렇습니다. 공간을 창출하는 선수에서 높은 성공률을 지닌 메인 옵션으로 성장했습니다. 역할에 맞게 성장했던 거죠. 그런 점이 저에게는 소름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현중이라는 선수의 최대치가 더 높아질 것 같아요. 너무 기대돼요. 그런 이현중 선수를 보면서, 저 스스로 ‘지도자의 성향과 방향이 언제나 같을 수 없다. 또, 지도자의 이야기가 100% 정답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르치는 선수가 경쟁력을 지닐 수 있도록, 내가 지도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박재현으로 또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뭐하고 지내세요?’의 마지막 주제는 자신의 농구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박재현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농구 인생을 돌아봐달라”고 말이다.
박재현은 20년 넘게 농구공과 함께 했다. 코트에 있는 시간 동안, 숱한 일을 겪었다. 박재현 역시 코트 안에서 여러 감정을 느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임팩트 있는 말을 남겼다. “지금처럼 살 수 있다면, 또 한 번 ‘박재현’으로 태어나겠다”였다.

‘농구’는 어떤 의미인가요?
인생입니다. 농구에서 희노애락과 인생을 배웠거든요. 경험도 쌓았고요. 만약 제가 살아온 기억에서 농구를 뺀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을 겁니다. 이전의 경험과 추억을 토대로, 앞으로의 인생 역시 잘 만들어보겠습니다.
‘박재현의 농구 인생’을 한 번 돌아봐주세요.
사랑과 아픔이 공존했습니다. 또, 효자와 불효자를 넘나들었습니다. 부모님을 웃게도 해드렸지만, 울게도 했거든요.
저 스스로도 농구 때문에 울고 웃고를 반복했습니다. 힘겹기도 했고, 즐겁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농구가 있었기에, 저는 제 인생을 잘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제 인생이 심심하지도 않았고요.(웃음)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실 건가요?
지금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면, 또 한 번 ‘박재현’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농구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농구로 맺어진 인연들이 저에게는 너무 감사해요. 무엇보다 농구로부터 영광과 행복을 얻었습니다. 이는 제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합니다.

일러스트 = 락
사진 제공 = KB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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