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이 여행] 시장으로 온 청년들 × 익산 청년몰
다양한 음식점부터 기념품 상점과 체험, 서비스 숍까지 지루할 틈이 없다.
(시사저널=글 김현정·사진 신규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의 미륵사지석탑이 고즈넉하고도 당당한 분위기를 전하는 익산은 예부터 교통의 요지로 물자가 풍부한 도시였다. 일제강점기에 일찌감치 철도가 놓이고, 기차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기도 했다. 익산역 맞은편,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익산중앙시장은 1947년 개장했다. 갈수록 상인과 손님이 밀려 들어와 상권이 확장되고 시장도 무려 세 개로 늘었다. 익산 사람은 이곳을 '중매서'라 부르는데 중앙‧매일‧서동시장 앞글자를 합친 말이다.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시장이 영광스러운 날을 보내다 세월의 변화에 따라 기운이 주춤해진 즈음, 청년몰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익산중앙시장 청년몰 '상상노리터'는 2022년 12월 임시 오픈을 한 뒤 채비를 갖추고 보완해 2023년 2월 28일 정식으로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전통시장육성재단이 익산시와 함께 꼼꼼히 기획하고 교육한 청년 사장님들이 깨끗이 단장한 2층 건물에 입주해 시장을 젊고 활기차게 만들고 있다. 청년이 진심을 담아 제공하는 음식과 서비스가 만족스럽고, 역과 가까워 가벼운 마음으로 들르기도 좋은 곳. 익산 청년몰 상상노리터 청춘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익산기차샌드
정도희 대표는 학생 때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디저트에 빠졌다. 여행 가서도 다양한 디저트를 맛보는 순간이 즐거웠다. "디저트가 맛있는 카페를 차리고 싶다 생각했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러다 중소벤처기업부 청년몰 모집 공고를 봤지요." 꿈만 있지, 나머지는 막막했던 20대 청춘에게 청년몰 사업은 딛을 땅과 나아갈 방향, 도전할 기회를 주었다. "제 성장도 중요하지만 고향 익산을 알리는 디저트를 목표로 삼았거든요." 고민의 결과가 '익산기차샌드'다. "익산은 호남선과 전라선이 나뉘는, 호남 철도의 중심지잖아요. 이 도시가 기차역 중심으로 발달해 왔고, 저희 청년몰도 역과 가깝고요." 이름에 익산을 넣은 만큼 제품에 무엇보다 신경 썼다. 남녀노소 누구나 먹어도 속이 편하도록 밀가루 대신 국내산 쌀가루로 쿠키를 빚느라 수없이 실험을 거듭했다. 종류는 고구마, 딸기, 캐러멜, 녹차. "익산에서 난 고구마를 쓰고, 설탕과 소금은 중앙시장에서 구입해요. 20대인 제가 들어와서 이 시장에도 활기가 돌았으면 합니다." 기차 모양을 새긴 쿠키 틀, 디자인이 예쁜 종이 박스는 전통시장 청년상인 도약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만들었다. 선물로 구입하기 더 좋아졌다. 곧 익산 특산물인 마에 캐러멜을 배합한 쿠키를 출시할 예정이다. 익산 대표 디저트를 향해 또 한 발 내딛는다.
미아씨파티공작소
꽃이 들어간 풍선, 내가 원하는 문구를 쓴 토퍼. '미아씨파티공작소'는 일상을 한층 즐겁게 하는 곳이다. 손재주가 뛰어난 유현명 대표는 결혼해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청년몰 덕분에 사장님으로 거듭났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실시하는 교육이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어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운영부터 세금 계산 방법까지 가르쳐 주었지요." 졸업 시즌, 가정의 달 같은 성수기는 물론이고 생일‧승진‧결혼 등 1년 내내 기념할 날이 있기에 손님은 늘 설레는 얼굴로 이 집을 찾는다. 칠순을 맞으신 부모님 잔치에 "그냥 지나'칠 순' 없지"처럼 손님이 요청하는 토퍼 문구도 재치 만점. "청년몰에서 전통시장 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유리하고, 지역 축제에 청년몰 일원으로 참가한 경험도 유익했어요." 익산 여행 첫 일정으로 여기 들러 "나는 지금 익산 여행 중" 토퍼 만들기 추천.
수제B
서울 유명 한정식집에서 요리를 배운 김근영 대표가 수제 버거로 승부를 건다. "이 넓은 시장에 버거 가게가 없더라고요." 시장과 버거가 어울릴까 싶지만 문 연 지 보름 만에 상인회 회장 사모님이 단골이 되었다. 가족 단위 손님뿐 아니라 시장 상인도 많이 방문해 김 대표도 놀랄 정도다. "제대로 해야 한다 다짐하고 준비했거든요."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상인들, 맛있는 음식이 즐비한 전라도. "청년몰 교육 프로그램에 셰프님과 일대일 맞춤 교육이 있었어요. 집에서 시험 삼아 하는 요리와 조리 여건을 갖춘 음식점 주방에서 하는 요리는 다른데, 이 경험이 큰 자산으로 남았죠." 쇠고기와 새우 패티는 매일 아침 손질하고, 양파도 레드 와인에 볶아서 넣는다. "얼마 전에는 어느 손님이 '미국에서 살다 왔어요?' 물으시더라고요. 보람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의 첫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리왕반점
강주희 대표는 '중앙시장 키드'다. 할머니가 50여 년 전 이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해 엄마가 이어받아 수산물 가게를 하고, 집도 시장 바로 옆이었다. "여기가 예전엔 청과물을 판매하던 곳이거든요. 어느 날 2층 건물로 공사하고는 청년몰이 들어섰어요. 어려서부터 늘 왔다 갔다 하며 놀던 데에 제가 중식집을 낼 줄은 상상도 못 했지요." 그 배경에는 남편 김대은 주방장이 있었다. 그는 간호대학을 다니면서 다양한 음식점 주방 아르바이트를 했고, 간호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도 '내 요리'를 꿈꾸었다. 특히 중식 주방 칼을 쥐는 느낌, 재료에서 요리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 짜릿했다. "청년몰 사업으로 꿈을 이루었어요. 자본이나 경험이 부족한 우리 같은 청년한테 청년몰에서 공간과 기반을 마련해 주잖아요." 부부는 실력을 갖추는 일에만 집중했다. "누구 딸네 음식이 별로라고 소문나면 큰일이죠. 근처에서 음식점 하시는 분께 폐를 끼쳐서도 곤란하고요." 인근에 없는 메뉴인 찹쌀 탕수육을 내놓았고, 가격이 부담스러워도 국내산, 가능한 한 중앙시장 식재료를 썼다. 다행히 엄마 덕분에 싱싱한 수산물 재료 걱정은 덜었다. "세 살짜리 조카가 좋아하는 자장면을 비롯해 모든 메뉴가 자신 있어요. 마실 삼아 시장에 들르시는 팔순 할머니 손님은 짬뽕 드시러 거의 매일 오시거든요. 어떻게 열심히 안 해요?"
내손만두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식당을 경험한 이갑수 대표는 만두가 제일 재미있었다. 3년을 연구해 상품화한 만두를 온라인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자주, 많이 먹어도 괜찮은 만두를 만든다고 설탕, 화학조미료를 빼고 나니 맛이 허전하더라고요." 보완하고 또 보완해 내놓은 예쁘고 속 편한 만두는 반응이 좋았지만, 늘 혼자 일하는 게 외로웠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점포를 물색하던 중 청년몰에 지원했다. "청년몰은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에겐 무조건 이득이에요. 이렇게 준비된 환경에서 시작할 기회가 어디 있겠어요?" 지난 5월 문을 연 '청년몰 새내기' 이 대표는 지원을 받은 만큼 만두의 품질에 책임감을 느낀다. 이름처럼 매일 손으로 만두를 빚고, 김치와 고춧가루까지 국내산을 쓴다. 내 음식 드시는 손님 모습에 뿌듯한 하루하루. 또래인 청년몰 사장님들이 함께해 더욱 든든하다.
오스네일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사용하지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손과 발. '오스네일'에서는 이들이 주인공이다. "네일아트에 관심이 많아 전부터 혼자 바르고 말리고 꾸미곤 했거든요. 출산한 뒤 경력이 단절되었을 때 남편이 조언해 주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요." 응원에 힘입어 오화주 대표는 네일아트 학원에 등록하고 국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국제미용경기대회 등 여러 대회에 나가 수상으로 실력도 검증받았다. 'K-네일아트'를 이끌겠다는 야심을 품고 심화 과정인 살롱아트를 배우던 학원에서 청년몰 오픈 소식을 들었다. "창업을 꿈꾸긴 했지만 가능할까 조건을 따져 보는데 저랑 맞는 거예요." 난생처음 사업자로 출발하는 오 대표에게 이론과 실무 교육 모두 유용해 흡수하듯 공부했다. 어느새 손님을 맞은 지 1년 반. 단골이 생기고, 노하우도 쌓인 청년 사장님으로 날마다 성장하고 있다.
■청년 추천 여행지
익산중앙시장에 활기를 더하고 있는 상상노리터 상인들이 청년몰과 함께 방문할 여행지를 꼽아 주었다.
고스락
9만 9000제곱미터(약 3만 평) 정원에 4000여 개 항아리가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다. 전통 장류와 장아찌 등을 생산하는 유기농 발효식품 농원 '고스락'은 오늘날 보기 드물어진 항아리의 행렬 덕분에 명성을 얻었다.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안에서 장이 익어 가는 항아리다. 일제강점기에 제조했을 만큼 오래된 항아리도 있다. 정겨운 돌담길을 따라 야트막한 전망대에 오르면 자연과 어우러진 항아리 풍경, 일명 '옹기 뷰'에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옹기 사이사이를 누비며 웃고 사진 찍는 사람들 표정에 덩달아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드라마 에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익산근대역사관
독립운동가 김병수 선생이 세운 옛 삼산의원 건물을 그대로 옮겨 2019년 익산근대역사관으로 꾸몄다. 사료를 토대로 과거 모습을 재현해 건물 자체도 유심히 살필 가치가 있고, 2층 규모 전시실에는 지명이 '이리'였던 시절과 이리역에 얽힌 이야기까지 충실히 모았다.
웅포곰개나루
금강이 유유히 흐르는 웅포면. 사람들은 수변 공원에서 산책하고 자전거를 탄다.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곳을 찾는 또 다른 이유가 캠핑장이다. 물멍, 노을멍, 불멍, 별멍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라인업. 오토캠핑장과 일반 캠핑장으로 나뉘며, 시에서 운영해 가격도 만족스럽다.
익산교도소세트장
'법질서 확립'이라 쓰인 외벽, 망루, 육중한 철문이 달린 감방 등에서 교도소 느낌이 물씬 난다. 문 닫은 초등학교 부지를 이용해 수감실, 취조실, 면회실 시설을 갖추어 2005년 개관했다. 영화 《7번 방의 선물》, 《내부자들》, 드라마 《펜트하우스》 등 수많은 작품을 촬영했다.
미륵사지
백제 무왕이 세운 거대한 사찰은 사라졌으나 탑 두 기가 남아 옛 영광을 전한다. 1300년 세월을 넘어 현대인이 이 탑을 관람한다는 사실이 기적 같다. 눈을 들어 높이 14.5미터에 이르는 석탑을 바라보고, 둘레를 크게 돌고, 두 탑을 이어 걷는다. 머릿속 소음이 잦아드는 시간이다.
국립익산박물관
미륵사지석탑 바로 옆에 들어선 국립익산박물관은 미륵사지와 백제의 찬란함을 실감하는 곳이다. 석탑 심주석에서 발견했다고 알려진 사리호, 함께 출토된 금구슬과 유리구슬에 깃든 백제의 빼어난 예술성에 감탄한다. 왕궁리오층석탑 금동제 불입상, 금동향로 등 눈을 떼기 어려운 유물이 줄줄이 기다린다. 백제 멸망 이후 미륵사지에 묻혔다 발굴된 유물을 감상하면서는 켜켜이 쌓인 시간을 가늠해 본다. '도솔이와 함께 떠나는 미륵사 시간 탐험' '박물관 속 고도 익산 여행' 등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관람이 더욱 즐거워진다. 어린이박물관을 따로 마련해 가족 동반 여행객에게도 맞춤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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