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제3차 세계대전의 화약고?
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2년 넘게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강대국 사이 충돌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최근 커지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자신들이 제공한 무기로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하고,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각)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개막을 앞두고 주요 외국 통신사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서방 제공 무기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움직임에 대해 “우리에게는 왜 (서방의) 민감한 시설에 대한 공격이 수행될 수 있는 지역에 같은 등급의 무기를 공급할 권리가 없는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 푸틴 대통령은 이날 재래식 무기로 공격받아도 존립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핵무기로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러시아 핵 정책을 언급하며 또다시 핵 위협을 했다. (...)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22일 러시아 동남부 크라스노다르 지역의 아르마비르 기지, 그리고 같은 달 26일에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1770㎞ 떨어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국경 지역인 오렌부르크의 오르스크 기지에 있는 러시아의 핵 조기 경보 시스템을 드론(무인기) 등으로 공격했다. (...)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핵 조기 경보 시스템 공격이 러시아를 지나치게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를 우크라이나에 전달했다. 러시아의 핵 독트린에서는 핵 조기 경보 시스템에 대한 공격은 핵 보복공격의 근거가 된다. (6월7일 한겨레)
Q. 요즘 우크라이나 전쟁 왜 이리 흉흉해? 핵 얘기까지 나오니 말이야.
A. 올해 들어 러시아 총공세가 격화되자 미국 등 서방도 우크라이나 지원을 늘렸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월30일 우크라이나에 미국 무기를 사용해서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도록 했어. 그동안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방어용 무기만을 제공하고 미국 무기를 활용한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어. 가령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등을 공격하는 중거리 무기인 다연장 로켓시스템 하이마스(HIMARS), 공격용 장갑차인 브래들리, 전투기 F-16 등을 제공했어. 그러다가 러시아 본토까지 공격하는 장거리 무기(사거리 300km)인 신형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까지 제공한 거지. 우크라이나는 지난해부터 드론을 이용해 러시아 본토를 공략해왔는데 이번엔 러시아 영내 깊숙이 있는 핵 조기경보 시스템까지 노린 거지.
서방에선 프랑스가 가장 적극적이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각)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을 한 뒤 우크라이나에 군사훈련 고문단을 파견해 국가 연대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라고 밝혔어. 마크롱은 지난 3월부터 서방 국가들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주장해왔어. 러시아 입장에선 가만있을 수 없겠지. 그러니 푸틴이 직접 나선 거야.
Q. 그런데 푸틴도 참 특이하다. 이 와중에 러시아에 적대적인 서방 언론사들을 불러 기자회견을 하다니.
A. 미국·유럽에 강력한 경고를 보낸 거야. 푸틴은 “서방은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으나, 러시아는 핵 교리에 따라 러시아 주권과 영토 통합성이 위협받으면, 모든 수단이 수용 가능하다”고 했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제공하는 국가들의 민감한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지역에 무기를 배치하는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고. “핵무기 사용은 예외적인 상황에만 가능하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러시아의 핵 교리는 살아있는 것이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엄포를 놨어.
한국에 대해선 의외로 유화적으로 나왔어. “한국이 분쟁 지역에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거든. 러시아는 최근까지도 한국이 미국·캐나다를 통해 포탄을 우회 공급한 데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거든. 이제 푸틴은 한국과 서방을 분리해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힌 거야. 동시에 한국이 더이상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하면서.
Q. 푸틴은 왜 갑자기 한국에 비둘기를 띄운 건데?
A. 한국도 올해 러시아에 유화적 신호를 보냈어. 신원식 국방장관이 지난 3월18일 외신 기자간담회에서 러시아의 민간인 학살 의혹이 제기된 ‘부차 학살’(2022년)에 대해 “아직 명백하게 사실인 것으로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어.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지난해 7월 부차 방문했을 때는 “러시아 군대가 저지른 잔혹 행위의 상징”이라고 말했었는데도.
이제까지 러시아는 부차 학살은 조작이라고 주장해왔어. 그런데 한국 국방장관이 대통령이 직접 ‘학살’이라고 규정한 것을 뒤집었으니 기류 변화를 눈치챘겠지. 신원식 장관은 이때 “우크라이나에 직접 우리가 살상무기를 지원한 적은 없고, 정부 방침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정책은 유효하다” “우크라이나를 전면 지원해야 한다고 내가 말했다는 언론보도는 와전된 것이다”라고도 했어. 러시아가 한국의 포탄 우회지원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북한과 밀착하는 것은 한국애 큰 부담이거든. 러시아로서도 한국을 마냥 비난하면서 한-미가 더욱 밀착하는 걸 바라지 않고.
Q. 그런데 미국은 본래 러시아가 가상적국이니 그렇다 쳐도 왜 프랑스는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지?
A. 좀 의외지. 마크롱은 전쟁 발발 초기엔 러시아의 “체면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유화적 태도를 보였는데 지난해 중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밀리자 입장을 바꿨어. 그가 이렇게 돌아선 이유로는 우선 대내적 요인을 꼽을 수 있지. 정적인 극우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과의 경쟁 측면이 있어. 르펜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프랑스의 개입에 소극적이야. 마크롱은 이에 맞서 국민에게 ‘푸틴을 지지하냐 반대하냐’고 물으면서 르펜과 차별화를 꾀한 거지.
유럽 안보의 주도권에 대한 프랑스의 전통적 입장 때문이기도 해. 프랑스는 2차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유럽 안보 구도에서 유럽의 독자성과 프랑스의 주도권을 강조해왔어.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나토 가입 대신 독자적 핵 개발을 추진했어. 마크롱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는 유럽연합 독자방위군 창설을 제안한 바 있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미국에 맞서 협상론을 주장하던 마크롱은 전쟁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유럽 스스로 방위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거야.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유럽이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우크라이나전에 소극적인 독일과의 경쟁 측면도 있어. 마크롱의 측근은 “독일은 유럽의 경제적 지도자이고, 프랑스는 전략적 지도자라는 두 나라 관계의 기초를 독일이 깨고 있다”고 했거든.
Q. 미국이야 우크라이나가 승리하길 바라지만, 우크라이나가 핵 조기경보 시스템까지 공격하는 건 부담스럽지 않을까?
A. 그러니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우려를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온 거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핵 조기경보 시스템 공격은 매우 심각한 사안이야. 미국에 맞서는 러시아의 전략적 핵 억지력을 훼손했다고 볼 수 있거든. 전문가들은 이런 공격이 서방에 의한 것이라는 신호를 러시아에 보내서 더욱 위태로운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해.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미국은 러시아나 중국을 둘러싼 해외 미군기지에 핵 조기경보 시스템을 배치해 놨어. 이 시스템이 공격받았다면 미국이 어떻게 반응했겠어? 특히 우크라이나의 공격 전날인 5월21일 러시아 국방부는 ‘남부 군구’에서 벨라루스와 함께 전술핵무기 사용 훈련을 시작했다고 발표했어. 이곳은 우크라이나가 공격한 러시아 핵 조기경보 시스템 기지가 있는 곳이야. 전술핵무기 훈련을 하는 지역의 핵 조기경보 시스템을 공격했으니, 일촉즉발의 핵 충돌 가능성까지 있었지.
Q. 정말 러시아가 핵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해? 혹자는 3차세계대전 가능성까지 언급하더라?
A. 우크라이나 공격을 받은 핵 조기경보 시스템이 있는 러 남부 군구에서 전술핵무기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말했잖아. 러시아는 전략핵무기 정기 훈련은 공개적으로 하지만 전술핵무기 훈련을 공개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줄곧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해왔는데 이번에 보란 듯 훈련을 한 거라고.
미국 역시 핵과 관련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대응하고 있어. 프러네이 바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군축 담당 선임국장은 7일 군축협회 연례회의 연설에서 “러시아·중국·북한의 핵무기 증강에 대처해 미국도 핵무기를 증강해야 한다”고 밝혔어. 그의 말을 옮겨볼게. “러시아·중국·북한은 모두 핵 무기고를 매우 빠른 속도로 확장하면서 다양화하고 있으며 군축에는 관심이 없다. 적들의 무기고에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몇 년 안에 현재 배치된 (핵무기) 숫자를 늘려야 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개정 핵무기 운용 지침(nuclear weapons employment guidance)을 내놓았다. 이 지침엔 중국 핵무기의 증가와 다변화를 고려할 필요, 그리고 러시아·중국·북한을 동시에 억제할 필요가 강조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이 핵무기 증강 배치 고려 이유로 핵 강국인 러시아 및 중국과 함께 북한까지 언급한 거야. 핵 전력과 관련해 북한을 러시아, 중국과 같이 언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미-러의 핵 대결이 고조되고, 그 여파가 한반도까지 미치고 있다는 얘기거든.
아주 위험한 상황이야. 러시아와 서방은 서로 밀리지 않겠다며 상대방을 계속 자극하고 있어. 마치 1차대전 전야와 비슷해. 긴장이 고조되다가 결국 세계대전으로 비화했잖아. 이때문에 당시 1차대전 교전국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몽유병자’라고 불리게 됐어. 2024년에도 몽유병자들이 횡행하고 있어.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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