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있지만 숨겨둔 ‘이것’… 300집 거실 사진 찍어 찾아냈다
현대인의 필수품이지만, 숨기고 싶은 가전 ‘유무선 공유기’. 사람들은 어디에 둘까? 티브이(TV)장 서랍 속, 티브이 뒤편, 거실 책장 위, 책상 아래….
정윤필 케이티(KT) 디바이스본부 상무는 ‘공유기를 가리려는’ 사람들의 욕구에 주목했다. 그는 지난해초 오래된 아파트 인테리어 리모델링을 ‘셀프’로 했다. ‘오늘의집’ ‘셀인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예쁜 집’ 사진에선 공유기가 안 보였다. 공유기는 두꺼비집, 멀티탭과 함께 ‘인테리어 3대 흉물’ 취급을 받았다. 안테나가 튀어나오고, 전선이 엉켜 있고, 시커멨다. “티브이 뒤에 숨기거나, 라탄 바구니 안에 넣는” 이유였다.
“코로나19 뒤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비스포크’나 ‘오브제’ 유행처럼 디자인 가전에 대한 욕구도 높아졌어요. 그런데 요즘 가전들은 대부분 와이파이로 연결됩니다. 공유기를 개방된 공간에 꺼내 둬야 더 잘 쓸 수 있죠.” 그동안 통신사는 무선 신호를 강화하기 위해 더 많은 안테나를 달고, 안테나 크기를 키웠다. 대중들은 “꺼내놓더라도, 수납공간에 맞춰 삐죽 솟은 안테나를 눕혀버리는” 형태로 맞받았다. 발상 전환이 필요했다.
■ “설문 조사로는 부족…300집 거실 실제 사진 받아 연구”
“저도 집을 고치면서 두꺼비집 가리개를 만들어 씌웠어요. 없앨 수 없으니까 가리는 데 중점을 두는 거죠. 그런데 멀티탭은 사각형이나 큐브(주사위) 형태로 예쁘게 해 놓으니까 소품처럼 내놓더라고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죠.”
내보이고 싶은 집에 어울리는 공유기는 뭘까. 광범위한 설문조사와 심층조사(FGI)로도 모자랐다. 연령대, 남녀 비율, 1인 가구부터 대가족에 이르는 가족 구성, 24평~34평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 주거환경까지 대한민국 인구분포에 맞춘 표본 가정 300곳을 선정해 직접 찍은 거실 사진을 받았다. 가구 배치, 티브이 장 색깔, 전체적인 집의 인테리어 선호 색상은 어떤 것인지도 물었다. 티브이 화면은 커졌지만 베젤(테두리 부분)이 얇아지면서, 제품을 올려뒀던 티브이 장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작은 집일수록 ‘화이트 인테리어’는 이미 대세였다. 이동식 티브이가 인기를 끌지만, 아직 실사용률은 5% 이하로 추산됐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로 꾸려진 케이티 디바이스본부가 이마를 맞대고 몇 가지 시안을 내놨다. 공유기를 책상이나 책장에 올려놓는 경우도 꽤 있어, 책이나 책꽂이(북엔드) 모양의 공유기도 초기 시안 중 하나였다. 최종 결정된 것이 휴대폰 케이스처럼 원하는 콘셉트에 맞춰 ‘커버’를 바꿔 끼울 수 있는 스탠드형 공유기 ‘케이티(KT) 와이파이 6디(Wifi 6D)’다. 안테나를 보이지 않게 기기 안으로 넣는 대신, 늘 세워져 있게 고정했다.
■ “검은 어댑터는 흰색, 파란색 랜선은 회색으로 바꿨다”
산업디자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커버 디자인을 공모해, 지난 7일까지 망원동에서 팝업스토어도 열었다. 지난 4일 기자가 찾은 팝업스토어는 ‘몽유도원도’를 연상케 하는 산수화 느낌의 커버나 현대 예술 분위기의 조형물 커버들로 인해 마치 전시회처럼 보였다. 커버를 활용해 연필꽂이, 시계, 책 모양, 액자, 선반, 동그란 벽걸이형, 램프 모양 등 다양한 형태를 선보였는데, 책꽂이형은 공유기인 걸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가죽, 대리석, 나무, 아크릴은 물론 라탄, 뜨개실 같은 다양한 텍스춰 커버도 전시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라탄 바구니 안에 공유기를 넣고 있더라’는 데 착안한 일종의 유머다. 이날 선보인 시안들 가운데 투표를 거쳐 반응이 좋은 제품은 상용화할 예정이다. 현재 제공되는 기본 커버는 테라조 톤의 흰색, 진회색 2가지다.
팝업스토어에서 만난 홍성무 케이티 디바이스본부 디자인 팀장은 “스티커로 마음껏 꾸밀 수 있게 기본 커버 재질에도 신경 썼다”며 “과거엔 한눈에 어느 회사 제품인지 알 수 있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중심에 뒀다면, 요즘 사용자들은 자신만의 콘셉트를 중시해 디자인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케이티는 단말기를 개발·검증하는 ‘디바이스 본부’가 이통 3사 가운데 유일하게 본부급 부서로 별도 존재한다. 디자인 부서가 사업 부문 여기저기 쪼개져 있지 않아 결정이 빠르다. 시제품을 임원 회의에 가져갔더니 “전선이 눈에 띈다”는 지적이 나와 어댑터와 랜 선 색깔까지 맞췄다. 공유기 설치 시 파란색 랜선 대신 회색 랜선을 제공한다. 현장에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있었지만, 지난 1월 정식 출시된 이 공유기는 독일의 레드닷과 일본 굿디자인 등 산업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정 상무는 “특히 일본 쪽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다음 프로젝트는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은 보급형 아이피 티브이 셋톱박스다. 셋톱박스 중 음성인식이 가능한 원통형 기기를 “공유기처럼 숨겨 두느라 쓰지 않는” 가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용 용도를 감지해 예를 들어 야구 시청 중이라면 영상 데이터에, 게임 중이라면 게임 데이터에 우선순위를 배분하는 인공지능 기능도 함께 연구 중이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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