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는지 아십니까?[EDITOR's LETTER]
“오늘은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 나온 대사입니다. 새 떼에 부딪혀 엔진이 파괴된 비행기를 허드슨강에 비상착륙시켜 탑승자 전원을 구조한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기장 체슬리 설렌버거의 관심은 단 하나 승객들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강에 비행기를 착륙시키는 결단을 하고 실행했습니다. 그는 승객과 승무원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끝까지 비행기에 남아 있었습니다.
물이 차오르고 있었지만 탈출하지 못한 승객이 있는지 확인하고 마지막에 구조됐습니다. 병원으로 이송된 후에도 승객들이 모두 안전한지를 물었습니다. 기장이라는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 설렌버거는 잘 알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155명의 목숨을 책임졌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 돌아가는 것을 보며 이 영화의 장면들을 생각했습니다. 각계각층 책임자들이 그 자리의 무게를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
헌법 1장 7조.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최고위직 공무원은 대통령입니다. 봉사와 책임이란 단어가 대통령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젊은이들이 서서 죽어간 후에도, 수재 현장에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해병대원의 죽음 앞에서도 진심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최근 느닷없이 들고 나온 동해 유전 사업을 놓고도 말들이 많습니다. 유전이 있다고 평가한 업체에 대해 대통령은 “세계 최고 수준의 회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흔한 홈페이지 하나 없는 1인 기업 수준이었습니다. 높지 않은 가능성만을 갖고 대통령이 직접 발표함으로써 온갖 억측만 낳게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말하면 대통령실이 해명하는 것은 어느새 관례가 돼버렸습니다. 대통령의 말은 일반 정치인의 말과 다릅니다. 공무원들은 이를 ‘하명’으로 받아들입니다.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장관을 거쳐 말단 공무원, 공기업 직원에게 이르러 과업이 됩니다. 그 자리와 말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국회의원들은 국민과의 약속은 팽개쳐 둔 채 여야로 갈라져 원구성을 하니 마니 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어떨까요. 과거 라면 상무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한 회사 임원이 기내에서 라면을 잘못 끓여왔다고 난동을 부려 기업의 평판을 훼손한 사건.
임원이 그럴진대 최고경영자라면, 또 오너라면 오죽하겠습니까. ‘오너 리스크’라는 어이없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유행한 지 10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충분히 학습이 됐을 만도 한데 그렇지도 않나 봅니다.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정치인과 소비자들을 적으로 만드는 경영자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비전은 보여주지 못한 채 기득권에 둘러싸여 이리 가지도 저리 가지도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영자들도 있습니다. 사생활과 이에 따른 재판으로 회사의 경영 기반 자체를 흔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은 책임지지 못하겠지만 삼성 식구들은 책임질 테니 믿고 따라와 달라.” 이 말을 상당 부분 실천했기에 삼성 직원들로부터 존경받은 것은 아닐까 합니다. 자신의 자리가 갖고 있는 무게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은 수많은 특전을 받습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에게 높은 연봉과 예우가 주어집니다. 또 조직을 맡은 임원과 팀장에게도 좋은 사무실 자리 또는 자동차가 지급됩니다.
진화론적으로 동물 집단에서 우두머리(알파)에게 주어진 특전과 비슷합니다. 알파는 가장 먼저 먹을 권리를 갖습니다. 집단이 위협에 처했을 때 영양상태가 좋은 알파가 무리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먼저 위험 속으로 달려들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알파는 짝도 가장 먼저 고릅니다. 집단을 보호하려다 죽을 경우 강한 유전자가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대가 없이 주어지는 특전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알파들에게 주어진 특전과 그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뭔가 불공정하게 교환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쓴 문구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왕이 되려는 자, 그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김용준 한경비즈니스편집장(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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