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지방도 들썩인다…경북·전남, 의대 유치에 총력
의대 없는 전남, 순천대-목포대 유치전 치열…국회의원까지 가세
“늘어난 의사, 지역에 남게 할 방법부터” 목소리도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27년 만에 시행된 의대 증원을 앞두고 지자체가 들썩이고 있다. '의대 열풍'이라는 강력한 변수를 교육·의료 인프라 구축으로 끌어들이고자 지방의 움직임이 빨라진 모습이다. 의대 지역인재전형 선발 규모 확대로 '지방 유학'이 현실화되면서 경북과 전남은 의대 유치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분주해진 지자체와 달리 현장 의료진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빈자리를 두고 한숨이 깊어졌다. 근본적인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선 전공의들의 복귀와 이들을 지역에 유치하기 위한 재정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에서 전국 40개 의대가 모집할 의대생은 총 4567명이다. 전년보다 1509명 늘어났다. 이 가운데 비수도권 26개 대학은 전년보다 약 두 배 많은 1913명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한다. 지역인재전형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며 지역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만 그 지역 의대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비수도권 의대 대부분이 해당 전형으로 모집인원의 60% 이상을 채운다. 의대를 노리고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이사하는 '지방유학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의 의료 개혁이 의대 증원 확정을 통해 박차를 가하자 의료 취약지에선 본격 '의대 신설'을 촉구했다. 의대와 대학병원을 신설해 지역의료 개선뿐만 아니라 임상과 바이오·메디컬 산업, 연관 병원 네트워크 등 지역활성화 사업을 육성할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곳이 경북이다. 경북도는 5월22일 2026학년도 의대 신설과 함께 포스텍 50명, 안동대 100명 정원을 요청했다. 현재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경북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1.4명으로 전국 평균(2.2명)보다 한참 낮은 최하위 수준이다. 경북도는 지역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해 경북도청 신도시에 안동대 국립의대 용지를 확보하고 안동병원과 의대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안동대 국립의대가 신설될 경우 지역인재전형 비율도 높이고 지역에서 10년간 근무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포스텍 의대는 의과학전문대학원 형태로 의사 과학자를 양성하고 500병상 이상의 스마트병원, 의과학 융합연구센터를 갖춘다는 구상이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농촌 지역에서도 안심하고 치료받기 위해서는 필수의료를 뒷받침할 지역 의대 신설이 필요하며 의대 증원 방향도 이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덕 포항시장도 "지역의료 현실의 획기적인 개선과 바이오헬스산업 육성을 위해 반드시 포스텍 의대가 신설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남권 의대 유치전에 국회의원까지 가세
전남도 의대 유치 총력전에 뛰어들었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전남은 그간 의대 유치를 도민의 숙원사업으로 여겨왔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정부의 의대 증원 확정에 환영의 뜻을 밝히며 "전남도 역시 정부의 의료 개혁 정책에 발맞춰 정부가 요청한 '전라남도 국립의과대학 설립'을 신속히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 지사는 6월5일 국립의대 설립과 관련해 "지난 30여 년간 대학이 신청해도 (해결)되지 않은 일이었기에 전남도가 핵심 목표로 내걸고 노력한 결과, 전남에 (의대를) 신설한다는 정부 방침을 얻어냈다"면서도 "전남에 국립의대 추진이 확정된 것이지, 마무리된 것이 아니므로 정치권과 도민의 총의를 모아 끝까지 쟁취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공모에 의한 추천 방식을 추진해 10월말이면 정부에 추천 대학을 보고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다만 의대 유치를 둘러싼 전남 동부권과 서부권 간 대립은 격화될 전망이다.
동부권 국회의원인 주철현(여수갑)·김문수(순천·광양·곡성·구례갑)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지난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순천대 의대 신설을 촉구했다. 이들은 "인구 등 의료 수요, 지리적 환경, 경제 산업 여건, 지역과 국가에 대한 기여도 등 객관적인 요소와 지표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국립의대와 대학병원을 동부권에 설립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전남도 주관 의대 신설 공모에 대해서는 "지역 의견수렴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공모 방식으로 결정한 것부터 문제"라며 "목포대 의대 신설을 전제로 한 수순이 아니라면 지역별 특성과 수요를 반영해 공정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부권에선 목포대 의대 유치를 요구했다. 22대 국회 개원 첫날인 지난달 30일 민주당 김원이 의원(목포)은 "목포대 의대 유치를 위해 보건복지위원으로 임명된 서미화 의원과 함께 끝까지 챙기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도 공모에 대해선 "순천이 저렇게 나오면(공모에 반대한다면) 김영록 전남지사가 공모를 철회하고 목포대를 지정해 주는 게 옳다"고 꼬집었다.
"의대생·전공의 복귀 불투명…이대로는 의료 퇴보" 우려 목소리도
한편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와 의대생의 빈자리로 인해 지역의료가 퇴보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1만3756명) 중 복귀한 전공의는 7.4%(1021명) 수준이다. 6월말로 예고된 의대생 집단 유급 마지노선도 임박한 상황이다. 지역의료 현장에 있는 의료진은 현재 상태에선 정부가 남은 의료 개혁 과제를 시행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김유일 전남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대로 간다면 의료 시스템은 오히려 수십 년 전으로 퇴보할 것"이라며 "난도 높은 질환 치료가 점차 어려워지면서 회피 가능 사망률이 상승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대생 집단 유급이 현실화하면 당장 배출될 전공의가 사라지고, 대학·수련병원의 의료 공백은 악화된다"면서 "결국 환자는 제때 치료받기 힘들어지고, 상급종합병원 관련 의료·보건 사업도 점차 위축되면서 지역의료의 의료 인력 수급에도 대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전문의를 추가 채용해 전공의 빈자리를 메울 가능성도 현재로선 미지수"라며 "(전문의) 채용 공고를 해도 지원자가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증원된 의사를 지역에 유치할 방법도 여전히 '빈칸' 상태다. 정부가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 지역인재전형 선발 비율은 높였으나 늘어난 의사가 지방에 남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는 "소위 '강남공화국'과 지방 소멸이 가속화한 상황에서 지역 의대에 입학해도 (의사가 되면) 결국 서울로 돌아간다"며 "국가가 지역 교육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짚었다.
이어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인턴·레지던트의 학비 전액 지원과 7~10년간 지역 의무 근무제 등 대책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며 "독일 등 의료 선진국처럼 국가가 책임지고 일정 부분을 투자한 후 향후 자유계약으로 전환하는 등 선진국들이 시행하는 표준 방식을 적용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목장이 좋아야 양이 몰리듯 전공의들이 근무하고 싶어 하는 의료 인프라를 먼저 형성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지역균형발전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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