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장에 맡기면 ’신계급사회’ 닥칠 수 있다
자율 방치하면 혜택 소수 집중
다수의 편이 되도록 정책 펴야
“넌 어느 편이야?”
지난해 개봉한 영화 ‘크리에이터’에서 주인공인 전직 특수부대 요원 조슈아를 향해 동료가 멱살을 잡고서 날리는 대사다. 인공지능(AI)에 맞서 싸우는 인간들끼리 다투는 장면에서다.
사실 ‘넌 어느 편이냐’는 이분법적 질문의 바탕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편이 될 수 있느냐는 ‘불안’이 깔렸다고 볼 수 있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숱한 영화나 과학(SF)소설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자들이 써내는 미래 보고서에도 비슷한 불안이 짙게 배어 있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편인가? 인간의 편으로 남더라도 소수의 편에 서지 않을까? 누가 이득을 보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또 누굴까?
이 질문들에는 인공지능이 초래할 미래의 불확실성이 내포돼 있다. 인공지능을 빼놓더라도 과학자들이 설정한 이른바 지구 종말 시계는 23시 58분 30초를 가리키고 있다. 핵폭탄과 기후위기로 종말 90초를 남겨두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지금 쏟아지는 인공지능에 의한 인류 멸망 시나리오를 보탠다면 남은 시간은 더 줄어들지 모른다.
그리 먼 미래가 아니더라도 당장 하루가 다르게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누군가는 그 효용성을 누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점점 그 위협을 느끼며 산다. 인공지능의 부정적 영향을 피부로 느끼는 적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통번역 업종 종사자도 있다. 심심치 않게 인공지능의 발달로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으로 꼽힌다.
10년 넘게 통번역 업체를 운영해온 ㅊ씨가 느끼는 위기감은 꽤 크다. 이미 그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매출이 20억 원 넘지만 인공지능 번역 서비스의 질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일감이 줄고 있단다. 의사소통만 되는 자리나 완성도가 높지 않은 통번역 서비스에서부터 수요가 사라지고 있다. 나름 인공지능 번역과 관련된 유료 서비스도 제공하면서 변화에 적응하려 애쓰지만 불안을 떨칠 수 없다. 지난 5일 그는 ‘한겨레’에 “얼마 전까지 긍정이 80%이었는데 이제는 긍정과 부정이 반반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날이 갈수록 인공지능의 영향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는 “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최소한 3년은 높은 레벨(통번역 수준)은 영향이 없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 뒤는 그도 장담하지 못했다.
구글, 파파고, 챗지피티(GPT) 등과 함께 통번역사를 위협하는 앱 가운데 하나인 딥엘(DeepL)은 지난해 1300억 원이 넘는 투자금을 받았다. 지난달에는 4천억 원이 넘는 추가 투자를 받았다. 독일 쾰른에 본사를 둔 이 기업의 가치는 현재 2조8천억 원에 이른다. 2017년 8월에 출시된 딥엘은 32개 언어 간 서비스를 제공한다. 투자금은 번역의 완성도와 서비스 언어를 넓혀 93조 원에 이르는 언어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데 쓰일 것이다. 딥엘 유료 서비스의 경우 최소 월 2만4천 원부터 이용할 수 있다.
번역 시간을 90% 이상 단축했다는 딥엘은 ‘매일 수백만 명이 딥엘로 번역한다’고 광고하는데, 그 숫자가 늘수록 번역사의 수는 줄어든다. 일부는 인공지능을 ’보완재’로 쓰면서 번역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겠지만 다수는 일감과 소득이 줄어 업계를 떠날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겉보기와 달리 소득이 높지 않으면서 프리랜서 형태의 불안정한 일자리가 대부분인 번역 업종에 인공지능은 가시적 위협이다.
반대로 딥엘의 창업자와 투자자, 개발자는 경쟁의 압력을 받겠지만 인공지능의 선두 주자로서 혜택을 누리는 계층이다. 이들 소수의 소득과 부는 앱 이용자 수 증가와 더불어 늘어날 것이다. 전체 노동시장으로 확장하면 인공지능이 불평등을 심화하는 메커니즘이 딱 이와 같다.
인공지능이 어떤 일자리를 얼마나 많이 대체할지 아니면 보완할지에 따라 불평등 지형도는 달라진다.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일자리가 많을수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다. 이미 통번역과 함께 헬스케어(건강관리), 모빌리티(이동 수단 관련 서비스) 산업 등을 중심으로 인공지능이 빠르게 사람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 극단적 예측이 바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거의 모든 일자리를 대체하는 ‘신 계급사회’의 도래다. 지난 2017년 유기윤 서울대 교수(건설환경공학) 연구팀은 2090년 미래에 계급을 나누는 잣대가 전문성, 학력, 신체 능력이 아닌 인공지능 플랫폼(정보형 기업)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시뮬레이션 결과 플랫폼 소유주가 최상위 1계급이 된다. 인공지능은 이들 소수의 편이다. 플랫폼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정치 엘리트와 예체능 스타, 소수의 창의적 전문가 등 플랫폼 스타가 2계급이다. 그리고 ’프레카리아트’(불안정을 뜻하는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합성어로 비정규직, 파견직 등 불안정 노동자를 일컫는 말)로 불리는 나머지 시민들이 플랫폼에 접속해 프리랜서처럼 살아간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은 4계급이다. 3계급은 인간이 아닌 사회 전반의 일자리를 대체한 인공지능이다. 위에서 예로 든 통번역만이 아니라 인공지능에 거의 모든 일자리를 빼앗긴 채 인간의 노동이 가치를 상실하거나 낮은 가치가 매겨지는 매우 불평등한 풍경이다.
이보다 단기이자, 저강도의 예측이 더 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월 펴낸 보고서에서 “인공지능이 세계 경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예정”이라면서 전 세계 일자리의 40%가 인공지능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노출이 곧 일자리의 소멸이나 부정적 영향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노출도가 높아 선진국의 경우 60%에 이르지만 그 가운데 절반은 부정적 영향을 나머지 절반은 생산성 향상의 이점을 누릴 것으로 예측했다. 노출도로만 보면 기존 기술과 달리 고숙련, 고임금 노동이 인공지능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인공지능이 소득과 불평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면서도 결론은 유보적이었다. 그 핵심 변수는 인공지능이 고소득 노동자를 얼마나 대체할지 아니면 보완할지에 달렸다.
숙련도 높은 고소득 노동자를 보완하는 정도가 클수록 불평등은 악화한다. 상대적으로 숙련도 낮은 저임금 노동자와 격차가 더 커지는 탓이다. 이는 ‘기술의 숙련 편향성’으로 설명된다. 기술의 발달이 전문 지식을 지닌 숙련노동의 수요와 임금을 상대적으로 증가시켜 일자리의 양극화가 진행된다는 이론이다. 실제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지난 수십 년간 기술은 발달했지만 임금 소득의 불평등은 되레 커졌다.
불평등은 생산성 향상의 혜택이 어떻게 배분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으로 높아진 생산성의 혜택이 많은 계층에 고루 돌아간다면 불평등은 악화하지 않거나 세상은 보다 평등해진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발달이 주로 중하위 계층의 일자리를 뺏거나 부자에게 혜택이 집중된다면 불평등은 커진다.
인공지능이 불러올 소득 분배의 변화는 대체로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딥러닝(심층 학습) 기술의 창시자이자 ‘인공지능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지난달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부자의 편’에 설 것으로 확신했다. 인공지능이 향상한 생산성과 부는 주로 부유층에 돌아갈 것으로 내다봤다.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스티븐 호킹도 몇 년 전 비슷한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기계로 생산된 부를 공유하면 누구나 풍요로운 여가 생활을 누릴 수 있지만 기계 소유주가 부의 재분배에 반대하는 로비에 성공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비참하게 가난해질 수 있다. 지금까지 추세는 기술이 점점 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두 번째 옵션(불평등 심화)을 향해 가고 있는 것 같다.” (2015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세계적 과학소설 작가 테드 창은 이를 명쾌하게 정리한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속성과 결부해 인공지능에 주목한다. 오는 12일 한겨레가 개최하는 사람과 디지털포럼에 연사로 참석하는 그는 앞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너무 많은 경영진이 인건비를 줄이려 인공지능을 쓴다”며 “인공지능이 ‘자본주의의 칼날’을 더 날카롭게 하는 칼갈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인공지능이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한 자본의 도구로 쓰인다면 불평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 많은 전문가는 자본이 노동의 수요를 줄이는 쪽으로 인공지능의 활용 폭을 넓혀나갈 것을 우려한다. 자유롭게 시장에 내맡긴다면 인공지능으로 창출된 이익 또한 소수에 귀착되는 구조다. 이미 인공지능 개발은 미국 중심의 선진국, 그 안에서도 자본력을 갖춘 소수의 ‘빅 테크’(거대 기술)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국제결제은행(BIS)은 인공지능이 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매우 구체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내놨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86개국의 패널(동일 집단을 일정 주기로 조사)을 갖고서 분석한 보고서는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가 상위 10분위(소득 크기에 따라 줄 세워 열 구간으로 나눴을 때 최상위) 가구의 실질 소득 및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증가시켰다고 밝혔다. 반면 하위 1분위 가구의 소득 및 소득 점유율은 감소했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기술의 숙련 편향성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인공지능은 생산성을 높이지만 전체적으로 고용을 위축시켰다. 전체 국민소득 중 인공지능의 개발과 활용을 주도하는 자본의 몫을 키우고 반대로 노동의 몫은 줄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인공지능으로 어느 정도 생산성이 향상된다 하더라도 그 혜택은 불균등하게 배분될 것을 보여준다.
다만 보고서는 “장기적인 영향 대부분은 공공 정책에 달렸다”고 끝맺는다. 결국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이 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인공지능이 미래의 일부 그 가운데서도 일자리와 불평등에 미칠 영향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바꿔나갈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합의의 내용 곧 대안으로 힌턴 교수는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소득을 지급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을,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는 인공지능에 대한 과세를 제시했다. 두 사람 다 인공지능이 불평등을 악화시킬 것으로 봤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도 이들처럼 비관적이다. 다만 그는 지난해 미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 한 인터뷰에서 “올바른 정책을 편다면 생산성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여 모두가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치가 작동해온 방식 즉 정치경제학은 그런 방향으로 오지 않았다…우리가 (인공지능) 정책 영역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지, 그게 더 문제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우리의 정책적 선택이고, 정치란 메시지다.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민주주의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인공지능이 ‘딥 페이크’(진짜 같은 가짜 정보)와 같은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과 별개로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그로 인해 약해진 민주주의가 다시 불평등을 해소할 힘을 잃게 되는 악순환을 맞이할 수 있다. 미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 3월 “인공지능으로 인한 대규모 실직과 같은 경제적 충격이 발생하면 그(민주주의 약화와 불평등 증가의 악순환)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며 “그 결과 소득 격차가 극심해지고 일반 시민의 목소리가 약화하는 새로운 사회 전반의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곳에서 우리에게 낯익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서울대 유기윤 교수팀이 예측한 신 계급사회와 비슷한 미래를 마주할지 모른다.
인공지능 시대를 막 맞이한 지금 인공지능을 사람의 편, 또 소수가 아닌 다수의 편이 될 수 있도록 규제해나가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선택에 달렸다. 하지만 나중에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때가 올지 모른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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