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못 갚는 자영업자, 11년 만에 최대…2023년 91만명 폐업 外 [한강로 경제브리핑]

안승진 2024. 6. 1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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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고물가 장기화에 경기까지 침체되면서 자영업자(개인사업자)의 은행권 대출 연체율이 약 1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축은행 등 제2 금융권의 건전성 관리에 따라 서민들의 자금줄이 막히면서 결국 폐업을 선택하는 자영업자도 늘었다.

◆ 고금리에 벼랑 끝 내몰린 자영업자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54%로, 2012년 4분기(0.64%) 이후 가장 높았다. 직전인 2023년 4분기(0.48%)보다 0.06%포인트 상승했고, 저점이었던 2021년 4분기(0.16%보다)보다는 3배 넘게 뛰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금리·고물가에 개인사업자들 사정이 어렵다는 것은 다들 피부로 느끼는 건데, 이에 더해 빚을 못 갚을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문제”라고 우려했다.
9일 서울 시내 한 폐업 상점에 각종 고지서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은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대비 50.8%(374조원) 증가하는 등 계속 불어나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5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324조1071억원으로 전년 동기(315조753억원) 대비 9조318억원(2.87%) 증가했다. 올해 들어 5개월간 4조6135억원이 늘었다.

전 금융권으로 확대하면 대출 규모는 훨씬 커진다. 

나이스평가정보가 21대 국회에서 당시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했던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개인사업자 335만9590명이 보유한 대출(가계·사업자 대출)은 모두 1112조7400억원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직전이던 2019년 말(209만7221명, 738조600억원)과 비교하면 차주 수는 60%, 대출금액은 51%나 각각 늘었다.

자영업자들의 연체율이 늘자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금융기관들은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저축은행의 올해 1분기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18조4000억원으로 전년(약 23조4200억원) 대비 5조원가량(21%) 감소했다. 특히 신용점수가 501∼600점으로 낮은 저신용자를 상대로 민간 중금리 대출을 취급한 저축은행 수는 1분기에 11개사에 그쳐 지난해 1분기보다 6곳이나 줄었다. 같은 기간 500점 이하 저신용자에게 민간 중금리 대출을 취급한 저축은행은 4곳에서 0곳으로 아예 사라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업계 1위마저 적자 전환하고 연체율도 급등한 상황이어서 저신용자 여신을 축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경기침체 속에 자영업자들의 소득 기반이 무너져 빚 상환능력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자영업자 경기의 선행지표로 꼽히는 카드 매출의 감소폭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IBK기업은행 집계에 따르면 개인사업자 평균 카드 매출은 작년 말 기준 전년 동기 대비 6.4% 줄어 코로나19 이후 최대 수준의 감소폭을 기록했다.

매출 하락을 빚으로도 막지 못한 채 무너지는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지난해 개인사업자 폐업률은 9.5%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높아졌고, 폐업자 수는 91만1000명으로 전년 대비 11만1000명 늘었다. 핀테크 기업 핀다의 상권 분석 플랫폼(오픈업)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외식업체는 17만6258개로 전체의 21.52%에 달했다. 코로나 때인 2020년(13.41%)보다 8.11%포인트 높은 수치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말 서민·자영업자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한 뒤 매주 회의를 열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이 폐업하려고 해도 시작할 때 인테리어 등을 했으면 원상복구 등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불만이 있다”면서 “관계부처와 협의해 폐업지원 방안 등도 고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식량 가격은 석 달째 상승

세계식량가격이 석 달째 상승세를 기록했다. 특히 밀, 옥수수 등 곡물 가격의 상승폭이 컸다. 곡물가격 상승은 수입가격으로 이어져 국내 물가에도 상방압력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0.4로 전월보다 0.9% 올랐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올해 1월 117.7에서 2월 117.4로 하락했다가 3월 119.0, 4월 119.3, 지난달 120.4로 세 달 연속 상승했다. FAO는 곡물·유지류·육류·유제품·설탕 등 5개 품목군별로 식량가격지수를 매월 집계해 발표한다. 지수는 2014∼2016년 평균 가격을 100으로 두고 비교해 나타낸 수치다.

품목군별로 보면 곡물 가격지수가 118.7로, 전월 대비 6.3% 상승했다. 곡물 중에서는 특히 밀 가격이 크게 올랐다. 올해 주요 수출국에서 작황 부진이 우려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흑해 지역 항구 시설이 파손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9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밀가루. 연합뉴스
옥수수의 경우 아르헨티나의 병충해 발생, 브라질의 기상 악화 여파에 가격이 상승했다. 국제 쌀 가격은 인도네시아, 브라질에서 수입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승했다.

유제품 가격지수는 126.0으로, 1.8% 올랐다. 오세아니아에서 계절적 요인으로 우유 생산이 줄었고, 서유럽에서도 생산량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서유럽에서는 유제품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라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중동과 북미 지역에서 수요가 증가한 것도 유제품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설탕의 경우 브라질에서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수출 여력이 높아지면서 가격지수가 117.1로 7.5% 하락했다. 국제 원유가격 하락도 설탕 가격 하락에 영향을 줬다. 유지류 가격지수는 127.8로, 2.4% 내렸다.

대두유, 유채씨유, 해바라기씨유 가격은 올랐지만, 팜유 가격이 크게 떨어져 전체 유지류 가격이 하락했다. 팜유 가격 하락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계절적 요인으로 생산량이 늘었으나 국제 수입 수요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대두유 가격은 브라질의 바이오연료용 수요 증가로 인해 상승했다. 해바라기씨유는 흑해 지역에서 계절적 요인으로 수출이 감소해 가격이 올랐고, 유채씨유는 공급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가격이 상승했다.

육류 가격지수는 116.6으로, 0.2% 하락했다. 가금육은 주요 생산국의 내수 위축으로 가격이 떨어졌고 소고기 가격은 수입 수요 둔화와 오세아니아 국가의 수출 가능 물량 확대로 인해 하락했다. 돼지고기 가격은 수요 회복과 공급량 부족으로 인해 상승했다.

◆ 부동산·건설업의 재무 건전성,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

최근 부동산·건설업의 재무 건전성이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보다도 나빠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현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발표한 ‘국내 부동산 및 건설업 재무 건전성 점검’ 보고서에서 상환능력이 취약한 기업이 보유한 대출금 비중은 부동산업과 건설업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2009년), 코로나19 팬데믹(2020년) 당시보다 높았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 연합뉴스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 못하는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총이자비용) 1 미만 기업의 대출금 비중은 지난해 말 현재 부동산과 건설업이 각각 44.2%, 46.6%이다.

부채비율(부채/자본·중간값 기준)이 200%를 초과해 상환능력이 취약한 기업의 비중도 부동산업이 63.0%, 건설업이 49.7%에 달했다.

김 연구위원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업과 건설업에 대한 신용 공급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재무 건전성 수준이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대 초반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악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부동산 경기 둔화가 지속될 경우 취약 기업의 연체율이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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