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돈이면 일본"…'피크아웃' 제주, 생산·소비·인구 다 줄었다[르포]
가격 저항성 높아지고 관광지 '낯선' 매력은 감소
“주말인데 동문시장에 사람이 없네요?”
“요즘 이 정도면 많은 거야.”
지난 6월 1일 찾은 제주도 동문시장. 토요일 저녁을 앞둔 시간이었지만 한산해 보였다. 활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산물 점포에서 일하는 양모 씨는 갈치를 손질하며 “작년 5월 말부터 동문시장을 찾는 손님이 확 줄었고 올해는 유독 장사가 안된다”고 했다.
동문시장은 제주도의 대표적 관광명소다. 이전 몇 번 왔을 때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내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영향일까, 시장 길목을 메웠던 방문객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제주를 찾은 내국인은 384만5463명. 작년보다 36만8000명가량 줄었다. 이들은 대부분 일본이나 대만 등으로 방향을 틀었을 것으로 현지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더 이상 제주도가 최선호 관광지가 아닌 셈이다.
물론 내국인 관광객의 공백을 외국인이 채워주고 있다. 4월까지 외국인 관광객은 54만392명이 제주에 들어왔다. 전년 동기 대비 439% 늘었다.
하지만 이들의 씀씀이는 짜졌다. 제주도가 1~4월 제주 방문 관광객의 신용카드 사용액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4개월간 제주에서 신용카드(신한카드)로 결제한 금액은 1조862억 2200만원으로 지난해 1조480억9000만원보다 3.6% 상당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내국인은 약 8978억원을 써 지난해(약 9440억원)보다 감소했고 외국인이 약 1883억원으로 전년(약 1040억원)보다 80.9% 증가했다.
전체 소비액은 늘었지만 1인당 지출 규모는 오히려 3분의 1로 크게 줄었다.
1~4월 외국인 1인당 신용카드 지출액은 34만8000원으로, 지난해 103만8000원의 34% 수준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를 찾는 내국인 여행객이 감소하고 외국인 여행객들의 지갑은 얇아지면서 1분기까지 제주도 소매판매액지수는 4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자유여행객을 대상으로 택시투어를 하는 김모 씨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오히려 제주도 수요가 폭발하며 매주 국내 관광객, 골프 내장객들 예약이 끊이지 않았다"며 "최근에는 일본이나 동남아로 한국인이 빠지면서 국내 관광객 예약이 크게 줄었고 젊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패키지가 아닌 개별로 여행을 와 카지노나 면세점보다는 맛집이나 카페를 찾아다니면서 소비가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카페거리도 골프장도 안 가요”…
‘그 돈이면’ 일본 간다는 관광객들
제주 골프장 내장객은 2021년 288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뒤 2022년 말 해외 여행길이 열리면서 지난해 241만 명으로 뚝 떨어졌다. 올해는 하락세가 더 가파를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1분기 제주 전체 골프장 내장객은 40만6728명으로 작년 대비 12.3% 감소했다.
제주도에서 가장 핫한 관광지인 애월 카페거리도 정적이 흐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아기자기한 카페가 몰려 있고 한담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애월 카페거리는 늘 관광객이 붐비고 주차난에 시달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난 2일 찾은 애월 카페거리 주차장은 곳곳이 비어 있었다.
카페 불황은 예고된 것이었다. 제주가 뜬다고 우후죽순 생겨난 카페가 내국인 관광객 감소로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제주에서 폐업한 카페는 252곳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숙박업소도 마찬가지다. 제주에서 고급 펜션 2곳을 운영하던 지모 씨는 최근 한 곳을 정리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두 곳의 예약률이 80% 이상이었지만 최근에는 방문객 수가 30%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팬데믹 당시 제주 관광 수요가 급증하면서 인근에도 비슷한 펜션이 문을 열며 경쟁이 심화했고 최근에는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줄다 보니 호텔들도 점점 숙박비를 낮추면서 펜션의 가격 조정이 불가피해 수익이 예전처럼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관광 1번지’ 제주의 위상이 흔들린 건 코로나19로 해외 여행길이 열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흑돼지 비계 삼겹살 논란부터 통갈치 요리를 먹는데 16만원이 나왔다는 글이 소셜미디어에 제주 물가 관련 게시물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2박 3일 투숙한 여행자에게 전기료 36만원을 청구한 어느 에어비앤비 숙소까지 논란이 되면서 제주도에는 새로운 수식어가 생겼다. ‘그돈씨(그 돈이면 더 보태서 다른 거 한다는 뜻의 신조어)’다. 제주도를 주제로 한 기사에는 “그 돈이면 제주도 대신 동남아나 일본을 가지”라는 댓글이 단골로 달린다.
빈말이 아니다. 실제 여행 수요는 폭발했는데 제주도를 찾는 여행객은 줄었다. 내국인 출국자 수는 2022년 655만 명에서 지난해 2272만 명으로 246.6%나 증가했다. 올해 1분기는 742만 명이 출국하며 전기 대비 13.9% 늘었다. 제주도를 방문하는 내국인 관광객이 1분기 10% 감소한 것과는 반대다.
해외여행이 증가하자 항공사들은 제주행 항공편을 줄였다. 한국공항공사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제주∼김포 항공노선 편수는 6만1096편으로 집계됐다.
팬데믹으로 특수를 누렸던 2022년 같은 기간의 7만3111편보다 1만2015편(16.4%) 감소한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국제선 운항은 1285편에서 4658편으로 3.6배 증가했다.
생산·소비·인구 다 줄었다…
서비스 생산 전국 유일 ‘마이너스’
관광 수요가 급감한 것만 문제가 아니다. 제주도를 이루는 표면적인 경제지표가 동시에 빨간불이 켜졌다. 1분기 제주도의 생산, 소비, 인구가 모두 줄었다. 통계청 제주사무소가 발표한 1분기 제주 지역경제동향에 따르면 제주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비스업 생산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광공업(4.7%)과 서비스업(3%) 생산은 동시 감소했다.
소비는 1.8% 줄었고 관광업 성장세가 둔화하는 와중에 건설수주는 43% 급감하며 지역경제가 타격을 입었다.
이 와중에 물가는 꾸준히 올랐다. 1분기 제주지역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2.3% 상승했다. 2022년 매 분기 5~6%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던 제주는 지난해 2분기부터 2%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며 상승폭은 안정화됐지만 이미 물가가 오를 대로 올랐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진수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제주 관광 성장세가 둔화된 가장 큰 요인은 관광객들의 ‘가격 저항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관광 인프라 측면에서 비행기 운항 편수가 줄면서 제주까지 가는 항공료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고 안에서 렌터카나 택시 이용에 따른 지출, 먹거리 물가가 비싼 와중에 중간 허리 규모에 해당하는 숙박시설은 부족해서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광, 소비, 생산이 모두 줄자 문을 닫는 자영업자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제주지역 외식업 폐업률은 전국에서 가장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핀테크 업체 핀다의 빅데이터 상권분석 플랫폼 ‘오픈업’에 따르면 제주지역 지난해 폐업률은 20.9%로 2020년 폐업률 10.8%보다 2배가량 뛰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보다 더 많은 식당, 카페가 폐업했다는 얘기다. 오픈업 조사는 외식업체가 당국에 폐업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전년에 매출이 있던 업체가 1년간 매출이 없는 경우 폐업으로 분류한다.
관광 수요와 경기 활력이 떨어지면서 외식업체가 직격탄를 맞았고 도내 주민들 역시 고물가와 고금리 영향으로 가계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외식업체의 경영 악화로 이어진 것이다.
경기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경영안정자금을 신청한 제주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1년 전보다 61% 증가했다.
제주 관광업계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제주도는 제주지사와 민간위원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제주관광 혁신 비상대책위원회’를 최근 구성했다.
제주 여행객의 만족도 향상과 여행 품질관리를 위해 ‘제주관광서비스센터’(가칭)도 설치된다.
고물가와 관련해 제주도는 빅데이터 기반 관광 물가지수 개발과 관광 상품 및 서비스 실태조사도 실시할 예정이다.
제주 인구 14년 만에 처음 감소
제주가 더 이상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인 관광지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하늘길이 막히면서 관광 수요가 제주로 몰렸고 2022년 한 해에만 내국인 1380만 명이 제주를 찾았다.
제주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이미 코로나19 팬데믹 때 올 사람은 다 와서 제주 대신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겠냐”고 했다.
울창한 숲 오름, 지역마다 색이 다른 바다, 특색 있는 카페, 맛집 등 제주에 다양한 관광 콘텐츠가 있지만 젊은이들이 매년 다시 찾고 싶은 관광지가 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높은 물가는 저항선이 되고, 일본이나 동남아시아 등의 ‘낯선 대체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낯설다는 의미는 새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주가 새롭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삼다도’라는 말도 나온다. 돌, 바람, 여자가 많아 삼다도라고 했지만 요즘 뜻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제주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최모 씨는 “최근 제주도에서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가게가 다이소, 김밥집, 해장국집이라는 말이 있다”며 “유명한 김밥집, 해장국집이 성공을 거두면 이를 따라하는 가게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색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특색 없는 맛집,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힙한 카페와 베이커리, 이미 익숙해진 제주의 자연만으로는 재방문 여행지가 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난해 제주가 관광만족도 4위로 떨어진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서울에서 애월을 찾아왔다는 정소임 씨는 “이미 몇 년에 걸쳐 제주 동쪽과 서쪽, 서귀포를 구석구석 돌았다”며 “한담해변처럼 상업화되고 특색을 잃은 동네는 이제 젊은 세대보다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것 같고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2030은 오히려 고내리나 평대리처럼 아직 조용한 제주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만 찾아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제주 라이프’를 꿈꾸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도 제주의 매력이 줄었다는 방증이다. ‘한 달 살기’, ‘제주살이’를 꿈꾸며 입도했던 청년들이 빠른 속도로 제주를 떠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1분기에만 인구 1678명이 순유출됐다. 1분기 제주 인구 유출은 지난 한 해 전체 수치와 비등한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청년층의 유출이 눈에 띈다.
1분기 제주에서 빠져나간 1678명 중 20대가 955명으로 가장 많았고 10대는 506명으로 뒤를 이었다. 제주시 노형동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제주 국제학교 인기가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면서 10대와 20대가 많이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제주는 이주 열풍에 힘입어 2016년 전입 인구가 10만6825명으로 급증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전입에서 전출을 뺀 순유입 인구는 2016년 1만4632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반면 각종 개발의 후폭풍으로 물가와 집값이 오르는 등 정주 여건이 악화되면서 지난해 인구가 순유출로 돌아섰다. 제주 인구가 줄어든 것은 14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발표한 ‘제주지역 청년인구 순유출 요인 및 시사점’을 보면 청년 이탈의 이유를 알 수 있다. 한국은행은 저임금 등 열약한 근로환경과 높은 생활물가, 주거비용 부담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청년들의 자영업 업황 불황도 요인 중 하나였다.
청년들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배수(PIR)가 제주는 7.9배로 전국 평균 6.4배를 웃돌았다. 외식비와 서비스 가중평균 가격도 각각 10만원과 13만원으로 서울 다음으로 높았다. 반면 소득은 청년 상용근로자를 기준으로 전국 평균 301만원에 한참 못 미치는 276만 원에 머물렀다. 임시근로자는 138만원으로 전국 평균 163만원과 격차가 더 벌어졌다.
내국인 관광객 및 인구 감소, 서비스 생산 위축 등으로 제주가 정점을 지났다는 ‘제주 피크아웃(peak out)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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