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청룡(靑龍)마을에는 여의주 대신 유자 든 ‘유자여왕’ 있다
유자 30개 꽉 채운 음료 ‘유자블라썸’으로 고향 마을 활기
[편집자주] 당찬 매력을 지닌 여성. 우리는 '걸크러시'라 부른다. 연예계뿐만 아니라 농촌에 부는 걸크러시 바람도 강력하다. 뉴스1과 전남도농업기술원이 공동으로 이들 여성농업인들의 성공사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농촌 걸크러시'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완도=뉴스1) 서충섭 기자 = "평균연령 68세인 제 고향 완도 청룡마을이 유자로 다시 활기를 되찾도록 남은 청춘을 바치려고요."
해상왕 장보고가 중국에서 들여왔다던 유자는 해상왕의 활동 영역을 따라 남해안 일대를 주산지로 한다.
전남 고흥·경남 거제와 더불어 유명한 전남 완도 유자를 알리려 방방곡곡 찾아가는 '유자 여왕'이 있다.
전남 완도 고금도 청룡(靑龍)마을에서 유자가공업체 유자발전소를 운영하는 오진영 대표(46·여)다.
9920㎡(3000여 평) 유자밭에서 직접 수확한 유자로 음료 베이스 '유자블라썸' 시리즈를 생산하고 있다. 손과 팔은 유자나무의 억센 가시에 긁힌 자국이 무수하지만 '영광의 상처'라며 허허 웃는 오 대표다.
지금은 설익어 새파란 유자는 남해의 해풍을 잔뜩 머금고 겨울이면 노랗게 익어 마을 주민들의 수익원이자, '유자블라썸'의 재료로 쓰인다.
전체 70가구 중 50가구 넘게 유자나무를 키우는 청룡마을의 '여의주'인 유자는 그동안 생산량의 90%를 타지역으로 판매됐다.
완도 내 가공시설이 부족한 탓에, 농민들은 힘들여 키운 유자를 헐값에 떠나보냈다. 유자 가공식품도 '유자청'이 고작이던 시절이다.
어릴 적 부모님을 도와 유자청을 팔던 오 대표는 고향을 떠나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 서울에서 직원 300명이 넘는 IT업체에서 재직하며 청춘의 절반을 보냈다.
부모님을 모시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 공학도는 컴퓨터 대신 유자에 남은 청춘을 바치기로 다짐한다. 유자발전소를 설립해 제품 개발에 골몰하다 일본에서 유자 음료를 맛보고 도전 정신이 발동, 유자 베이스 생산에 착수했다.
공학도다운 세심함과 고집은 유자 음료 개발에서도 이어졌다. 최적의 맛을 찾으려 착즙기를 종류별로 구해 일일이 시험을 거듭하며 원료 손실을 최소화하는 제품을 선택했다.
껍질과 씨의 잡맛 대신 순수한 과육의 맛을 얻으려 열매 한 개에 15%만 착즙했다. 2년간의 무수한 연구 끝에 유자 30개의 과즙을 담은 '유자블라썸'이 탄생했다.
뒤이어 유자에 레몬, 생강, 감귤을 섞은 후속 신제품들도 연달아 선보였다.
물과 탄산수에 타거나 샐러드 드레싱, 하이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자블라썸은 2000여 명의 고정 고객을 확보했고 호텔 레스토랑과 바리스타 학원, 전국 80곳이 넘는 카페에 에이드용 재료로 납품된다.
유자발전소의 인스타그램에서는 '유블리'를 자처하는 유자블라썸 팬들이 신제품 소식과 현지 방문 판매를 손꼽아 기다리며 호응한다.
오 대표도 벌써 7년째 '보부상 마켓'이라는 국내 3대 플리마켓 행사에 참여, 전국 방방곡곡의 유블리들을 만난다.
유자 공급을 위해 농사도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평균 연령 68세'인 청룡마을의 유자 농가 선배들을 직접 찾아가 어르신들에게 직접 배웠다.
마을 선배님들은 "유자로 마을 한번 잘 살려보고 싶다"는 젊은이에게 자신이 아는 지혜를 아낌없이 베풀었다. 오 대표도 자신의 사무실에서 지역민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활동 행사를 마련하며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해외 진출도 시도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전남 농업기술원과 완도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칭다오'의 고장 중국 청도에서 전남 농식품 현지 판촉에 나섰다.
유자 음료와 함께 유자 콜라겐 스틱 상품을 새로 선보이며 중국 현지 입맛을 사로잡으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출 예정이다.
어느덧 유자 산업을 시작한 지 10년, 지역사회 함께하며 고향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오 대표의 다음 목표는 마을 활성화다.
마을의 '반장'을 자처하는 그는 고령화로 점차 예전의 활기를 잃어가는 고향이 안타깝다고 했다. 다양한 체험 활동과 관광 상품으로 사람들이 다시 찾는 완도 청룡마을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각오다.
오 대표는 "귀농할 때 받았던 소중한 도움을 다시 마을 선배님들과 후배들에 돌려주고 싶다"면서 "청룡마을이 다시 비상하도록 여의주 대신 유자를 들고 마을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겠다"고 말했다.
zorba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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