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물가 고강도 관리에 식품·외식업계만 '냉가슴'
업계 "자동차·전자 등 큰 산업은 놔두고 식품만 옥죈다" 볼멘소리
정부 "기업 폭리 방치 안 돼…국민부담 고려해 천천히 인상 관리 지속"
전문가 "올려야 할 기업은 올리게 하되 분위기 편승 얌체 기업 선별 관리"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고물가 속에 지난해부터 이어진 정부의 먹거리 물가 고강도 관리가 총선 이후에도 계속되면서 원부자재, 인건비 등 부담에도 가격 인상을 미뤄오던 기업들이 속앓이하고 있다.
이들 기업 중에는 제품 가격 인상안을 발표했다가 시기를 한 두차례씩 늦춘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업체들은 "자유시장경제에서 말도 안 되는 일", "업종별 형평성이 어긋난다" 등의 불만을 쏟아내면서 2년째 가격 인상을 자제하다 보니 어려움이 가중된다고 하소연했다.
반면 정부는 고물가에 국민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가격을 불필요하게 올려 기업만 폭리를 취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며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 관리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추후 통제가 풀리면 물가 부담이 일시적으로 커질 수 있다며 인상이 필요한 제품 가격은 올리도록 하고 불필요하게 가격 인상 분위기에 편승하는 얌체 기업들을 선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식품·외식업계 "물가관리 피로…자동차·전자 등 큰 산업과 형평성 어긋나"
특히 식품·외식업계는 정부의 물가 관리가 2년째 이어지다 보니 눈치 보기에 피로감이 높다고 토로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10일 "정부가 가격 인상을 어느 정도 조절하거나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는 수준"이라면서 "1년 사이 정부가 대표이사들을 두세번 불렀는데 이런 적이 없었다. 실무 국장, 과장이 아니라 장관, 차관이 나서는 것은 너무 과하다"라고 비판했다.
다른 관계자도 "경제가 힘들어 그런지 정부 관여가 전보다 높고 간담회도 빈번하게 한다"면서 "정부가 협조를 구하는 형태긴 하지만 기업은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물가 관리를 위해 기업 관계자를 직접 만나고 있다.
송 장관은 지난 5일 서울의 한 롯데리아 매장을 찾아 외식업계에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적극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송 장관은 지난달 16일 외식업계·소상공인 간담회도 열었다. 올해 앞서 피자업체 본사와 제분업체 공장을 각각 방문하기도 했다.
송 장관이 올해 물가 현장을 방문한 것은 마흔일곱(47)차례에 이른다.
식품·외식 업계에서는 또 물가 관리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한다. 식품·외식 산업만 유독 강하게 옥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자동차 같은 큰 산업을 압박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서민 생활에 밀접하다는 이유로 힘없는 식음료 업체만 쥐어짜는 것 아닌가. 식품기업은 연 매출이 1조원도 안 되거나 많아 봐야 4조∼5조원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 현대차의 국내 승용차 평균 판매가격은 올해 1분기 5천319만원으로 5년 새 1천545만원(40.9%) 올랐다.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포함한 레저용차량(RV) 국내 판매가격은 5천223만원으로 1천680만원(47.4%) 올랐다.
식품업계 다른 관계자는 "전자제품 같은 비싼 것도 많은데 식품이 생활밀착형이라는 이유로 표적이 되는 것 같다"면서도 "식품업체는 영업이익률도 평소 3% 내외, 높아도 4∼5%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물가 관리 주무 부처는 기획재정부인데, 농식품부가 주도적으로 나서다 보니 우리(식품·외식업)에 초점이 맞춰진 거 같아 억울하다"라고도 했다.
정부 "무조건 올리지 말라는 건 아니다…물가 안정될 때까지 관리"
정부는 고물가 속 가격 인상 움직임에서 불필요하게 가격을 많이 올리는 얌체 기업을 문제로 지목했다.
농식품부 한 관계자는 "가격이 불필요하게 많이 오르도록 그냥 둘 수는 없는 것"이라며 "최근 기업들이 필요에 따라 가격을 올리고 있는데 소비자 부담을 감안해 천천히 올리라고 우리가 계속 부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농식품부 관계자도 "무조건 올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할당관세 확대 등 여러 지원을 하니 가급적 인상을 자제하거나 늦춰달라고 협조 요청한다.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서 "기업이 폭리를 취하게 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물가가 안정세로 접어들 때까지는 현재 수준의 물가 관리 정책을 유지할 계획이다.
통계청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로 둔화세다.
농산물은 전월 대비 2.5% 하락했지만, 가공식품은 전월보다 0.2% 올랐으며 외식은 0.1% 상승했다. 가공식품은 작년 동월보다는 2.0% 높아졌으며 외식은 2.8% 올랐다.
전문가 "통제 풀리면 부담 커질 수도"…"얌체 기업 선별 관리해야"
전문가들은 가격 인상을 자제하다가 한 번에 올리면 물가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인상이 필요한 기업과 불필요하게 가격 인상 분위기에 편승하는 얌체 기업들을 가려 선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시적으로 물가가 잡힌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정부가 물가를 영원히 통제할 수는 없는데 정부 통제가 풀리는 순간 기업은 그동안 올리지 못 했던 것까지 다 올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시장 원리에는 맞지 않지만, 정부의 물가 관리가 체감 물가를 잡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말 올려야 될 제품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데) 다른 기업이 올리면 따라 올리는 기업이 있다면 정부가 신경 써서 볼 필요는 있겠다"고 강조했다.
y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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